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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이라고 하죠. 그럼 운명의 반대말은 뭔가요?

중년의 여유와 함께 나를 돌아보는 운명의 시간.

by 나니야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운명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시간에 쫓기듯 생활하는 청년 시절에는 운명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운명은 나이가 들면 어느새 찾아와 옆에 앉는다. 살아온 생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되는 여유의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운명이란 무엇일까?", "나는 나의 운명대로 살았나?", "내 인생은 나의 의지대로 살았나?"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 운명은 그렇게 중년이라는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 생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초인적인 힘'을 운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단어에는 나로서는 어쩌지 못하는 초인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하거나,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포함한다.

이런 운명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운명은 정해진 것이라 믿으며 순응하며 사는 사람과 또 다른 하나는 운명은 노력하기 나름이니 개척하는 것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운명론자들은 운명은 이미 정해져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한다. 각자의 운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초인적인 신의 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고. 그러니 정해진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 말한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내가 가진 힘으로 바꾸기 힘든 환경이라면, 어떠한 노력으로도 나의 환경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면, 아니 바뀔만한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경우라면 그런 믿음은 구체화되어 무의식적으로 각인된다. 흔히 인생이 감당하기에 힘들거나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삶이 힘들고 빡빡하게 살아야 하는 환경에서는 운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과 믿음은 정신적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생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운명론자들은 운명을 결정하고 살아간다. 한마디로, 운명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는 나의 삶이라 한다.


중세 신분제도의 사회에서는 태어나보니 이미 정해진 계급이 있었다. 이 계급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이미 나의 생을 규정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가도 되는 장소와 가면 안 되는 장소가 정해져 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엄청난 불이익이나 목숨까지 내어 놓아야 했다.

신분이 엄격하게 나뉘었던 중세에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사람들이 있었고, 인간이지만 신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지만 신인 사람들은 낮은 계급의 인간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죽이는 것도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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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직장인이다. 쓰고 싶은 글만 잘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아쉽다. 그래서 현실을 무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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