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AI 앞에서 멈칫하다

엄마의 공부방 2

by 여름하늘

결국 나는 오늘 하루를 다 망쳤다.


하루 종일 동영상 하나 만들겠다고 파워포인트만 붙잡고 씨름하다가 깨달았다. 세상은 이미 훨씬 더 멀리 가 있었다는 것을. 나의 낡은 노트북마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뭐라도 만들어 보겠다고 애써 달려들었지만, 오늘 내가 겨우 건진 것은 단 하나였다.


어서 빨리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어요!


내가 쉬고 있었던 지난 5년 동안, 도대체 세상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나름 파워포인트 전문가였고, 엑셀도 고급 수준은 아니었지만 웬만한 업무는 무난하게 처리하곤 했다. 그 정도면 시대에 뒤처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늘 나는 하나하나 자료를 찾아 흐름을 잡고 슬라이드 속에 내용을 채워 넣었다. 필요한 이미지를 찾아 붙이고, 검색창에 “동영상 쉽게 제작하는 방법”을 입력해 보았다. 결과는 넘쳐났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방법은 찾기 어려웠다. 몇 개를 읽어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방법이 왜 이렇게 많은지,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어쩌면 새로운 툴에 대한 거부감과 동시에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AI를 활용한 보고서 만들기”

“AI로 몇 분 만에 동영상 만들기”


왠지 모르게, 답은 그쪽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애초에 계획했던 동영상 작업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우울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는 이렇게 나이만 먹어 가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마음을 브런치에 기록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세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래도 스스로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지금이라도 다시 배우면 된다고.


경기도 평생학습포털 지식(GSEEK)에 들어가 보았다. 필요할 때면 가끔 들어가 보는 곳인데 나처럼 비용을 들여 교육을 받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참 고마운 곳이다. 그 사이 정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올라와 있었다. 무료 교육이지만 내용도 알차고 체계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경력 단절의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AI와 코딩 관련 강의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듣고 싶은 수업 두 개를 골라 두었다.

차근차근 준비가 된 뒤 시작할 생각은 없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이미 내 주변의 세상은 충분히 디지털화되어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은행 업무도 모두 처리할 수 있다. 회사 다닐 때 은행 업무 보려고 휴가까지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는 앱 하나로 학교 선생님과도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다. 전화를 해야 하나, 편지를 써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다.
예전에 여행을 계획하면 늘 Lonely Planet 책을 들고 다녔다. 줄을 치며 공부하듯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면 된다. 구글 지도도 있고, 인터넷에는 수없이 많은 정보가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위에 AI라는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AI는 내가 던지는 질문에 반응한다.

이상하게도 꽤 똑똑하다.


내 생각을 하나씩 알려주면 그것을 정리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준다. 그동안 여러 디지털 툴을 이용해 몇 시간 걸려 만들던 작업을, 질문만 잘하면 몇 분 만에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다.


AI에게 똑똑하게 질문하는 방법.


AI는 말귀도 꽤 잘 알아듣는다. 대충 말해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설명할수록, AI의 대답도 훨씬 정확해진다.


강의 하나를 듣고 나서 문득 책장을 바라보았다. 우리 집 책장에는 이미 파이썬과 딥러닝 책이 꽂혀 있었다.

아마 10년도 더 전에 산 책들일 것이다. 그때는 내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읽지도 않는 책을 왜 샀냐고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던 기억도 난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이긴 것 같다.


앞으로도 AI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제는 AI 친구 하나쯤은 있어야 세상을 살아가기가 조금 덜 어렵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인정하자. 그래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는 나의 이해 속도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다시 배우기 시작하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망쳤다고 너무 심난해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나도 조금 궁금하다.

지금의 이 서툰 노력들이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될지, 아니면 나는 금방 포기하고 말지.


지금으로서는 그저 한 번 더 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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