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첩홍도

by 김지숙 작가의 집

만첩홍도




깊은 바다보다 더 깊고

맑은 하늘보다 더 높고

제철을 다한 잎들이 지는 슬픈보다

더 커서 겹을 셀 수 없는 이 마음


떨어지는 낙엽을 켜켜이 쌓고

지는 해를 겹겹이 허공에 걸어도


길 밖의 길을 여는 나그네처럼

다하지 못한 말들이 만겹으로 일어나

가을물이 든 붉은 하늘

다 차지 하고 나선 붉은 그림



사람의 마음은 몇겹이나 될까 사랑 고통 그리움 이별 고요 고독 허망 즐거움 수많은 감정들이 겹겹으로 쌓여 있다면 한 생애에 그 감정의 겹겹은 사람마다 다르고 스스로도 그 마음의 겹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겹겹이 껴입힌 이 감정들은 일순간 사라질 수 있을까 달빛에 고향을 생각하고 하늘을 보며 꿈 같은 삶을 생각하고 돌아가지 못하는 과거를 추억하고 외로운 삶을 기억하고 달이 지는 시간에 달을 아쉬워하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별세기로 메워가며 살아가는 감정들이 덧씌워지는 순간들이 겹겹의 쌓인 마음들

한가로이 마음의 겹을 세는 것 한마리 새소리에 새벽을 아는 것 한송이꽃에서 봄을 만나는 것도 저문 밤 집으로 찾아드는 것 닭우는 소리에 새벽을 아는 것 누런 잎에 가을이 오는 것 부치지 않을 편지와 글을 쓰는 일도 모두 마음의 겹을 쌓는 일

푸른 허공마다 구름이 걸리지 않는 것 푸른 바다 파도에 바위가 다치지 않는 것 아무리 바빠도 할말을 하고 보내는 사이 가을이 되면 불어오는 바람 가랑비 소리에 이슬비 소리에 문득 오랜 기억을 더듬는 일로 마음의 겹이 쌓이는 소리를 듣는다 만첩홍도 한번 보고나면 잊히지 않는 꽃이다 사람의 마음도 꽃복숭아의 꽃잎보다 더 겹겹이 쌓인 고운 감정들로 덮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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