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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현 「화전민」

by 김지숙 작가의 집

렐프는 루커만(F. Lukemann)의 장소개념을 6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장소는 기본적 위치로 내적 특성과 다른 위치와의 연결성을 갖는다. 둘째 자연적 문화적 요소들의 통합으로 모든 장소가 곧 실체이다. 셋째 장소는 상호 연결되어 있는 순환구조이다. 넷째 장소는 국지적이다. 다섯째 장소는 독특한 역사적 구성요소를 지닌다. 여섯째 장소는 의미를 지닌다.






낯선 젊은 남자가 의사를 찾았다

나는 군의관이라고 말했다

군의관도 의사아닌가요?

그렇지요

그는 왕진을 가셔야 한다고 내 손을 붙잡았다

새벽 어스럼 나는 왕진 가방을 챙겨 그의 뒤를 따랐다

자건거 페달을 밟으며 논두렁길을 가다가 걷다가

산간의 오두막집에 들어섰다

그의 아내가 밤새도록 산기가 있었으니

해가 중천에 뜬 시간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그렇게 산파가 되었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그는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한소쿠리의 감자와 옥수수를 내게 주었다

왕진비였다

산간을 나와 논밭길을 걸어 나왔을 때

오후의 태양이 내 이마에 와 닿아 있었다

그 신생아가 주소도 없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지금 40대의 장년이 되어

화전민이 더는 없는 세상의 태양 아래 살고 있으리라

-정두현 「화전민」 전문




인간 행위의 바탕에는 장소가 있고 다시 장소에 특성을 부여한다.(E. 렐프 2005) 그는 장소(place)는 환경 공간 위치 등과 같이 사용되지만 자연환경을 문화화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특정한 장소와 다른 공간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장소성(placenes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장소성은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한 장소에서 여러 가지 성질의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시야를 필요로 한다. 또한 구체적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맞닿은 경험으로 삶에 대한 인식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장소(place)나 공간(Space)는 ‘토포스’로 장소성(Placeness)은 ‘아토포스’로 대체해도 그 의미맥락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위의 시에서는 주된 장소가 ‘산간 오두막집’이다. 테일라르에 따르면 꿈속의 집이 지니는 이미지가 정신적으로 상이한 여러 층위를 재현하다고 하고 집의 외부는 인간의 외적 양상 인격이나 외모를 상징한다. 집을 구성하는 여러 층들은 수직적 공간적 상징성을 띤다. 지붕과 맨 위층은 머리와 정신 자아통제 의식 훈련을 의미한다. 집은 인간의 육체와 관련된다

이를 우리시에서 살펴보면, 박목월의 「층층계」에서 ‘집’은 가족들이 살면서 교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이승훈의 「너의 가슴엔」에서 ‘집’은 여성적 삶의 원리를 일깨운다. 위의 시에서 ‘오두막집’은 그저 고산시대에 지어진 화전민이 거주하는 공간이지만 화자의 입장에서 보면 화자가 산파가 되어 건강한 사내아이를 받아 생명을 탄생시킨 새로운 공간이다.

따라서 기존의 오두막집이라는 공간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 신성한 장소성을 지닌 의미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위의 시에서 ‘오두막집’이라는 토포스는 소재나 형식을 통해 어떤 풍경을 그리거나 묘사하는 주체는 ‘그 곳’을 실감했기 때문에 그에게 그 풍경은 하나의 기억과 의미를 가지는 장소성을 띤다.

오두막은 화자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준 장소는 이전에 이미 무수히 스치고 지나던 무의미한 ‘공간’과는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화자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는 점에 ‘아토포스’로서의 재의미화를 과정을 갖는다. 이는 기존의 의미를 지닌 ‘토포스’와는 다른 양상을 드러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재해석되어 새로운 결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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