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현실을 마주하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늘 계획이 있어야 하고, 정해진 길로 가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난 5년은 그저 하루하루를 마감하기에 급급했다. '장기 플랜' 같은 단어는 내 삶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나의 40대는 아무런 준비 없이,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이미 흘러간 시간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되새겨 본다.
해외에 거주하며 이곳에서 다시 내 직업을 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집안일과 육아는 핑계였을 뿐, 사실 나는 과거의 '라테'만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그랬던가? 사실 나는 과거의 내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날 만큼의 용기도, 나를 통째로 바꿀 만한 자신감도 없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새로운 일을 찾기를 희망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나는 눈치 빠르고 일머리 있다는 이유로 여러 부서를 누볐다. 그때는 그게 좋았다. 나의 존재 이유이자 영광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 경력들은 그리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영어, 독일어, 그리고 프랑스어. 죽기 살기로 해본 것은 아니지만, 언어라는 벽은 결코 낮지 않았다. 모국어로 말할 때는 누구보다 '똑순이'인데, 외국어 앞에 서는 순간 나는 한없이 하찮은 사람이 된다. 그 기분은 솔직히, 정말 거지 같다. 그래도 덕분에 난 참 밝은 사람이 되었다. 부족한 외국어 실력을 메우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자본주의적 미소를 장착하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나의 상황을 인정해야만 했다.
대졸자? 이곳엔 석·박사가 넘쳐난다.
언어? 공용어만 세 개인 나라다.
은행원 경력? 주변을 둘러보면 회계사, 변호사, 교사였던 엄마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나는 나를 드러내고 뽐내는 '관종' 기질조차 없다.
공부를 더 해보라는 권유도 듣지만, 이제는 눈도 침침하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이 맞다. 더 이상 책장과 씨름하며 앉아 있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마른 수건을 짜내듯 고민해 보았다.
첫째, 무엇이든 기록하는 것.
둘째, 매일 외국어를 연습하는 것. (현재는 프랑스어 B1에 도전 중이다.)
셋째, 스스로 고용주(Self-employed)가 되어 시간을 관리하는 것. 의미 없는 유튜브 시청부터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2026년 한정, '온라인 한국어 교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몇 년 전 취득해 둔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어쩌면 새로운 기회의 카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D-day는 '한글 떼기 원데이 코스' 강의안이 완성되는 순간 시작될 것이다.
[프로젝트 : 온라인 한국어 교사]
기간: 2026년 3월 ~ 12월
목표: 영어로 한글 가르치기 (강의안 20개 완성)
방법: 유튜브, 세종학당, 한국어교수학습샘터 등 정보 활용
이미 충분히 정보를 수집했고, 이 직업의 장단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나만의 인사이트를 찾고, 영어를 계속 쓸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타인의 우려나 부정적인 시선은 일단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새겨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직이 덧붙여본다.
"얘들아, 엄마 아직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