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생각
나는 감정에 쉽게 휩싸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감정이 든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해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적고, 오히려 그 감정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아보고 탐구해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이 감정은 되게 오랜만이고 그만큼 새롭고, 그만큼 고통스럽고, 그만큼 충동적이고, 그만큼 분석적이다. 이 강렬한 감정은 ‘사랑’이다.
사랑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깊이, 형상이 제각각 다르다. 유명한 철학자들도 사랑에 대해서는 전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나는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 말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랑은 결혼할 상대가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왔다. 굳이 그렇게 쾌락에 휩싸이고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도 아닌 상대를 자주 만나야 할까?
내 이런 생각을 깨부숴 버린 것이 지금 사랑에 빠진 상대이다. 이 사람은 만난 지 정말 별로 안 됐는데도 내가 빠지게 되었고 내 특성상 인간을 오래 보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좋아할 텐데 이 사람은 조금 대화를 해봐도 그냥 좋고 더 설렌다. 이 감정을 찬찬히 분석해 보니 내가 사랑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랑하고 싶어 하는 내 본능을 너무 억세게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낯선 환경에서 특별한 사람과 그 사람이 내게 호감이 있어 보이고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하니까 감정적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요즘 들어 이 사람밖에 생각이 안 나니 고통스럽다. 노래 가사를 보면 뭘 그렇게까지 빠지나 했는데 아니다, 고삐가 풀린 감정의 물결은 생각보다 더 거세다. 이 사람은 나와 굉장히 멀리에 있기 때문에 연락을 sns로만 할 수 있는데 첫 번째 만남 때 두 번째 만남을 기약하며 시간까지 정했었고 나는 그것이 꼭 이뤄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자마자 그 시간을 확보해 놓고 그 상대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며칠째 답이 없는 그녀를 보며 그 며칠간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내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를 해봤다.
일단 사랑은 니체가 말한 것처럼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어주는 굉장히 도움이 되는 감정이다. 그녀와 말이 통하기 위해서, 더 잘 보이려고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새로 시작되기도 하고 기존의 일들에 추진력과 목표가 뚜렷해지는 기분이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사랑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본능에 환상을 심어준 신의 놀이일 수도 있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이런 강력한 사랑이라는 환상에 갇혀 있고 숭고하고 존엄스러운 감정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맞다. 나는 이 인간의 본능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저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사랑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감정이다. 신뢰가 없으면 사랑은 없고, 억지로 붙어있기만 하면 그것은 타인과 본인을 전부 행복하지 않은 삶으로 이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을 잘 안 믿는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어렵다. 어떤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지만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지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추락하는 도중에 어디선가 황금 동아줄이 내려오면 그것을 잡고 그쪽으로 향하고 싶은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동아줄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운에 맡겨야 하겠지만 만약에 추락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줄이 있었다면, 그 줄이 너무 익숙해서 내게 안보였다면, 그것은 추락하는 자신을 믿어준 그 줄에게 굉장히 절망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사랑을 하면서 나는 굉장히 집착적인 감정이 광적으로 들 때도 있다.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고 기다림이 커질수록 불안한 생각이 점점 커지고 결국 그것은 나를 사랑의 성장에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원하기 때문에, 죽을 만큼 그 순간은 원하기 때문에 이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랑은 그런 양면의 칼날 같은 감정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이런 상황에 있지만 괴테가 말했던 호흡의 은유라는 구절을 보고 조금씩 진정되고 있다 “호흡에는 두 가지 은총이 있다. 하나는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또 하나는 그것을 놓아주는 것이다.” 이 문장의 속뜻은 우리가 삶에서 받아들이는 순간, 놓아주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 받아들이며 기쁨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고 놓아주는 것은 애착을 잃을 때, 관계가 끝났을 때 놓아줌으로써 비움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숨을 들이쉬기만 해서도 안되고 내쉬기만 해서도 안된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돌아갈 때 우린 비로소 살아갈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표현을 보며 사랑에 대한 감정을 다루는 법을 생각해 봤다. 쇼펜하우어가 사랑을 새에 비유하며 새를 너무 꽉 쥐면 죽고 너무 살살 쥐면 날아가 듯이 사랑도 적당히 쥐고 있어야 날아가지 않고 죽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와 비슬한 표현인데 나는 식물에 빗대어 표현하고 싶다. 식물은 물을 먹는 양이 각각 다르고 주는 주기도 달라서 어떤 식물은 너무 많이 주면 죽고 어떤 식물은 너무 적게 주면 죽는다. 인간들도 이처럼 애정과 집착을 원하는 양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의 집착과 애정을 주면 좋다. 그리고 식물은 물을 주면 줄수록 성장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나만이 성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성장을 하게 해 주어야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상대가 원하는 만큼의 물을 주고 나도 그것을 받고, 어떤 날씨가 안 좋은 날이 있더라도 상대가 물을 꾸준히 주며 조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받는 물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물은 계속 내게 왔으니 앞으로도 평생 올 거야.” 아니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지만 그 후부터는 서서히 물을 주기 싫어질 것이다. 또한, 꾸준하게 적당한 물을 받으며 비슷한 나날들을 보내다가 수도꼭지 같은 것이 갑자기 눈앞에 아른 거릴 수도 있다. 물을 충분히 적당하게 받고 있다는 가정하에, 그 끊임없이 나오는 수도꼭지 물을 받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평소보다 많은 양에 좋을 수도 있지만 결국 식물을 시들게 할 것이고 그 수도꼭지도 평생 나오는 것이 아니지 때문에 언젠가는 잠가질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소유하고 집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내 마음을 돌아보고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며 나도 상대에게 성장의 도움을 줌으로써 행복을 서로 느끼는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며 너무 잘해주는 것도 나 스스로 보상과 기대감을 높이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냥 적당히 배려를 하며 애정을 꾸준하게 주는 사람이면 족하다. 내가 집착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충분히 좋은 마음을 보여줬고 알려줬으면 선택은 그 사람의 몫이지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선택에 많이 고통스로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운명이라는 추상적인 말은 나는 잘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믿는다. 나에게 올 사람은 올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갈 운명이기 때문에 붙잡으며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