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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교시절의 예술가, 윤동주

내가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에 대하여

by 나니야


고교시절 단짝과 함께 예술이란 것에 관심을 가질 때 화가 지망생 친구의 작품관이 나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일반적인 나의 상식을 깨고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현대 미술이라는 장르를 알게 해 주었다. 그 친구의 작품관은 인간의 파괴성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추구하였다. 그 친구의 작품과 함께 윤동주와 이해인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나를 문학과 철학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윤동주의 시는 이마를 시원하게 하는 충격과 가슴에 바람이 들어오는듯한 싸늘함을 느끼게 했다. 그 무렵 난 인생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연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 덕분에 여러 서적을 통해 철학자들과 저항문학이라는 세계를 알아가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이라는 것을 하였고, 애국심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10대 후반의 가슴앓이를 윤동주를 통해 마무리하게 되었다. 윤동주에 대한 소개를 잠시 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 몇 편을 소개해 본다.

윤동주의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이며, 어머니는 김룡(金龍)으로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아우 윤일주(尹一柱) 당숙 윤영춘(尹永春) 시인이다. 함께 자란 고종사촌 송몽규(宋夢奎)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다.
1931 명동 소학교를 졸업하고, 달라즈[大拉子] 중국인 관립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 입학하였다.
1935 평양 숭실중학교로 학교를 옮겼으나, 이듬해 신사 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에 편입, 졸업하였다. 1941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1942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가을에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전학하였다.
1943 7 귀향 직전에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송몽규와 함께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광복을 앞둔 1945 2 28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생을 마쳤다.
교우 관계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함께 하숙 생활을 하였으며 윤동주의 자필 시집을 보관, 출간한 정병욱(鄭炳昱), 초간 시집에 추모시를 유령(柳玲), 연희전문학교 후배 장덕순(張德順), 고향 후배 문익환(文益煥), 평양 숭실중학교 동기 김형석(金亨錫) 등이 있다.
처녀작은 15 「삶과 죽음」·「초한대」이며, 편의 수준이 상당한 것으로 미루어 습작은 이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발표된 작품을 살펴보면 광명중학교 4학년 당시 간도 연길(延吉)에서 나온 『가톨릭 소년(少年)』에 동시 「병아리」(1936.11.)·「빗자루」(1936.12.)·「오줌싸개지도」(1937.1.)·「무얼 먹구사나」(1937.3.)·「거짓부리」(1937.10.) 등이 있다.
연희전문 시절에는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연희전문학교 교지 『문우(文友)』에 게재된 「자화상」·「새로운 길」, 그의 사후인 1946 『경향신문』에 발표된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20세를 전후하여 10 년간 전개된 시력여정(詩歷旅程) 청년기의 고독감과 정신적 방황, 조국을 잃음으로써 삶의 현장을 박탈당한 동일성의 상실이 원천을 이룬다.
초기 시에서는 암울한 분위기와 더불어 동시(童詩) 깃들인 유년적 평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현실 파악 태도를 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는 「겨울」·「조개껍질」·「버선본」·「햇빛·바람」 등이 있다.
후기 시로 있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에 쓰여진 시들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 감각을 지닌 독특한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준다.
「서시」·「자화상」·「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윤동주의 시는 한마디로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명령하는 바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노래하였다.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역사적 국면의 경험으로 확장함으로써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하였다. 동시에 특정한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체험한 것을 인간의 항구적 문제들에 관련 지음으로써 보편적인 공감대에 도달하였다. 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고, 1968 연세대학교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졌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윤동주(尹東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들을 소개해 본다.
이 시들 중 난 자화상 > 무서운 시간 > 길 > 소년 순으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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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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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고,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

나를 부르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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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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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Jul-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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