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를레이 요를레이 요롤로로요롤로로로~
설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아침 일찍 남편과 성북동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오전에 절에서 합동차례가 있어서 부지런을 떨었다. 이미 사찰 주차장은 꽉 차서 만원이었고 근처 갓길도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남편이 재빠르게 갓길에 빈 공간을 발견하여 멀지 않은 곳에 주차를 하고 함께 절로 향했다.
일주문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고 도량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도량에는 합동차례를 하러 온 불자들로 붐볐다.
우측에는 공양미로 올릴 쌀과 초를 판매하고 있었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 또는 정랑이라고 호칭하는데 나는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몸과 마음이 괜스레 맑고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이미 대웅전에서는 법회가 시작되었고 대웅전 안에는 이미 아침 일찍부터 온 불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만석이었다. 마당에는 방풍 비닐로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서 비닐 텐트 안에 앉아있었다. 우리도 텐트 안으로 들어가 빈 의자를 찾아서 앉았다. 텐트 안에는 난로 두 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와 남편은 두 손을 합장하고 스님과 함께 반야심경을 외웠다. 오랜만에 절에 와서 외우는 반야심경이었는데 잊어버리지 않고 줄줄줄 입 밖으로 잘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도 작은 소리로 내뱉는데 주옥같은 반야심경이 또르르륵 내 마음에 굴러들어 왔다.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가 없고 뒤바뀐 꿈에서 깨어나 열반에 들어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의지하여 반야바라밀다시...... 그 많은 인파들 속에서도 조용히 경을 읊으며 고요하게 마음을 관찰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마음자리에 앉아서 환하고 환한 그 빛을 응시한다.
법회가 끝나고 합동차례를 드리기 위해서 불자들이 법당문에서부터 도량까지 길게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 줄에 서서 한참 동안 차례를 기다렸다. 어느덧 우리의 순서가 다가왔고 작은 마음을 담아서 봉투를 준비하여 보시하고 절을 하고 나왔다.
합동 차례를 마치고 나오는데 남편이 광장 시장에 들러서 빈대떡이나 먹고 가자고 했다. 남편과 광장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광장 시장에는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빈대떡, 비빔밥, 칼국수, 만둣국, 떡볶이, 어묵, 문어숙회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우리는 느낌이 꽂히는 빈대떡 집에 들어가서 빈대떡, 바지락 칼국수, 광장시장김밥, 떡볶이를 시켰다. 그 가게에는 손님들이 계속 들어오고 나가며 회전율이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총 6명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앉아서 김밥을 말고 있었고 한 명은 빈대떡을 열나게 부치고 있었다. 한 명은 카운터를 지키며 계산을 담당했고 나머지 세명은 1층과 2층의 서빙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1층과 2층까지 꽉꽉 차고 회전율도 이렇게 좋다면 하루 매출이 천만 원은 찍겠다 싶었다.
나와 남편은 떡볶이 하나 남기고 모든 그릇을 싹 다 비웠다.
집에 돌아가는데 남편이 결국 서울에 온 김에 용산 CGV에 들러서 영화'서울의 봄'을 보자고 했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 시대의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역사를 스크린으로 직면해야 했다. 나는 이런 영화 보는 것이 매우 힘들다. 특히 영화관은 캄캄하게 폐쇄된 공간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마주한 채로 거대한 사운드까지 너무 자극적이다. 영화가 시작된 순간부터 나는 그 공간을 나갈 수도 없고 그대로 모두 흡수해야 하는 괴로움을 느껴야했다. 게다가 미리 예매를 해뒀다면 모르겠는데 갑작스럽게 예매를 하게 되어 마지막 딱 남은 장애인 전용 두 좌석을 끊는 바람에 맨 앞 줄에서 봐야 했다.
나는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순간부터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고 아예 시선을 피해버렸다.
긴 시간 끝에 영화가 끝났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이런 영화 정말 보고 싶지 않아. 다음부터는 나한테 같이 영화 보자고 하지 말고 그냥 혼자 봐. 영화는 혼자 보는 게 맛있지." 남편은 머쓱하게 머리를 넘기며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요들 송이나 연습하기로하고 스위스의 아가씨 노래를 들으며 신나게 발성을 했다. 남편은 나의 요들송 발성이 꽤 시끄럽고 듣기 싫었을 테다. 자신과 피 튀기는 영화를 함께 봐준 아내에게 미안했는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나는 남편이 들으라고 귓가에 대고 더욱 크게 요로레이 요로레이 요로레이 요로레이 요로레이 요로레이 요로레이 유후! 하고 불러댔다. 웃을 만도 한데 남편은 전혀 개의치 않고 운전에 집중하였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결국 폭소하고 말았다.
요즘 요들송에 빠졌다. 요들송을 맛깔나게 연습해서 꽃피는 봄에는 산에서 요들송을 멋지게 부르며 스위스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아닌 문수산의 아름다운 아줌마 버전의 요들송으로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하이오 레이호 하이호 레이호 하이호 레이호 하이호 레이히~!
요들의 봄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