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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Dec 18. 2023

맨발러를 위한 나이키 신상 맨발화

JUST DO IT!

 오늘도 강풍이 불고 비가 내렸다. 이런 날씨에는 그냥 날씨 핑계를 대고 산을 오르지 않고 싶다.

나는 이런 나의 나태함을 단숨에 밟아버릴 수 있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라서 바로 실행하기로 했다.

시골집 창고에는 장비를 정리해둔 선반이 있다. 망치, 낫, 펜치와 같은 장비들 틈에 빨간 유성 매직 하나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매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발등에 매직으로 나이키의 ‘JUST DO IT!’의 슬로건을 쓰고 상표를 그렸다. 장난기 가득한 나의 입술 언저리와는 달리 매직을 든 나의 손놀림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빨간 매직으로 나이키의 로고와 슬로건을 쓰니 나모 모르게 그 속도감이 내 발바닥에 장착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렇게 발등에 나이키 로고와 슬로건을 쓰고 나니 오늘 같은 궂은 날에도 거뜬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직으로 발등 위에 제작한 맨발화를 신고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산으로 향했다. 나는 전망대까지는 등산화를 신고 올라간다. 전망대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본격적인 산행을 하는 것이다.

늘 맨발로 걷다 보니 아무래도 바닥을 주시하면서 걷는데 자연스럽게 발등에 적힌 나이키의 슬로건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그 상황을 은근히 즐겼다. 그리고 그 강풍과 비바람을 뚫고 올라온 나의 맨발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유머는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가장 힘들고 멈춰진 것 같을 때 유머를 발휘하는 사람이 강자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오늘뿐!이라는 한계를 손끝에 힘을 실어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고 오지 않았는가. 강풍이 불고 비가 내린다고 해서 오늘 할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야 했다. 나는 오늘 문수사에 들러서 약수물을 한 병 떠가려는 계획으로 중봉 쉼터를 올라갔다. 궂은 날씨 탓인지 산을 오르는 내내 지나가는 등산객을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비 오는 날 문수산에 노란 우비를 입고 고장 난 우산을 쓰고 가는 여인이 있다면 바로 필자일 것이다. 어제 강풍을 뚫고 온 우산이 결국 강풍에 못 이겨 뒤집어지면서 철사 마디가 부러져버린 것이다. 어제의 강풍에 비하면 오늘은 비교적 바람의 세기가 약했다.

 나이키 맨발화를 신어서 그런지 중봉 쉼터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거뜬히 올라갔다. 중봉 쉼터를 몇 바퀴 걷다가 샛길로 내려가 문수사로 향했다. 문수산에는 이렇게 작고 예쁜 문수사라는 도량이 있는데 스님도 안 계시고 법당의 문도 늘 닫혀 있다. 약수터의 물만 졸졸졸 흐르고 있다. 나는 그냥 허공에 대고 합장을 했다. 어제부터 내린 비로 문수사의 절벽 틈으로 계곡물이 철철철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나는 옹달샘에 목을 축이러 온 토끼처럼 국자로 물을 떠서 홀짝홀짝 마셨다. 철철철 흘러내려 가는 계곡물을 보니 문수사를 스쳐 가며 보냈던 지난 치병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지난봄에 맨발로 문수사를 왔을 때가 생각났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맨발로 문수사까지 걸어와서 약수터의 물을 떠 마시고 있었다. 문수사는 항상 닫혀 있던 법당이었는데 그날은 법당 문이 열려 있었다.

 인기척이 들러서 물을 마시다가 법당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올려다보니 어떤 남자분이 법당 문을 닫고 나오셨다. 문수사의 법당을 청소하고 나오는 듯했다. ‘스님이신가? 거사님이신가? 신도이신가? 등산객이신가?’ 나는 순간 낯선 그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눈이 마주쳐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그분은 한 쪽 팔 뚝에 ‘안전제일’ 택이 붙어있는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계셨다. 머리는 반 삭발 스타일로 스님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가방도 스님들이 사용하는 잿빛 승복 재질의 걸망을 메고 있었다. 그분은 내가 물을 마시고 있는 약수터로 다가오셨다. 그리고 법당에 공양으로 올라온 미네랄워터 생수를 한 병 건네주셨다. 그것도 모자랐다고 생각하셨는지 가방에서 호박엿 캔디 하나를 꺼내서 주셨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감사함을 담아서 합장을 드렸다. 그분은 돌아가는 듯하더니 뒤돌아서서 나를 보고 물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왜 맨발로 걷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굳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자연 치유하는 암 환자라고 나를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나는 그냥 뭉뚱그려서 “난치병이 있어서요.”라고 답했다. 그분은 질문을 던져놓고도 무안한 듯 “그렇군요. 조심히 가셔요.” 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그분께 법당에 맨발로 들어가서 절을 해도 되는지 여쭤보았다. 그분은 언제든지 고리를 열고 들어가서 맨발로 절을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그분은 도량을 지나서 저 멀리 사라졌다.

사실 그분의 신분이 스님인지 거사님인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분이 괜찮다고 하였으니 나는 법당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걸쇠를 뽑아 문을 당겼더니 끼익~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덜커덩 열렸다. 오래된 법당에서는 향과 습기와 먼지 냄새가 뒤섞여 나는 듯했다. 방석도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작은 법당이었다. 그래도 누가 올려놓고 갔는지 공양미로 쌀도 한 봉지 올라와 있었다. 저 하얀 쌀 한 봉지를 가방에 들고 문수산을 타고 올라와서 절을 하고 가는 그 마음을 따라가 보았다. ‘저 공양미의 시주자는 어떤 마음을 내려놓고 갔을까?’ 나는 시주할 쌀 한 줌도 생수 한 병도 들고 온 것 없이 맨발로 와서는 호박엿에 미네랄 생수까지 받아 가니 큰 빚을 진 것 같았다. ‘나는 어떤 마음을 내려놓고 가야 할까? 잠시 고개를 떨구고 나의 지저분한 맨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약수물을 매일 마실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절을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시점에서 도대체 왜 눈물이 쏟아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약수와 나의 눈물의 개연성을 아직도 이해하지는 못했다.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물이라는 점 빼고는 말이다. 나는 가끔 작고 오래된 문수사 법당에 혼자 앉아서 고요히 명상에 잠기곤 했다. 숨을 고르는 그 시간은 오롯이 그 순간에 있도록 해주었다.

 지난여름에는 문수산에 원터치 모기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낮잠도 자며 산림욕을 즐겼다. 여름에는 피톤치드가 왕성하게 나오는 계절이라 나 같은 자연치유를 하는 암 환우들에게는 치유의 시즌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기장을 펼쳐서 벤치에 누워 모기장 너머로 보이는 초록빛 나무 그늘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기장 밖에서 윙윙대는 모기들을 따돌리며 그늘 아래에서 자는 낮잠은 꿀맛 같았다. ‘이게 인생이지!’ 나는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나의 이른 안식년을 즐기곤 했다. 봄에는 문수사 도량에 흰민들레가 피어났다. 계단 모서리 쪽에도 머위가 파릇파릇하게 올라오고 돌나물도 피어났다. 문수사에 피어난 봄나물들을 뜯어다가 무쳐도 먹고 부쳐도 먹고 비벼도 먹으며 맛있는 봄을 보냈다. 문수사에 왔다가 가는 고양이나 새들처럼 나는 가끔씩 맨발로 와서 절을 하고 가거나 물을 마시고 갔다. 문수사의 약수물은 문수보살이 내게 건네주는 감로수처럼 느껴졌다. 이 감로수는 그간 내게 웃음이 되어 온몸을 돌며 간지럽게도 하고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것은 문수보살의 자비가 담긴 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았다. 문수보살이 내어준 감로수를 마시며 모든 생명에는 자비가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과 마음에 흐르는 이 자비도 문수사 계곡물처럼 철철철 흘러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룰 수 있기를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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