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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호 「다시 십자로에서」

by 김지숙 작가의 집

A. 까뮈는 그의 산문에서는 장소의 구성 요소로 정적인 물리적 환경 활동 의미를 들고 이는 장소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본 요소와 같다.(이승헌외 2003) 여기서 의미란 인간의 의도와 경험을 속성으로 한다. 한국에서 장소의 개념은 단순한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심상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이석환외 1997)

또 인문지리학자들은 공간을 의미 없는 공간과 의미 있는 공간을 구분하는데 ‘의미 있는 공간’은 ‘장소’라는 개념으로 의미 없는 영역을 공간으로 구분하는데 공간과 달리 ‘장소(place)에는 애착이 깔린다.



새를 낚으러 갈 시간이라고요

어제 그 계집의 눈추억으로 사라진

꼬마표범나비의 이력은 잊자

따지고 보면

꺽저기는 제 오후를 십자로에 매달고 가고

꽃너울은 제 오후를 십자로에 매달고 가고

바람달은 제 오후를 십자로에 매달고 가고

아 꽃 피끓는 돌무덤 어디로 갔나

낙지는 단지 낙지일뿐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술푸라티멧새 술푸라티멧새를 뒤쫓는다

-양준호 「다시, 십자로에서」전문




그런데 한 시대 혹은 한 지역의 공감대 속에서 어떤 풍경이 반복적으로 그려진다면, 그것은 바로 그 시대, 그 지역의 전형성을 담은 장소 즉, ‘토포스(topos)’가 된다. 주어진 토포스(topos)를 부정하고 불평등하게 배치된 감각의 ‘토포스’를 의미있는 공간으로 재배치하는 ‘아토포스’(atopos)를 문학의 본령(진은영 2014)으로 본다.

위의 시에서는 주된 장소가 ‘십자로’로 드러난다. ‘꺾저기’ ‘꽃너울’ ‘바람달’이 자신의 오후를 ‘십자로’에 매달러 떠난다고 한다. 십자로는 가네샤 신과 얼굴이 두 개인 신 야누스와 연관된다. 융에 따르면 십자로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십자로에 들어가는 것은 서로 대립되는 세계가 결합되는 경지를 상징하며 그것은 모든 결합의 궁극적인 인자이며 대상인 어머니를 상징한다. 고대인 가운데는 십자가를 양가적인 사이에서의 신의 출현으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능동적 중립적 수동적 원리가 이로움 도구성 해로움과 결합된다. 통념상 선택 대립물의 통일을 뜻한다.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장소 위험하거나 신성함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시에서 임화의「네거리의 순이」「다시 네거리에서」에서는 두 사람의 결합 희망과 절망의 결합 혹은 과거와 현재의 결합되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위의 시에서 역시 십자로는 ‘꺾저기’ ‘꽃너울’ ‘바람달’이 모두 만나서 각각의 오후를 매다는 장소로 이 십자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식된 ‘구성과 파괴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나아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길목이 되는데 이는 이전의 것을 포기하는 양가적 감정을 담고 매어두는 의미있는 장소로 재배치된 ‘아토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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