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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생 Aug 16. 2022

공부의 철학


이 책, <공부의 철학>은 어떤 이론적 위치에 있을까? 제목은 <공부의 철학>, 그리고 저자가 일본인. 편견이겠지만, 나는 이 책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싸구려 자기계발서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1장을 다 읽어갈 때까지도 떨쳐내지 못했다(지금은 떨쳐냈다. 다행히...). 거기다 '프랑스 현대 철학'을 '공부'에 접목했다니. 나는 프랑스 현대 철학을 좋아하고, 또 그것이 공부론에 관해 해줄 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앞의 두 요소와 함께 이 사실을 생각해보라.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 자신이 다양한 책의 이론적 위치를 구분하는 부분을 잠시 살펴보자. "공부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전문서'다. 더욱 한정하면 학문적인 '연구서'다. '책에는 전문서와 그 외의 것이 있다' 혹은 '연구서와 그 외의 것이 있다'처럼 이분법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외의 것'을 우리는 '일반서'라고 부른다." 조금 더 읽어보자. "이 분류로 나누자면 이 책 <공부의 철학>은 준전문서(입문서)와 일반서 사이에 위치한다.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을 기본으로 하므로 준전문서의 측면이 있지만, 내 개인의 경험칙도 담겨 있으므로 일반서이다." 상식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이 설명이 메타적인 언급, 즉 이 책에서 제시한 분류를 통해 이 책 자체를 지시하는 자기지시적인 언급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서 우리는 어쩌면 괴델의 불완정성 원리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기지시적 항이 포함된 체계의 자괴. 책의 구조를 살펴보자. 책은 '이론'편인 1장과 2장, '실천'편인 4장, 그리고 그 둘을 매개하는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있는 점은 '프랑스 현대 철학을 활용한 공부론'임에도 불구하고 이론편에서 현란한 고유명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정신분석학과 동성애 문화를 연구하는 레오 베르사니Leo Bersani를 차용했다. 그는 인간의 근본에는 마조히즘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도가 거의 전부이다. 저자는 직접적인 인용 대신 들뢰즈, 라캉과 데이비슨, 비트겐슈타인 등의 개념을 알기 쉽게 '번역'한 것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예를 들면 들뢰즈의 <마조히즘>에서 따온 사디즘(아이러니)과 마조히즘(유머)이라는 개념쌍을 '츳코미'와 '보케'로 바꾸거나, '타자'를 "부모든 연인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심지어 사과, 고래, 고속도로, 셜록 홈스, 신마저도 전부 '타자'로 간주하기로 하자."라고 정의한 후 "이러한 '타자' 개념은 특히 프랑스 현대 사상에서 두드러진다."라며 근거를 대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식으로.  '굳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런 글쓰기는 왜 이루어졌을까. '준전문서와 일반서 사이에 위치한 책'을 읽을 '대중'을 위한 배려일까? 우리는 이 이상함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철학자의 대중적 글쓰기는 가능할까?


그러나 우리는 사실 잘못된 전제 하에서 논의를 진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아즈마 히로키가 지적한 바대로, (불완전성 정리의 기반이 되는 '일관된 체제'라는) "전제 자체가 전도되어 있다. ... 괴델적 균열이 퍼지기 전에 원추 밑면의 한 층은 항상 이미 사물표상들로 산종되고 있다."(365p) 그러므로 이런 사변은 이만 여기에서 멈추자.


p.s. 나는 여기에서 인용한 <공부의 철학>의 문구가 몇 페이지에 있는지 모른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전자책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사실이 우리의 결론을 수행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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