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케이크를 거절한 그녀

다름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by 여름하늘

첫 번째. 내 친구 이야기.


나는 브라질 사람이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는 없다. 브라질에서는 규모 있는 은행에서 10년 넘게 변호사로 일했다. 남편의 할머니가 룩셈부르크 사람이어서, 남편은 바로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고 우리는 브라질을 떠나 이곳으로 이주를 결심했다. 몇 년을 준비했고, 남편은 이주와 동시에 바로 직장을 구했다.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새로운 삶이 너무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원래 웃음이 많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보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동안은 직장 생활에 매진했고, 한 번의 유산이 있었지만, 아이 없는 삶에 우리 두 사람은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집안일이며, 요리에도 큰 소질은 없었지만, 당분간 전업주부로 지내야 했기에 나름대로 애써 보았다. 그리고 새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케이크를 하나 만들어 들고 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내 케이크를 받기를 거절했다. 잠시 당황했다.

받아만 두고 먹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눈앞에서 거절을 당하니 생각보다 마음이 상했다. 그녀의 차분한 미소 뒤에 두꺼운 유리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행동은 어쩌면 이성적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너무 달랐다. 타국에서 적응하려 애쓰던 나에게 그 일은 작지 않은 상처로 남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녀가 케이크를 받아서, 네가 보지 않는 곳에서 버렸다면 더 기분이 상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받지 않는 게 나았을까?”
“케이크에 뭐가 들어 있는 줄 알고 덥석 받겠어?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 건데. 너무 마음 쓰지 마. 우리랑은 생각 방식이 다른 거야.”

맞는 말이었다. ‘좋은 게 좋다’는 문화에서 살다가 ‘좋은 건 좋지만,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문화로 온 것뿐이었다.




두 번째. 나의 이야기


나의 이웃과 나는 사실 처음부터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독일로 이사 온 첫날, 나는 작은 초콜릿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낯선 이웃이지만, 그래도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서툰 독일어로 나를 소개했고, 그녀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지만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며칠 뒤, 그녀는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이를 위한 보드게임을 선물로 들고.


그날 나는, 이곳에서도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소음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걸을 때마다 바닥이 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익명의 메모 한 장이 도착했다. ‘집 안의 규칙’이라는 제목 아래
저녁 8시 이후 소음 금지, 낮 시간 Ruhezeit(휴식 시간) 준수. 중요한 부분에는 형광펜까지 그어져 있었다.


우리 두 부부의 이름으로 수신자는 있었지만, 발신자 표시는 없는, 딱 그 종이 한 장만 우편함에 들어있었기에, 도대체 누가 보냈는지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그 이후로 이웃의 태도는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누가 그 종이를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이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았고, 마주쳐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을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우리 집 벨을 눌렀다. 그때만큼은 또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변화가 더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처음 건넸던 초콜릿과, 그녀가 들고 왔던 보드게임이 마치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균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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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적으로,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려는 그녀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친구야.


너의 케이크를 거절한 그녀와,

나의 아래층 이웃,

그리고 우리 같은 이방인들.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이 해외에 나온 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 금발의 이웃들과 웃으며 가든파티를 하는 풍경은 여전히 낯설다.

좋은 이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웃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완벽한 곳은 없는지도 모른다.

단지 삶의 터전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뿐, 누군가는 여전히 일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가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다.

여행은 준비할 때가 가장 설렌다고 한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마주하기 전까지, 나의 상상의 나래가 때로는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여행을 시작해 보면 안다. 또 살아보면 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조금은 편해진다는 것을.

너도 옳고, 나도 옳다. 우리는 그저 서로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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