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회복 과정에서의 감정과 이성
우리는 흔히 힘든 상황, 즉 고통 속에 있을 때 선택과 결정을 강요받을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두 가지 마음으로 나뉜다. 하나는 이후에 여지를 주지 않는 단호한 결정을 빨리 내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통을 겪는 힘든 상황에서 확정적이지 않은 선택은 하되, 나중에 고통 속에서 벗어나 회복을 하고 있을 시간에 다시 그 상황을 생각하며 그때 확정을 짓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성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고, 감정에 의한 선택은 그저 내가 내린 이 선택이나 결정에 의거해, 이후에 일어날 책임과 결과를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돌아봤을 때 후회하는 그런 선택이라 생각한다.
이 선택들은 그 사람의 성격, 성숙도, 감정을 다루는 능력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고통들이 오는 곳은 대부분 타인에 의해서 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감정적으로 오는 고통이나, 내 삶을 위협하는 고통이나 우리는 이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필히 타인에서부터 오는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 이 고통들은 동반해서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 내 삶을 위협하는 고통하는 것조차 누군가의 기대, 나의 기대에 못 미치는 그런 결과를 낳는 것이니, 나에게 화날 수도 있고, 상실의 고통이나 분노 또한 감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 고통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누군가 보기엔 별거 아닌 고통일 수 있어도, 내가 마주한 이 고통은 빨리 벗어나고 싶은 혹독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고통에 벗어나기 위해서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에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걸 잊기 위해서 그저 고통을 마주하지 않고 환상 속에 몸을 맡길 수도 있다. 이것은 그저 쉽게 얻을 수 있는 얕은 엔도르핀, 도파민의 활동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환상 속에서 우리는 잠시 고통을 잊고 감정을 다르게 전환시킬 수 있지만 정작 이성을 마주하는 것은 마주 보지 않고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 고통을 처리하는 방법들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트라우마와 성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이 고통을 최대한 성숙하게 처리해서 회복의 밑거름으로 삶을 성장시킬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