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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Aug 27. 2023

2023년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일까?

5개월짜리 간호과장이 된 이야기

  2022년 7월, 요양병원 수간호사로 약 8년을 근무하고 있던 나에게 간호과장으로의 이직 제안이 들어왔다. 지방 소도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평소 '요양병원 간호과장까지는 해봐야지'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겐 '해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자리였다. 일주일 정도를 고민하다 사직의사를 표현했다. 상사는 적극적으로 말리며 다른 기회를 잡으라는 말과 함께 간절하고 협박(?)하는 눈빛을 쏘았다. 말리는 상사의 걱정과 협박(?)을 뒤로하고 7년 6개월의 직장을 정리했다.

  옮긴 자리는 신설한 지 5개월의 조합법인으로 일명 사무장병원이라고도 불리는 요양병원의 간호과장이었다. 시작하면서부터 꼬여버린 체계는 5개월이란 시간을 허비하다 못해 경영과 재정에 구멍을 내어버린 시스템이 되어있었다. 나름대로 분석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이유는 요양병원의 경험이 없고 그렇다고 종합병원의 경력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30대의 젊은 간호사들로 구성된 간호과의 관리체계와 일반의원의 경력만으로 이루어진 경영진의 요양병원에 대한 경영인식과 관리, 청구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꼬여버린 조직체계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해결해야 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더 엉망이었다. 갖추어지지 않는 부서 체계에서 서로 믿지 못하는 간호인력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우리세대의 말로 족보가 없는) 정리되지 않은 부서간의 업무 분담은 '헉'하게 만들었다. 간호부서의 일을 원무과에서 하고, 청구에서 담당해야 하는 일을 간호부서에 넘기고, 약사의 책임하에 관리되어야 하는 약품들이 외래간호사가 발주를 하니 정작 약사는 약품목록에 없는 약품들이 나올때마다 이마를 짚었다. 병동에서는 간호사와 조무사가 엉겨서 업무를 떠넘기고 있었고, 나이는 많지만 경력이 짧은 간호인력들이 큰소리내면 이긴다로 일관하며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시스템에 더하여 코로나환자 발생으로 격리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격리관리에 대한 정확한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고, 심지어는 방호복 착용도 엉망이었다. 격리병실의 출입과 방호복 사용법, 격리폐기물의 관리부터 다시 인식을 시켜야 했고, 경력이 있는 간호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병동 문화도 잡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조직관리의 핵심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관리직을 수행했던 나는 병동간호사들의 인식정리부터 하기 시작했다. 일대일 면담과 시간별 업무분담과 스케줄 관리까지 시행하며 두 달을 온전히 병원에 올인을 했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경영진의 경영태도와 경영체계는 서서히 실망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간호조직을 튼튼히 세운다면 경영태도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병동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원의 전신인 의원시절부터 근무해 온 몇몇 젊은 간호사들의 의원체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기적인 안목 없이 이기적이며 편협하다 못해 공격적이며 경영진들을 위협하는 행동들과 심지어 '내가 이기나, 너가 이기나 보자는 파워게임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소위 사람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그만두겠다는 친구의 사직서를 받았다고 본인도 사직서를 내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경영진 측에서 나를 잡을 것이다'는 배짱이 깔린 행동이었고, 나는 과감히 포기하겠다고 했는데 경영진은 나를 빼고 그녀와 딜을 했다. 내가 이끌어야 하는 조직에서는 나의 의견과 다른 '사람관리'를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것이다.

  그렇게 생각 짧은 몇몇의 중간 관리자들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고자세를 일관하면서 경영진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평소의 신념대로 사람관리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체계를 바꾸고 잡아가기 위해 데려온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병원 경영을 요양원 경영처럼 생각하며 사장놀이하는 이사진의 생각과 행동은 '나를 왜 데려왔을까'하는 의구심을 들게 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병동 식구들을 다독거리며 안정시켜야 하는 시간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뜬금없이 내 상사로 훅 치고 들어온 행정부원장이란 직책이 생기면서 나의 노력들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정비와 체계성립이 조금씩 내 계획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건 뭔가?' 하면서 질문을 던진 이사진의 대답은 '그냥 갑시다'였다. 그래서 그냥 가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말도 안되는 병동에서의 월권과 의문이 드는 계획들. 10년 이상의 장기계획을 생각하는 나와는 다른 눈앞의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지만 효율적이지 않은 단기적인 계획들. 그리고 고민하지 않고 시행한 후 '아니면 그만하지'하는 태도들로 간호인력들이 고생만 하고 시행하다 다시 돌아간 계획들이 인간관계의 신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이게 뭐지'하는 생각들을 계속하게 되었고, '조직의 핵심은 사람이고 사람과의 관계는 믿음이 우선이다'라는 나의 관리 신념이 시행착오로 되돌려지는 기획들로 인하여 나와 간호인력들과의 사이에서 믿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석 달 동안 공들인 병동식구들과의 믿음이 무모하게 시행되는 일들로 무너지다니,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할때쯤 그녀가 행정부원장 자리에 앉은 이유가 투자(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이 병원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렇게 진행되면 미래는?, 행정부원장이라는 직책의 그녀가 간호부서장인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만약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의 성격과 인물됨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간호체계를 밀어줄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다. 그녀는 조무사생활을 오래 했으며 50대에 간호대학에 편입학하여 졸업 후 요양병원에 잠시 근무하였다. 대학시절에도 자신의 경력을 내세우며 지도교수를 당황케 했다는 말을 들었다. 졸업 후 1년 남짓한 요양병원 경력은 일반 간호사로써의 경력이며 간호관리자로써의 경험은 전무한 상태로 고위관리자가 된 것이다. 대형종합병원과 일반종합병원의 일반간호사를 거쳐 중간관리자로써의 경험을 가지고 요양병원의 수간호사로 석사 학력까지 갖추며 관리자로써의 경력을 쌓아온 나로서는 그녀가 어떤 형태의 간호관리자인지 판단해야 했다. 그녀의 관리 능력은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고, 이론적인 배경도 없었으며 섣부른 결정(물론, 본인은 고민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과 시행 후 원점으로 돌리는 신중하지 못한 의사결정력, 관리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편협함으로 마주하는 직원들에게 같은 상황에서 매번 다른 지시들, 직원을 존중할 줄 모르는 말투의 관리형태는 내가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 나에게 "결이 다른 사람이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래,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같이 가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달라지는 미래가 보였다. 그녀가 있는 한 이 병원은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호과장으로 이직을 하면서 많은 것을 포기했기에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관리형태와 나의 경영형태는 달랐고, 재정적인 문제들이 걸리면서 나는 빨리 결정을 해야 했다. 이렇게 그냥 가다가는 나의 경력에도 좋을 것은 없었다. 아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이미 나는 많은 손해를 감내하면서 옮겼던 자리가 결국 더 많은 손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고용보험 미납 통지서를 받는 순간, 결정은 빠를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많은 것을 포기하고-특히 내가 이루었다시피 한 병동을 포기하면서- 옮긴 자리였기에 최대한 버티려고 했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결국 병을 불렀다.

  코로나가 한창 위세를 떨던 2년 동안, 완전 격리를 하면서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아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를 근무한 지 만 4개월 만에 확진을 받았다. 증상도 심하여 몸살에 목도 붓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격리가 끝나고 복귀한 병원에서 난 또다시 갈등을 하게 되었다. 형평성이 없는 환자 응대와 보호자 응대는 나를 피곤하게 하였고, 쏟아지는 병동식구들의 호소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 수간호사로 발령한 지 2달밖에 안 되는 간호사를 일반간호사로 보직변경을 감행해야 하는 업무는 나를 지치게 하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수 있다고 짐작한 것이...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하던 어느 날, 행정부원장은 '애사심'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나를 채근했다. 애사심!,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의료인에게 애사심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단어가 나의 머리를 때렸다. 내가 회사원이었나? 나는 병원에 근무하면서 한 번도 내가 회사원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의료인으로 근무를 했고, 의료인에 맞는 행동들을 하면서 환자를 돌보았다. 한국에서 간호사로써의 의료인이 얼마나 무식하고 힘든 일인지 그리고 병원에서 어떤 역할인지 알고 있는 간호사로써, 의료인으로서 근무를 했다. 그런 나에게 '애사심'이라니!, 그때였을까, 그녀가 투자자라는 생각이 두뇌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 입장에서는 애사심이 돈과 연결되겠지만 나에게는 환자의 평안이 돈과 연결된다. 그래서 나는 애사심이 없이 의료인의 자긍심으로 이날까지 근무하고 있다. "간호사인 내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의료인으로 근무하면 되지, 왜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애사심이 있는 회사원이 되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나의 사직을 확정 지었고, 그래서 난 사직서를 쓰기로 결정을 했다. 나는 회사원으로써 애사심을 가지고 일하는 간호사가 아니라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을 행하는 간호사로 남고 싶다. 아니 계속 그런 간호사로 일하고 싶다. 그래서 간호관리자로서 환자가 더 좋은 간호를 받게 하기 위해 간호사를 다독거리고, 간호사들이 편하게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물품관리, 기계관리, 기록관리와 타 부서와의 조정, 특히 의사들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어 환자들이 간호사에게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게 관리하는 게 간호부서 최고관리자의 업무라고 생가한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지금도 가만히 생각하면 '나를 왜 스카우트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를 간호과장으로 임명한 이사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앉으면서 투자자인 간호사를 행정파트의 장으로 올리며 전체를 관리하는 그림은 좋다. 그러나 그녀의 관리자로써의 경력이나 실력은 입원환자를 관리해야 하는 병원의 덩치와 특성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는 것을 왜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나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녀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20세기의 사고방식으로 현재의 21세기의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는 그녀의 중심 없는 경영방식과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관리방식, 병원의 행정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행정실력으로 야기되는 직원들과의 마찰은 병원의 미래를 흐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나름 튼실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제정신 아니다. 미쳤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간호과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싶은 욕심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을 망치고, 생각을 망치고, 우울을 경험했다. 그래서 또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졌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난 5개월이라는 시간과 밤낮 없는 근무시간을 때우며 노력을 투자하고 마지막 월급은 제대로 챙겨 받지도 못했다. 어리석은 나 자신의 욕심이 부른 참사이다. 인생파트너의 표현으로 "늦은 나이에 비싼 공부 했네"이다. 그러나 절망은 하지 않는다. 희망은 어디에도 있다고 했듯이, 마음을 비우고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어 지인의 소개로 현재 근무하는 요양병원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니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관리자가 아닌 단순 간호사로써의 일만 하기로 결심하면서 입사한 병원에는 나름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적응만 하면 그냥 일 할 수 있는 구조였다. 나이 든 간호사들에게는 적당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그런 요양병원이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이 병원의 관계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알수 없지만, 상당한 고심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때 맞추어 대학에서 강의제안이 들어왔다. 간호과장이라는 마지막 직함으로 대학의 강의를 수락하고 지금의 직장에서 일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또 하나 만든 것이다. "강의를 하니 관리자보다는 시간이 좋고 정신적 부담이 덜한 직장"이라는...

  


  이제 2023년도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2학기 개강을 앞두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내가 강의를 하게 된 것과 지금의 직장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정리를 해보았다. 요즘은 "인생은 60부터"라고 한다. 그 표현에 의하면 난 아직 인생이 시작되지 않았고, 그 시작을 몇 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대학원 때 서울삼성병원의 간호본부장으로 퇴임한 선생님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퇴임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입 간호사들의 교육은 대학에서 절반 이상이 이루어져야 하며, 우리 간호계에도 의사처럼 인턴과정을 도입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숙제처럼 생각하는 간호인턴제도를 우리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간호사들을 위한 간호법도 제대로 없는 현실에서 의사들을 위한 의료법안에 한정되어 있는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간호제도들이 얼마나 잘 갖추어질 수 있을까?

  의사들은 면허를 취득하면 인턴을 거쳐 전문의 과정을 거친다. 간호사들도 면허를 취득하면 전문간호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간호인턴 과정은 거쳐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의료인이라 지칭하는 직업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조산사>이다. 나의 대학시절에 의료인은 <의사, 약사, 간호사, 조산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치과의사와 한의사도 의료인으로 지칭되고 있다. 그런 의료인의 집단에서 의료법 외에 의사는 의사법이 있고, 한의사는 한의사법이 있고, 약사는 약사법이 따로 있다. 그런데 간호사와 조산사를 위한 간호법은 따로 만들지 못하는 현재의 사태가 염려스럽다. 의료인으로서 법적인 보장은 해주지 않으면서 직업인으로서의 희생은 강요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심지어 서비스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스트레스를 위한 법률까지 있는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환자의 폭언과 보호자의 폭언 폭행, 심지어 의사의 폭언과 성적 희롱까지 당하고 있어 간호조직 내의 태움은 그런 것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직업의 귀천이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가족 중 누가, 예를 들어 자녀나 형제자매가 이런 상황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간호대학을 간다면 보내겠는가? 아마도 몰랐을 때는 안정적인 직업이고 취직도 잘되니 선호하겠지만,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겠는가?"라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진정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의료선진국이 될 자격이 있는가 하고...


  2023년의 내 이야기를 하면서 간호사로써의 현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겪은 이런저런 일들이 현시점에서의 간호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당면 과제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반대를 하는 이유가 뭘까? 예전에 약사법 때문에 의사와 약사가 서로 부딪혔을 때 대한민국의 의료체제가 완전히 무너질 것처럼 이야기 하지 않았나, 의사 측에서. 하지만 현실은 잘 돌아가고 있다. 아니 그전보다 훨씬 많은 의료혜택을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간호학과에 강의를 하게 되면서 한국 간호계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 것일까?

  여기서 나의 5개월 동안의 영광(?)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간호과장'이라는 직함을 달아보고 싶은 나의 욕심은 이루었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비록 몇 개월이지만...!!


Aug-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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