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의 새 직장 도전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나이 들고 늙어 가는 것은 그냥 진리이다. 며칠 전 어느 건축가의 유튜브에서 요즘의 나이는 곱하기 0.8을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내 나이를 생각하고 곱하기 0.8을 해보았더니 아직 40대 후반으로 계산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나이와 어느 정도 맞추어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막내를 임신했을 때가 기억났다. 막내가 대학을 가면 나는 60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나이 60이 넘어 막내의 대학 바라지를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망설이게 했지만 그 나름대로 해결 방법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막내를 출산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오늘이 되었다. 지금은 65세까지 정규직으로 일하고, 나머지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생활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의 상황이 그런 계획들을 가능하게 하는 게 사실이다.
최근 직장을 옮겼다. 많은 나이에 직장을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 8년간 잘 닦아 놓은 직장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기 쉽지 않다고 주위에서 말한다. 옮기기로 결정했을 때, 동료가 "그 나이에 도전을 한다는 것, 나는 겁나서 못해. 선생님 대단하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오픈하는 병원의 멤버들은 유대감이 다르다. 특히 병동의 책임자로 간호사실의 구성과 모든 물품들의 위치,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 환자 침상의 위치를 비롯한 전기코드의 위치까지 모든 것을 구축하며 보냈던 시간들을 지나,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잘 진행되고 있으니 편안한 시간을 보낼 만도 한데 또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곳의 병동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시스템 구축이라는 일을 도전하는 내가 어쩌면 어리석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직장 생활 마지막이 팀장이나 수간호사로 끝나지 않고 부서장이라는 직함으로 끝내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으로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머리 아프고 힘든 길을 택한 것이다. 어쩌면 도전이고,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60을 바라보는 내나이지만 곱하기 0.8을 하여 40대 중후반이면 도전이 가능한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내가 대학생이 되었고, 20살이 되었다. 나도 이제 우리 나이로 60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도전을 할 수 있다는 내가 한편으로는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나를 믿을 수가 없기도 하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지만 도중에 포기하지 않기도 바란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어제,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직원이 자신이 다녔던 직장들이 거의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잘 돼. 내가 그만두고 나오면 그냥 현상 유지하거나 기울어져도 그냥 유지는 하더라"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지금껏 이곳에 와서 근무했던 곳들이 전부 그랬던 듯하다. 첫 직장인 곳은 이미 시스템이 갖추어졌지만 어딘지 구멍이 있는 시스템이어서 난 그곳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던 중, 작은 일반병원이 종합병원으로 몸집을 키워 새로 개원하는 병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녀는 내가 근무했던 그 종합병원에 내가 퇴사한 몇 년 후에 입사하여 최근까지 근무했다고 했다. 그 병원이 오픈할 때, 나는 오픈 멤버였다. 그때의 의료진들은 이 지방 최고라고 할 정도였다.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새로 개원하면서 외지에서 유명하다는 많은 의사들이 희망을 가지고 입사하여 개원을 하게 되었고, 그때만 해도 이 지방에서 잘 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희망들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많은 의료진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결국, 나도 떠나 개원하는 요양병원의 팀장(수간호사)으로 병동 하나를 책임지고 오픈하게 되었다. 오픈한다는 그때는 힘들고 고생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힘들게 지나온 시간들이라도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만심을 가질정도이다. 그 병동은 잘 구성되었고, 우리 업종에서는 인정해줄 정도의 체계를 가졌다고 자부할 정도로 잘 유지되고 있다. 그런 평온한 시간들이 어쩌면 나에게 생활의 무료함을 줄 때쯤, 나에게 도전할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사실 내가 거절할 수도 있었던 제안을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지금껏 내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찾아왔던, 촉과 끌림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별로 많은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지금 있는 병원이 개원을 하기도 전에 나에게 많은 이야기들이 들렸다. 심지어 지나가면서 본 위치가 낯설지도 않았다. 누군가 계속적으로 그 병원의 정보를 자꾸 알려주는 꼴이었다. 심지어 지난 직장의 부서장이 알려주기도 했다. 그 이후 나에게 전혀 엉뚱하게 이 방면으로는 관계가 없으리라 생각한 사람을 통해서 제의가 들어왔다. 전혀 의외였지만, 소개시켜 준 그녀의 일하는 방식과 사람 대하는 방식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그녀의 제의였기에 생각을 했다. '그녀가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행정이사라는 직함을 가진 그와 면접을 보았고, 이틀을 생각한 후 제의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했다. 그리고는 사직이라는 큰 난간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전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자타가 인정하는?)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상사의 만류는 생각보다 거세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조금은 심하다 할 정도의 언행을 행해야 했고, 그녀의 마음도 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직처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게 되어 미안하기도 하다. 아마 그녀도 나를 백프로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욕심은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사직을 하고 10일 이상의 휴식 기간을 가지고 입사를 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의 의문도 있었지만, 한 달 정도 지난 지금은 긍정적이다. 어떻게든 일은 해결될 것이고, 병원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료들이 있어 앞으로의 일은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의 행정이사라는 직함의 상사는 가족들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관계의 일들을 하는 집안의 막내라고 한다. 그들의 내막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들리는 말로는 그들과 다르다는 내용도 있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내가 판단한 것은 그의 책임감이다. '어느 정도의 책임감으로 이 병원을 이끌어 갈 수 있는가'하는 것이 나의 판단 기준이었다. 그것은 아직 대학생인 둘째와 막내의 대학 바라지와 내 미래의 연금을 책임져 줄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아직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면서 내 욕심을 채워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어려운 길로 들어선 어리석은 늙은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는 아니, 아직은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이 힘든 것이지 앞으로는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믿음이 없으면 불안해서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들로 채우며 하루를 지낸다. 며칠 전 내가 좋아하는 후배 한 명과 통화하다가 직장 옮긴 이야길 했더니 밝은 목소리로 '축하합니다. 선생님. 너무 잘됐네요.'라는 말이 아주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직장에서의 실패가 내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이이기에 젊은이들처럼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보다 '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다. 도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이가 들어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다. 새로운 일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일이라고 도전하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존감이 무너질까 두려운 것이다. 내가 잘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시작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다. 나의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제 막 시작한 도전이 실패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은 여기서 정리해 본다.
Sep-2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