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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Aug 06. 2022

나도 감정노동자입니다.

죽음을 마주하는 감정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아픈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마냥 기쁘기만 하지는 않을 듯하다. 부모님이 아프면 마음이 더욱 힘들 것이다. 오래 떨어져 지낸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이 아프다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면회도 마음대로 못하면 더욱 마음이 쓰일 것이다.


  몇 주 전, 치매로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면회하러 비행기 타고 온 아들이 있었다. 그 어머니는 치매가 심하여 사람을 뛰엄 뛰엄 알아보며, 집에 가겠다고 말을 하지만 집이 어디인지도 기억 못 한다. 그리고 심장이 좋지 않아 심정지에 가까운 증상이 한번 있었던 터라 언제 돌아가실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심해지는 치매로 인하여 3일 정도 자지 않고 깨어있다가 2일 정도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하필이면 멀리서 비행기 타고 면회 온 그날이 잠자는 시간이었나 보다. 분명 깨어있는 상황을 확인하고 면회 준비를 했는데 그 사이에 잠이 드셨다. 아들과 며느리는 어머니를 계속 불러보지만 "어~~"하는 소리만 낼뿐 눈도 뜨지 않았다. 아들은 급기야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고 어머니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눈앞 어머니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면회시간을 채우고 아들 부부는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아들의 나이도 60대는 되어 보였고, 돌아서는 뒷모습에는 아쉬움이 잔뜩 남아있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난 후 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나신 것이다. 나는 속으로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아들에게 목소리 들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일은 때가 있다고 한다. 물론 일을 도모할 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어울리는 말이다. 시간을 잘 맞추어 면회를 했으면 깨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겠지만 보호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맞출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주치는 상황에 당황할 때가 많다. 흔히들 보호자가 침상을 계속 지키다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 돌아가셨다'는 종류의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요양병원에서는 종종 그런 비슷한 일들이 종종 생긴다. 오늘 같은 경우도 오랜만에 온 아들의 얼굴을 못 봐 아쉽고, 아들은 어머니의 말하는 모습을 못 봐 아쉬운 상황이다.

  코로나 상황이 심상치 않아 요양병원의 면회가 다시 제한을 받게 되었다. 요양병원의 면회 제한은 임종과 관계되면 딜레마에 빠진다. 보호자들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는 것이 제한되니 그 불만을 간호사들에게 쏟아낸다. 간호사들의 입장에서는 면회 제한을 내가 한 것도 아니고 시 또는 군의 보건소에서 지침으로 내려온 것이고, 그 지침을 지키자니 보호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다 들어야 하고, 상황에 맞춰 면회를 하자니 각 환자에 대한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 만약 임종에 가까워 면회를 하자니 또 자가 키트 검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해야 한다. 면회객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 감염자가 있는데 걸러내지 못하고 병동의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보건소에서는 1인실에서 면회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 1인실이 현관을 지나면 바로 위치한 것도 아니고 병동의 간호사실 앞을 지나야 하고, 병실을 몇 개 지나야 나오는데 면회객들은 간호사실을 지나치지 않고 그 1인실에 도착할 수 있는가? 이래 저래 요양병원의 입원자들이 취약계층이라는 이유로 요양병원 종사자에 대한 제약이 많다. 그럼 뭐하나. 면회객들은 어디를 다녀오는지 알 수가 없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면회가 제한되다 보니 전화로 면회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는 보호자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고 내가 면회 금지를 결정한 사람인 것 마냥 면회도 안 시켜준다고 화내는 보호자들의 욕설 섞인 이야기까지 들어야 한다. 그럴 때면 '나도 감정노동자 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이것도 임종이랑 관계되면 내 감정은 뒤로 한 발 물러나게 된다. 임종이 우선인 것이다. 욕설을 퍼붓는 보호자에게 임종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어김없이 돌아오는 "내가 어머니 임종 못 보면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가슴에 박으며 수화기를 내려야 한다. 그래도 내가 있는 요양병원은 임종 면회를 시킨다. 그래서 빨리 와야 한다는 말에 헐레벌떡 뛰어와서 면회를 하는데, 집이 멀거나 개인적인 일로 멀리 나가 있다가 전화받고 오는 경우는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는 옆에서 지켜보는 의료인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역할이 분명하기에 그 역할 수행을 위해 감정을 묻어 둔다.

  의료인들도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 감정을 그대로 보호자들에게 보였다가는 나는 의료인이 아니라 감정노동자가 되어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감정을 혹사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초보 요양병원 근무자들이 많이 겪게 되는 감정이입의 상태가 요양병원을 그만두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 이런 경우이다. 감정은 내 것이기에 내가 조절하지 못하면 나의 감정은 이미 혹사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 감정에 대해 나보다 잘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더러는 '간호사가 감정도 없이, 너네 엄마면 그렇게 하겠니?'라는 말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간호사의 입장에서 마냥 보호자에게 동조할 수는 없다. 3년 이상 입원하여 돌보다가 돌아가시는 경우에는 나도 울컥하며 눈물이 맺히고, 더러는 며칠 동안 눈앞에 그분의 얼굴이 아련 거리기도 하며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드릴껄'하는 후회도 한다. 하지만 울고 있는 보호자 앞에서 내 감정을 보일 수 없다. 나에게는 그 분만이 아니라 그 옆의 다른 분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울면 그 방의 모든 환자가 상황을 인지하게 되고, 그 감정이 남아있는 분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 몇 날 며칠을 우울해지며, 심지어 혈압이 떨어지는 분들도 발생한다. 간호사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분들에게도 최선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을 표출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근무를 마치고 나면 그 쓸쓸함이 두 배로 다가온다.


  흔히들 "감정노동자"라고 하면 텔레마케터 또는 전화상담사들 또는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극심한 감정노동자들은 죽음과 연관해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내 도움이 필요했는데 내가 미처 도와주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 것만 같아지는 것이 죽음을 대하는, 그러한 감정노동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우리는 소방관, 간호사, 의사 등등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화상담사들도 욕설을 듣게 되면 기분이 나쁘고 자존감이 떨어지겠지만,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 상황이 좋지 않아 전화한 지 40분 이상 지난 후에 도착하여 미리 연락하지 않아 임종을 지키게 해주지 않았다고 큰소리로 나무라는 보호자들의 말에 '내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죽음의 시간을 알 수 있냐'라고 맞받아 치고 싶은 마음이지만 '가족이 돌아가셨으니 상심해서 하는 말씀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를 달래야 한다. 그렇게 환자를 돌보는 노동자들이나 재해에서 사람을 구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을 다독이며 감정노동에 대응하고 있다. 극심한 감정노동에는 사망 선언을 해야 하는 젊은 의사들도 있다. 의사라는 이유로 사망 선언을 해야 하는 첫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고들 한다. 더러는 이름, 시간,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고 한다. 병원이라는 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고, 이 병원의 의료인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삶을 기뻐함과 동시에 죽음도 인정해야 한다. 이 극과 극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내 삶과 내 감정에 대단히 해롭고 힘든 일이다. 특히 죽음을 위해 입원하는 요양병원의 의료진들은 죽음에 대해 둔감해지려고 노력한다. 매 죽음마다 가슴에 남아있는 감정들에 신경을 쓰게 되면 남아있는 다른 이들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린 죽음도 존중해야 하지만 지금 현재 살아계시는 삶에도 존중을 표해야 한다. 설사 그분이 내일 돌아가실 것을 알지라도 지금 현재는 살아있음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감정노동이 훨씬 힘들기에 많이 위로받아야 하지만,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다. 아니 나 자신도 어느 누구에게도 '그분이 돌아가셔서 슬프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 말을 입밖에 내는 순간 울음바다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노동자들이 주위에 있다면 부드러운 눈빛으로나마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길 권한다.


  얼마 전 수도권에서 1박 2일의 일정을 소화한 적이 있다. 그때 묵었던 호텔 프런트의 그녀는 분명 감정노동자이다. 그런 그녀가 손님으로 온 나에게 짜증 나는 목소리로 주의를 줄 때는 '나는 돈 내고 투숙한 손님인데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녀는 피로해서 그렇다 치고, 나는?, 나도 일정을 소화하고 피곤한데 나에게 이런 대우를?, 내가 왜 그녀에게 이런 감정 섞인 말을 들어야 하지? 등등의 많은 감정이 내 속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나도 노동자이기에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내가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항상 여러 가지 역할을 하며 산다. 그러기에 이해하는 부분과 이해받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항상 노동자이다. 그래서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일에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도 감정노동자이면서 소비자이기도 하니까. 우리 주변에는 많은 감정노동자들이 있다. 인식하지 못한 직업인들도 감정노동자인 것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특히 죽음과 관련된 일들을 하는 많은 감정노동자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Aug-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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