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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를 다녀와 인생을 돌아본다

by 나니야

6개월쯤 전에 어금니가 깨어져 크라운을 했다. 직후부터 찬 것과 뜨거운 자극에 시리기 시작했다. 치과에서는 신경치료를 하지 않아 시릴 수 있다며 많이 불편하면 신경치료를 하자고 했다.

신경치료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젊을 때 어금니를 몇 개 뽑아서 비어있는 공간도 있고, 나이 들면 시린 이가 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조심하기로 하고 신경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자다가 크라운 쪽에 콕 쑤시는 통증으로 깼다. 그 후부터 음식을 씹는데 통증이 있었다. 치과에 연락했더니 신경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으니 예약을 잡자고 했다. 콕콕 쑤시는 통증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씹을 때 아파 예약을 했다.

예약일에 도착하여 엑스레이를 찍었다. 엑스레이 확인하고 몇 가지 검사 -아마도 저작검사인 듯-를 하고 의사가 신경치료를 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되도록 신경치료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랬더니 씹을 때만 아픈 것이니 크라운의 높이를 낮추고 일주일쯤 지나서 확인해 보자고 했다.

의사의 설명에 의하면 내가 이를 깨무는 힘이 강하고 턱관절의 긴장도도 높다고 했다. 깨무는 힘이 강해 다른 이빨들도 많이 닳아있다며 이빨을 꼭 깨물지 말고 살짝 벌려 혀로 바치고 턱에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

나는 잘 때 이빨을 꽉 깨물고는 입을 꼭 다물고 잔다.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다. 동생이 '언니는 뭐가 그리 분해서 이빨을 부딪히면서 잠꼬대를 하냐'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턱과 이빨이 아픈 적이 있었다. 동생의 말대로 뭐가 그리 분하고 억울했을까.



10대 후반, 세상일이 나와 상관없이 나쁘게 흘러갔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려워지며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만큼 힘든 시절이었다. 겨우 진학한 대학도 굶으면서 다녔다. 그때는 그 모든 것이 헤쳐나가야 될 생활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는 어찌 그리 억울한 일도 많았던지. 내가 하지 않았던 일, 내가 연루되지 않아도 되는 일, 내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까지 나와 연관되는 상황들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돈을 벌어도 내가 쓸 수 없는 상황이 그렇게도 억울할 수가 없었다. '나는 왜 큰딸로 태어났을까'로 세상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잘 때 무의식적으로 이를 깨물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습관이 되어 내 이빨이 닳아져 시리고 아프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20대, 30대, 40대를 지나면서도 억울한 일은 있었다. 50대에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있었다. 내가 지나온 인생들이 부정당하는 일을 겪으면서 이를 갈았다. 한 5년쯤 지나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더 많은 일들을 겪게 되었다. 이후로 욕심을 내려놓자는 생각으로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생활의 여유는 없더라도 마음의 여유는 꼭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비교적 최근이다. 아마 며칠 전 밤의 통증도 이를 꼭 깨물고 잠들어 생긴 일인 듯하다. 이제부터라도 치과의사 말대로 입을 살짝 벌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잠들면 무의식적으로 깨물 수 있지만 깨어있을 때는 깨물지 말아야겠다.



요즘, 이빨뿐 아니라 몸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비 올 때가 되면 어깨와 등에 근육통이 생긴다. 나도 아플 나이가 된 것을 실감하게 되는 시간이다. 인간의 몸은 20세까지 성장한 후에 노화의 길로 들어선다. 이제 노화의 끝자락이 보인다는 생각이 드니 감성적이 되기도 한다.

올해는 유독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해이다. 아마도 곧 60대에 들어서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나도 노년의 굴레에 들어서게 된다.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더 챙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노력해 보자고 결심하지만 생각만큼 잘 될지 의문이다. 그래도 노력해 보자. 그리고 이 깨무는 습관도 고쳐 보자. 치과를 다녀와 비로소 이깨무는 습관을 인정하며 인생을 되돌아본다. 잘 지냈던 못지내왔던 지나온 내 인생을 찬찬히 생각하며, 그렇게 살았구나 인정한다.

벌써 2025년의 5월이 지나고 있다. 이렇게 지내다 정신 차려보면 12월이 성큼 다가왔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여유를 가져보자, 마음의 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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