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클(Cauquelin 1990; 26-39) 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토포스’를 언어의 ‘일반차원’과 ‘시학과 수사학 차원’으로 나눈다. 일상 대화와 통상 모두에게 공통적인 관념에 근거하는 말의 장소인 도시국가의 바깥으로 ‘통념의 장소’는 그럴듯함을 표현하는 말의 장소이고 ‘언어적 기예의 장소’는 로고스의 장소이다
이는 극중 인물이나 연사와 같은 화자가 상대방에게 제시하는 논증적 전제에 근거의 역할을 하는 어떤 공통의 장소를 의미하며 훨씬 덜 구체적이고 심지어 모호하다.(이기웅) 이 ‘토포스’의 개념은 단순히 머물러 있는 장소나 터전이 아니며 추상성을 지닌 장도 아닌 폭넓은 개념으로 삶의 전체를 관통하는 구체적인 장소로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공이 우루루 지하도 계단을 뛰어 오른다
공이 우루루 지하도 계단을 뛰어내린다
공이 아침출근길에서 날갯짓을 한다
공이 굴러서 굴렁쇠처럼
중심에서 밖으로 어느 곳이든 한결같이
긴팔을 햇살처럼 펼치고 쟁반이나 사과처럼
가로수 잎이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공의 신발들이 도로의 빗물에 잠긴다
자동차의 타이어가 빗물을 튀기고
가로수가 바람에 휩싸여 둥그스럼 구부러진다
속이 텅 빈 공이 둥글게 둥글게 논다
쇠가죽을 둥글게 오무려 그 안에 허공을 넣고
공치기 공먹기 한다 당구공은 상아공이다
벽돌담 사이에 담쟁이 줄기를 찾아보았는데요
잎이 떨어져나간 흔적이 없더군요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만큼이나
담쟁이의 잎이 벽돌담에 없다는 것은 확실해요
공이 둥글다는 사실은 둥글다, 기하학자의 빈공은 둥글다
- 김규화 「공」전문
이 시에서 주된 공간은 ‘지하도 계단’이다 지하도 계단은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장소이며 공이 움직이는 상황을 장소감은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전달된다. 이 공은 도로의 빗물에 잠기고 벽돌담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변화가 나타난다. 시에서 ‘공’ ‘지하도 계단’ ‘도로’ ‘벽돌담’ 등은 구체적인 장소이며 모두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현장성을 모티브로 하는 구체성을 띤다.
또 공은 ‘지하도 계단 뛰어 오’르다 다시 ‘뛰어 내린다’ 굴렁쇠처럼 ‘구른다’ ‘둥글게 논다’와 같이 어느 장소에서든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부지런히 움직인다. 특히 ‘지하도 계단’에서는 상하좌우로 공간의 제약을 받자않고 어디로든 넘나든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들은 화자의 눈앞에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이를 아낌없이 독자에게 모두 다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이 시에서 장소들과 함께 제공되는 주된 모형은 원형으로 ‘공’ ‘햇살’ ‘쟁반’ ‘타이어’ ‘당구공’ ‘빈공’ 과 같은 둥근 형태이다. 원은 순환운동을 상징하며 다중성의 세계로부터 통일성의 세계로 회귀하는 의미를 지니는가 하면 천상의 세계 완벽성을 상징한다. 에이츠의 경우, ‘중심이 편재하는 원을 신이라고 하면 성인은 중심을 향해 가고, 시인이나 예술가는 원주를 향해 간다’고 하여 신의 세계를 상징하는데 그것은 완벽하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원주를 향해 달려간다는 의미는 원주가 표상하는 순환성을 수용한다는 의미를 비친다. 원은 때로는 내적 통일의 세계를 상징하거나 혹은 완벽한 세계 혹은 삶을 지탱하는 원리 순환운동대립이 없는 세계를 상징한다.
시에서 화자의 눈에 비친 공은 물론 그 밖의 물체 역시 ‘가로수’도 둥그스럼하게 휘고 ‘쇠가죽’도 의미하는 둥근 세계를 지향하는 것처럼 둥글다는 의미에 몰입된 화자 자신의 내부를 보여준다.
시에서 언급된 기존의 장소나 가로수 등은 통념 속에 존재하는 모습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다 하지만 화자의 체험 경험 시각에 포착된이 후 둥근 이미지들로 훨씬 심오하고 복잡한 그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고 이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재장소화된 ‘아토포스’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