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어떻게 보면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난 꽃의 아름다움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변화와 시각의 대한 시간의 유한성에서 비롯된 게 크다고 본다. 꽃은 변화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꽃은 시들기 때문에, 아름답다. 짧은 순간의 강렬한 시간의 유한성 때문에, 아름답다. 만약 꽃이 1년 내내, 변화하지 않고 계속 피어있다면 아름다움은 많이 떨어질 것이다. 인조 꽃은 처음에 봤을 땐 꽃이 주는 처음의 강렬한 아름다움에 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영원히 그렇게 있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이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별로 아름답지 않게 만든다. 우린 어떻게 보면 무한성 대한 영원함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린 유한한 것들만 사랑할 수밖에 없고, 변화하는 것들밖에 사랑할 수 없다. 무한함은 끝이 없고 변화가 없기 때문에 인간은 못 받아들인다. 권태가 찾아온 후에 삶의 의미를 잃은 후에 그것은 인간으로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기 때문에, 우린 결국 무한함을 못 견디게 된다. 우리가 몇십 년밖에 못 산다는 것이 불행하다고 생각해 봤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변화의 가능성, 성공의 가능성이 있는 것들에 주저하지 않고 희생을 치른다. 그 변화와 성장이 비록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갈지라도, 변화가 어쩔 땐 비극으로 치닫는 방향이라도. 이렇게나 변화를 좋아하는 인간인데 변하지 않는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사는 듯한 느낌, 삶이라는 것이 그 속에서 변화가 있겠지만 끝이라는 변화가 없는 순간, 그건 아름답지 않다고 느낀다. 우린 어떤 소설이나 영화나 영상이 모두 끝이 있는 걸 안다. 그 끝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이야기가 끝났다는 아쉬움, 그 이야기로부터 얻는 여운, 아님 만족감, 혹은 불쾌함을 얻는다. 하지만 만약에 그 끝이 없으면 어떨까?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끝이 있는 건 알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심지어 그 콘텐츠가 몇 년이나 지속돼서 끝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라면 인간은 스스로 내면에서의 끝을 정하고 떠나버린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끝이라는 것이 감정을 유발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선택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외부에서는 끝이 아니라 보이더라도, 자신에게는 그 선택의 끝이 뭔지 알고 있다. 어쩌면 끝을 빠르게 볼 수 있는 쇼츠 영상 같은 것도 사실 인간이 많은 끝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것이 아닐까?
변화는 정말 무섭다. 변화라는 것은 안 좋을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연적인 것이고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인간만의 가치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관심이 되고, 권태가 된다. 어떤 바위를 보면 그것은 우리 눈에 안 보이게 변화하고 있지만 그 변화는 인간의 시간에서 봤을 땐 굉장히 느린 것이라서, 우리는 그 바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느끼고 별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의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변화가 인간의 감정을 끌어내고, 삶을 느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초심을 잃는다는 것이 안 좋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사실 그건 인간의 살아있음을 도외시하는 말이라고 생각이 된다. 물론 변화는 안 좋을 수도 있다.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그것이 인간다움이라는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