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멕시코엔 특이한 명절이 있다. 멕시코의 할로윈이라 불리는 ‘죽은 자의 날’. 이 죽은 자의 날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바로 <코코>이다. 죽은 자의 날엔 각종 맛있는 음식, 옷, 설탕으로 만든 해골과 꽃을 제단 위에 놓는다. 마리골드의 꽃잎을 거리에 뿌려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제단으로 올 수 있도록 한다.
멕시코 사람들은 죽음을 3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는 심장이 멈췄을 때, 2단계는 화장을 하거나 땅에 묻힐 때, 그리고 마지막으론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때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을 잊지 않기 위해 이러한 축제를 즐긴다.
조용한 분위기 속 제사가 진행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멕시코는 흥겨운 노래와 춤을 추며 죽은 자를 기린다. 멕시코 사람들은 이 죽은 자의 날에 이승과 저승의 문이 열려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별할 수 없다고 믿었다. 구별할 수도 없는 것이 산 자 또한, 해골 분장을 하여 거리를 돌아다닌다.
영화 <코코>는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승 속 자신의 사진이 있어야만 축제를 즐기는 마리골드 다리를 건널 수 있다. 이승의 모습이 저승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만약 이승에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저승의 영혼은 아예 사라져 버린다. 자신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딸(코코, 미구엘에겐 증조 할머니)의 치매와 건강 문제로 미구엘의 고조 할아버지 ‘헥터’는 자신의 영혼이 사라질 위기를 겪는다. 저승 세계에서 헥터를 만나고 돌아온 미구엘은 코코에게 헥터와의 추억인 노래(Remember me)를 불러 주며 가까스로 헥터의 영혼 소멸을 막는다. 노래는 미구엘 집안의 금기였다. 하지만 이 금기를 깨면서 집안의 오해를 풀고 이 대가족이 통합된다.
애니메이션의 특성 상,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세상으로 떨어진다니. 하지만 나는 영화 <코코>가 비현실적인 모습 속에서도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신경 썼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는 해골의 유무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은 같은 공간 속 존재한다. 그 둘이 같은 공간 속 존재해서일까. 나는 죽은 자와 산 자를 굳이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 해골의 모습이 멕시코의 축제처럼 산 자가 해골 분장을 해 함께 즐기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 속 미구엘 또한 죽은 자로 보이기 위해 해골 분장을 한다. 죽은 자의 해골 또한 실제 멕시코 축제에 흔히 보이는 해골들과 유사하게 디자인되었다. 이 때문일까. 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멕시코의 축제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것만 같았다.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재는 바로 음악이다. 음악을 매우 증오하는 집안 속 음악가를 꿈꾸는 손자 ‘미구엘’. ‘헥터’는 음악을 하기 위해 부양해야 할 가족을 버리고 그 이후 잠적을 감췄다. 그 이유로 미구엘의 고조 할머니 ‘이멜다’는 음악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이 대를 이어 받은 자손 또한 음악을 증오한다. 하지만 <코코>의 주인공 손자 미구엘은 달랐다.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가가 되길 원한다. 가족들의 반대에 속상한 미구엘이 죽은 자의 날에 저승 세계로 떨어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돈을 잘 벌 것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 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리기 힘들다. 돈도 중요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어떻게 사냐”라는 말이 있듯,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돈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미구엘의 집안이 왜 음악을 증오하는지 이해도 된다. 그저 하고 싶다고 집안을 버리고 떠난 헥터가 미웠을 것이다. 특히나 이멜다는 집안을 먹여 살리겠다고 신발 사업을 시작하고 그 사업은 성공해 집안 모든 사람이 신발을 만든다. 가족들은 미구엘이 안정적인 신발 사업을 물려 받아 크길 원했고, 미구엘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한 음악을 원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택했던 헥터는 친구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가족들은 그저 헥터를 원망할 뿐이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한 자의 최후는 죽음. 물론 운이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역시 꿈보단 자본이 최고라는 메시지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 <코코>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중요한 포인트를 알려 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코코는 ‘헥터’와 ‘이멜다’의 딸(미구엘에겐 증조 할머니)의 애칭이다. ‘마마 코코’라고 불리는 코코는 영화 속에서 몇 장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코코는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고 어린 미구엘에게 음악을 처음으로 경험시켜 준, 미구엘의 음악성을 유일하게 응원했던 사람이다. 코코는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는데, 코코가 과거 몰래 춤췄던 장소는 현재 미구엘의 비밀 아지트로 변한다.
코코가 중요한 인물인 것은 알았으나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미구엘의 이름이 아닌, 왜 헥터의 딸 코코의 애칭이 제목이 되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코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럿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유들이 너무 뻔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미구엘의 음악성을 발견하게 해 준 코코, 헥터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 헥터가 붙여 준 애칭 등 하지만 이 이유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상업적으로 불리기 쉬운, 기억 속에 잘 남기 위해 붙여 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잘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 점에선 찝찝한 기분이 계속 든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갖고 무겁지 않게 표현한 영화 <코코>. 영화 속에서도 이승보다 저승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기쁨의 축제로 받아들이는 이 모습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슬픔을 잊기 위해 더 몸부림 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메인 OST ‘Remember me’ 또한 슬픈 가사 속 밝은 멜로디를 갖고 있다. 죽음이라는 무겁고 슬픈 소재에 밝은 분위기, 그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영화는 행복하게 끝마쳤지만 엔딩 속 OST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눈물은 나오는데 입은 웃고 있는 기괴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밝은 분위기가 나에겐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왔던 것은 정말 단순하다. ‘가족’이라는 소재로 영화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가족은 반칙이지” 라는 말처럼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 한없이 작아진다. 이 영화는 가족간의 이야기이다. 가족간의 갈등, 가족간의 감동. 미구엘과 헥터는 좋은 파트너인 줄 알았지만 결국 그 둘도 가족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진부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그 반전에 대한 놀라움은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가족끼리 악당을 물리치며 끝난다. 너무나도 이 영화는 “가족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진부할 수 있지만 나는 이 진부함이 나쁘게 다가오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고, 나의 조상들 나의 친척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나는 영화 속 미구엘의 집안이 부러웠다. 과거엔 복작복작하던 명절의 분위기가 지금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족들과의 추억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와 함께 PC방을 가던 언니, 오빠들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고, 건강 문제로 돌아가신 분도 많다. 시간은 나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다같이 흘러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죽는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