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올해는 어쩌다 보니 혼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한 달 전부터 예상된 일이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 '어떻게 보내야 하나' 눈이 내리지 않는 이 나라에서 순간 나는 내 생각을 하얗게 덮은 눈을 봐버렸다.
근교 여행 하는 것을 생각해보기도 했었는데 얼마 전 허리를 다쳐서 그것도 물거품이 되었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chat GPT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나 포르투갈에 사는 ......인데 현재 이러이러하니 여행 빼고 할 만한 것 10가지만 추천 해달라고...
엔터를 누르기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리스트를 쭉쭉 뽑아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뻔한 리스트를 뽑아대는 것이 아닌가... ㅠㅠ
그래서 추가로 10가지를 더 명령했다.
요리, 영화, 독서, DIY 인테리어, 사진 정리, 유투브 방송...
'휴,,, 그래도 한 가지는 나오겠지...'
스크롤바를 쭉쭉 넘기는데 순간 눈에 들어오는 딱 한 가지가 있었다.
< 감.사.일.기.쓰.기 >
올해는 독일에서 포르투갈로 나라를 옮기는 대이동을 한 해이다.
너무나 많은 일들로 후다닥 지나가는 바람에 '벌써 2023년이 지나고 곧 2024년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2025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었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바람이 불었던 해였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늘 그 바람을 맞으며 사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문제의 바람, 그리움과 외로움의 바람, 언어 소통의 바람, 자녀들의 바람,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의 바람, 긴장의 바람...... 그 바람이 불 때는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제발 그 바람이 빨리 멈추어주길 바랬었다.
그런데 올해를 돌아보니 그 바람이 세차게 불어준 덕분에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가야 할 것들은 무엇이었고, 그 모진 바람 속에서도 견디어 남겨진 것들은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에 왜 그렇게 많은 바람이 불었었는지 지금 당장은 다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바람이 결코 헛된 바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내 인생에 바람을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2025년에도 불어 올 바람을 기꺼이 감사로 받아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