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는 부모의 저녁 식탁

그 날 내가 아들에게 화가난 이유

by 여름하늘

나의 15년 직장 생활 중 5년이 넘는 시간을 사내 교육팀에서 보냈다. 사내 강사로 활동하며 고객 응대 서비스 교육을 기획했고, 직접 강의를 했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법,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꾸는 법, 센스 있게 배려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센스가 집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십대 아들과 툭하면 부딪힌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시험 기간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조용히 해 주기, 간식 가져다주기, 괜히 눈치 보지 않게 해 주기 같은 사소한 배려들.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가 잠깐 내려왔다.


“조금만 기다려. 곧 저녁 다 돼.”

예상보다 준비가 늦어졌고, 아이는 조금씩 툴툴댔다. 본인 딴에는 밥을 빨리 먹고 다시 시험공부를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아보카도였다.

저녁상을 막 차리고 있는데 아이가 물었다.


“이거 먹어도 돼요?”
“응, 먹어.”


아이는 아보카도와 토마토를 섞어 과카몰리를 만들었다. 제법 그럴듯했다. 자리에 앉길래 나는 말했다.

“아빠 먼저 맛보시게 해.”


그런데 아이는 비스킷에 슥슥 발라 그대로 자기 입에 넣어 버렸다. 아마 내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하루 중 저녁 시간만큼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남편의 눈에는 그 장면이 다르게 보였던 것 같다. 시험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이 거슬렸었던 것 같다.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한 나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던 것일까.

‘엄마가 차려준 밥을 감사히 먹으면 되지, 뭘 또 따로 만들어.’

‘주면 주는 대로 고맙게 먹을 줄은 알아야지.’


어쩌면 남편은 그 순간, 음식이 아니라 태도를 본 건지도 모르겠다.


“너만 입이야?”

아이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남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 이 자식, 정말 황당하네?”
“지킬 건 지켜야지. 너 그러고 또 밥만 먹고 올라갈 거 아니야? 여기가 식당이야?”


마치 미드의 한 장면처럼, 각자 먹을 것을 들고 제자리에 앉아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식사만 하는 가족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그런 집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남편이 많이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오히려 크게 화를 내지 못했다. 일단은 상황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날 밤, 우리는 또 ‘내 탓이오, 우리 탓이오’를 반복했다.
여기가 미국은 아니지만, 미국 아이처럼 키우지 않겠다고 나름 애써 왔다. 예의와 인성을 중요하게 가르친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오면, 그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진 것처럼 느껴진다.


해외에 살면 어쩔 수 없는 걸까.
한국에 있었어도 마찬가지 였을 것 같다.
밖에서도 이렇게 행동하면 어쩌지. 토종 한국인 부모 밑에서 한국식 가정교육을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왜 아이는 자꾸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결국 그날의 현실적인 결론은 이것이었다.

“앞으로는 아빠가 먼저 숟가락 들기 전까지 다 같이 기다리고 엄마가 차려준 밥에 추가로 뭐 하려고 하지마."

그게 전부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고작 아보카도 하나 때문에 이 사단이 났네.


하지만 아보카도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끝이 없다. 가르치고, 후회하고, 또 반성하고, 다시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일의 반복이다.


우리 아이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은근히 남의 아이와 비교했던 나의 어리석은 날들이 떠오른다.

아이를 가르친다고 말하면서, 정작 내 마음을 먼저 다스리지 못했던 순간들.


돌아보면, 그날 가장 미숙했던 사람은 십대의 아이가 아니라 그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한 나였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 부족한 부모인 나 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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