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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은 요양원과 달라요.

왜 사람들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구분하지 못할까?

by 나니야

몇 주 전 안전보건공단에서 시상식이 있어 참석을 하였다. 요양병원 수간호사로 근무하며 보건관리자를 겸직하는 나에게 간호부장님이 수고한다는 의미로 추천한 표창장에 선정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월요일 아침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도착한 공단에서는 본부장이 부임하여 부임식까지 겸하였다. 우린 그 행사가 끝난 후에야 시상식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날 지역신문에는 <제55회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행사를 맞아 2022년 산업재해예방 유공자 표창 및 감사패 수여식을 개최했다.>라는 기사와 함께 사진이 게재되었다.


출처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



상장을 받고, 꽃다발을 받고, 상품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의 소속이 요양원이 되는 순간은 기분이 좋지 않다. 그 자리에서 정정을 하고 싶었지만 상장에 적힌 소속란에는 분명 요양병원으로 기재되어 있어 '저분이 실수한 거겠지'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다음날 지인이 보내준 사진과 함께 게재된 기사에는 그분이 읽은 대로 '요양원'으로 기재가 되었다. 요양병원에 처음 근무할 때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구분 못하시는 분을 보면 정정해 주는 것이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은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것도 세월이 약이 되었나 보다. 그러나 요양병원이 우리들의 생활에 끼어든 역사를 생각하면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대한 구분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정의하면 "요양원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돌봄을 제공받으며 거주하는 생활시설"이고 "요양병원은 돌봄과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자들과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대상자들의 완화치료를 위하여 입원하는 병원급 의료시설"이다. 다시 말하면 요양원은 등급을 받아야 갈 수 있는 생활시설이고, 요양병원은 만성질환자들이 치료받기 위해 입원하는 의료시설인 것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노인들이 입원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일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요양등급이라는 것을 심사하여, 집에서 돌보기 힘든 노인들을 요양원에 입소시키기 위해 등급을 나누어 준다. 이 절차를 거쳐야지만 요양원에 입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요양병원은 종합병원에서 만성질환을 진단받은 경우에 한하여 소견서를 가지고 입원이 가능하고, 타 병원과 같이 일정 금액의 병원비를 지불하여야 한다. 또한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큰 차이점은 의사의 존재 여부이다. 요양병원은 말 그대로 병원이기에 의사가 24시간 근무하고, 간호사가 상주하며 24시간 투약과 처치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요양원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가 일상의 시간에 근무하며, 간병사 또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촉탁의로 지정된 의사가 일정 기간에 방문하여 진료를 해주는 시설인 것이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설립 자체가 다른 의미로 되었으니 구분해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왜 구분을 못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걸 알 수 있을 텐데, 왜 구분하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요양원이 요양병원보다 먼저 인식이 되었고, 두 곳의 섬세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나와 동년배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세대들에게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내 부모님들이 계시는 곳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를 알고 어떤 경로를 거쳐 입소와 입원이 가능한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나의 노년도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시대가 곧 오지 않을까 한다. 아니, 그런 시대는 왔다고 본다. 현시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는 이미 병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더욱 이 요양병원에 대한 이해를 넓혀, 도시마다 만연해 있는 요양병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요양병원이 이미 자리 잡은 현실에서 요양원과의 구분을 정확히 해야 아픈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결정지을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요양원과 양로원에 대한 섬세한 구별도 필요하다. 길어지는 노년기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중장년들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80세 이후에 내가 살아가야 할 장소를 정하는 것이 어쩌면 까마득한 나중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60대가 되면 나의 부모님이 지내시는 것을 보면서 내 아들에게 나는 어떤 부모인지, 내 아들은 나의 노년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길어지는 노년을 잘 준비하기 위한 많은 책들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역설을 한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차이를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하니, 이쯤에서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이야기는 마무리하기로 하자. 나중에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Jul-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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