콩알 하나

by 김지숙 작가의 집

콩알 하나




땅을 들고 일어서는

저 작은 콩알 하나가

아무도 모르게

저 홀로 흘러들어

엄마의 시간을 뚫는다


등에 무거운 봄을 지고

허공을 돌돌 말아

길을 내면

온세상이 저절로 따뜻하다



세상의 씨앗들은 모가 나 있지 않다 사람의 인체 역시 모가 나 있는 곳은 잘 보이지 않는다 둥글고 무던해야 저 무거운 어둠을 스르륵 밀고 올라오기 쉬울 것 같아서 저들의 몸은 부드러운 선을 택한 게 아닐까

봄이 되니 여기저기서 심은 적이 없는데도 씨들이 새순을 낸다 기대하지 않아서 더 반가운 사람처럼 초록 얼굴들을 무심한 듯 쏙 내민다

씨앗 속에 저런 얼굴이 들어있었나 싶지만 어느새 자라서 줄기를 올리고 허공을 돌돌 말아서 키 세우기를 한다 아마도 밥을 지으려 잡곡을 씻은 물을 붓다가 콩알하나가 따라 베란다 화분으로 내려갔나 보다

콩알은 어느새 잎을 내고 줄기가 자라서 화분 주인이 되어간다 저렇게 당당한 기세는 어디서 온 걸까 내심 부럽다 남의 자리를 제집인양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저 자신감 콩씨하나는 자기 몸이 딱딱한 흙을 뚫고 세상을 휘젓는 몸이 될 거라는 것을 알았을까

작은 씨앗 속에서 어떤 유전자가 저 다부지고 야무진 꿈을 꾸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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