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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마, 엄마

by 정애

엄마!


이제 겨우 5월인데 벌써 더워. 이러다 한여름엔 얼마나 더 뜨거워질까? 그때 생각나? 그날도 꽤 더웠던 5월이었잖아. 전날 밤엔 오랜만에 외갓집에 갈 생각에 들떠서 잠들 수 없었지. 가는 길에 들릴 휴게소의 맛난 음식들이 눈앞에 아른아른했거든. 핫바, 핫도그, 아이스크림, 통감자, 구운 오징어……. 분명 엄마가 다 사줄 리는 없으니까, 나 나름대로 우선순위를 꼽아보다가 겨우 잠들었어. 그날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아빠, 엄마, 큰오빠, 작은오빠 그리고 내가 하얗고 귀여운 티코를 타고, 아니 사실 색이 바래 군데군데 희끄무레해진 티코를 타고 서울서 출발할 때부터 이미 내 마음은 둥둥 하늘을 떠다니는 듯했어. 달리는 내내 내가 아는 모든 노래를 불러댔지. 간간이 오빠들도 거들기는 했지만 분명 그건 나의 독무대였어. 매일 세탁소 일 하느라 등이 굽고 어깨가 내려앉은 아빠, 엄마를 위한 나의 세레나데였거든.


서울에서 지리산 자락의 외갓집까지 가는 동안 우린 휴게소를 세 번이나 들렀지. 그때마다 웬일인지 엄마는 뭐가 먹고 싶냐며 내게 물었어. ‘뭐든 좋은 건 큰오빠 먼저, 뭐든 맛있는 건 작은오빠 먼저’가 우리 집 규칙 같은 거였잖아. 근데 그날은 엄마가 내게 먼저 물어봐 주어서 참 좋았어. 엄마가 나도 좋아하는구나 하고 처음 느낀 것 같아. 자기 전에 미리 정해놓은 순서대로, 나는 먹고 싶은 것을 술술 말했지. 엄마는 짜증도 없이, 잔소리도 없이 내가 사달라는 것들을 다 사주었어. 심지어 감기 걸린다며 절대 사주지 않던 아이스크림까지 두말하지 않고 사줘서 감동이었지. 나는 마치 일곱 빛깔 무지개를 타고 노는 듯 노래를 흥얼흥얼, 맛난 음식을 오물오물하며 즐겁게 외갓집으로 향했어.


외갓집엔 할머니 혼자 계셨어. 할아버지는 큰오빠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지. 누렇게 빛바랜 벽에 할아버지 사진이 있었는데, 사실 무서워서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어. 귀신 같아 보였거든. 삼각자처럼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빠글빠글 짧은 파마머리에 분명 처음에는 알록달록했을, 그러나 지금은 얼룩덜룩 물이 난 몸빼 바지를 입고 우리를 맞아주셨지.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을 한껏 펴 웃으며 우리를 안아주시려 했는데, 난 자꾸 몸을 돌려 도망갔어. 할머니가 웅얼웅얼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게 겁났거든. 그땐 어려서 몰랐지, 할머니가 농아라는 사실을. 그저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만 해대는 할머니가 싫었어. 그날 저녁엔 마당 평상 위에서 엄마가 준비해 간 삼겹살과 할머니 텃밭에서 나온 채소들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지. 온갖 벌레들이 몰려들어 사실 제대로 먹기 힘들었지만, 밤하늘을 은은히 밝히는 별, 풀 냄새가 스민 바람, 귓가에 웽웽거리는 벌레 소리가 아직도 아련히 기억나. 그런데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금세 잠들어 버렸지, 뭐야.


자다가 목이 말라 깼더니 엄마와 할머니가 이야길 나누고 있었어. 아니, 사실 엄마 혼자 말하고, 할머니는 알아듣기는 하는 지, 뭐라 뭐라 대답하는 듯했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어렴풋이 이런 내용이었어. ‘혜란이를 두고 갈 테니 엄마가 잘 돌봐줘.’ 나는 겁이 나서 소름이 돋았어. 마치 만화 속의 대왕 개구리가 순식간에 나를 덮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기억나? 왜 그때 내가 만화 영화에 나왔던 대왕 개구리를 엄청 무서워했잖아. 나는 마치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는 만화 주인공처럼 눈을 감은 채 꼼짝하지 않았어. 이건 분명히 꿈이야. 자고 일어나면 없던 일이야. 내일 재미있게 놀아야지.


하지만 꿈은 아니었어. 다음 날 아침, 오빠들은 온 집안을 들쑤시며 정신없이 뛰어놀았지만, 엄마와 아빠는 한숨만 푹푹 쉬었어.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더군.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어. 나는 몰래 방문 앞에 놓인 엄마의 손가방을 들고 오래된 장롱 속으로 숨었지. 장롱 깊숙이 살고 있는 시꺼먼 대왕 개구리가 말을 걸어올 것 같아 두려웠지만 눈을 감고 귀를 막았어. 하지만 이내 장롱문이 열리고 엄마가 나를 장롱에서 꺼내 안았지. 나는 엄마의 손가방을 꽉 부여잡고 울었어. 엄마는 이틀 밤만 자고 온다고, 꼭 데리러 온다고 말했지만 그게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이미 알았지. 속절없이 멀어져가는 티코를 보며 나는 땅바닥을 구르며 엉엉 울었어.


그 후 한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기억이 희미해. 아마 밤이고 낮이고 지쳐 잠들 때까지 울었을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미국에 있던 아빠 친구가 자기가 운영하던 세탁소를 우리에게 넘기겠다고 연락이 왔고,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 나를 데리고 가기가 부담스러워 할머니에게 맡겨둔 거였어. 물론 미국에 정착하면 나를 데려갈 거라고 계획했다지. 하지만 가족들의 미국행은 12년간의 고생도 무색하게 실패로 돌아갔어. 없는 재산 깡그리 끌어모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지만, 친구에게 사기당하고 영주권은 꿈도 못 꾼 채 불법 이민자로 근근이 버텨다가 되돌아왔다고 했지.


12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냐고? 처음엔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그저 서러워 울기만 했어. 이상한 말을 하는 할머니가, 사진 속의 귀신 할아버지가, 장롱 속의 대왕 개구리가 너무 무서웠거든. 마치 파리지옥 무리에 홀로 떨어진 작은 벌레 같았어. 울음을 멈춘 건 한 달쯤 지난 때였을 거야.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거든. 그렇다고 슬픔이 멈춘 건 아니야. 그저 체념한 거지.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는 그곳 작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그 시절은 나름대로 괜찮았지. 전교생이 스무 명 남짓이라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는 데다가 다들 내 처지랑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 아이들이랑 산으로, 들로 다니며 즐겁게 놀았어.


하지만 읍내 중학교로 진학하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지.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단박에 알아보더라. 귀머거리, 벙어리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불쌍한 혜란이. 이름표를 붙인 것도, 이마에 써놓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입학할 때부터 나를 따돌리기 시작하더니 여름방학이 가까워질 때쯤엔 아예 유령 취급을 하더라고. 같은 초등학교 출신 아이들도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어. 아마 같은 취급을 당할까 두려웠겠지. 가끔 우편으로 보내온 미국 연필이며 노트들을 일부러 책상 위에 펼쳐놓기까지 했는데도 통 먹히지 않더군. 오히려 내 별명이 ‘버딸’로 불리기 시작했어. 버려진 딸. 그때 하루가 멀다고 엄마한테 편지를 썼잖아. 빨리 미국으로 불러달라고. 제발 나를 데려가 달라고. 기억나, 엄마?


고등학교 가서도 상황은 여전했지. 어차피 읍내 중학교에서 그대로 읍내 고등학교로 올라간 것이었으니까. 여전히 내 별명은 ‘버딸’. 한술 더 떠서 미국 가느라 버려진 딸이라며 ‘미버딸’이란 별명까지 붙었어. 아무도 나와 점심을 먹거나 등하교를 같이해주지 않았지. 다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내가 공부란 걸 시작했다는 거야. 중학교 때까지는 아이들의 놀림에 납작 엎드리기만 했다면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그 엎드린 자세로 열심히 공부했다는 거지. 워낙 바닥이었던 공부라 쉽진 않았지만, 차근차근 공부하다 보니 선생님들께 칭찬받기도 하고 장학금을 받기도 하고. 할머니와의 생활도 이젠 익숙해져서 웅얼웅얼하는 말도 곧잘 알아듣고 손짓과 눈빛만 봐도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지.


그러다 3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에 엄마와 아빠가 돌아왔어. 온몸에 시꺼먼 우울과 절망을 안고 터덜터덜. 이제 성인이 된 오빠들은 그곳에 남았다고 했지. 나는 엄마가 온다는 소식에 며칠 동안 흥분되어 잠도 오지 않았어. 재회의 순간을 상상하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지.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 12년 만에 만난 엄마는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텅 빈 눈동자로 먼 산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어. 하루 종일 잠에 빠져 지내는 날도 있었고, 밤새 잠 못 자고 마당을 서성대는 날도 있었지. 엄마! 난 그때 솔직히 죽고 싶었어. 12년 동안 ‘엄마를 다시 만난다면’ 하고 상상해 왔던 온갖 희망들이 지옥의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었거든. 엄마와 도란도란 밤새 이야기해야지, 엄마와 손잡고 읍내로 쇼핑가야지, 엄마와 목욕탕 가서 서로 등 밀어줘야지, 엄마와…… 엄마와……. 그때 결심했어, 다시는 엄마를 떠나보내지 않겠다고.


그 후 아빠는 서울로 떠나버리고 할머니와 엄마를 고스란히 떠맡은 건 나였어. 그나마 다행이지, 내가 간호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벌써 간호사가 된 지도 십 년이 넘었어. 그사이 할머니도, 아빠도 돌아가시고 이제 도시로 이사 와서 오롯이 우리 둘만 남았네. 비록 지금 엄마는 인공호흡기가 없이 숨쉬기도 어려운 상태지만, 그래도 내 옆에 있으니 얼마나 좋아. 지금처럼, 우리 둘이, 우리 집에서. 병원에선 이미 뇌 기능이 멈췄다고는 했지만, 난 엄마를 차마 보낼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잖아. 봐! 이렇게 온몸에 온기가 있는데, 이렇게 심장이 뛰고 있는데! 걱정하지 마, 엄마. 내가 잘 돌봐줄게. 난 절대로, 절대로 엄마를 떠나보내지 않을 거야. 근데 엄마. 캄캄한 장롱 속이 무섭지 않아? 대왕 개구리가 말 걸어 오지 않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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