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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Feb 19. 2024

운무 속에서 만나 긴부리 새

참된 아름다움은 무위에서 나온다.

어제부터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에 창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오늘 문수산은 운무가 내려앉아 베일에 싸인 여인처럼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습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욱 더웠다. 패딩 점퍼를 벗고 맨발로 촉촉하게 젖은 산을 처벅처벅 걸었다. 흥겨운 산속의 요들러 노래를 부르며 운무를 헤치며 굽이 굽이 고개를 넘어가며 산을 올라갔다. "홀라디 호라라디 호라라디 호라라디호 호라라디 로우리~ 호라라디 호라라디 호라라디호~홀라라디 로우리~"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산을 타고 있는데 운무 속에서 낯선 등산객 두 명과 마주쳤다.

순간 민망함이 운무처럼 나를 덮쳐버렸다. 나는 냅다 모른척하고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가며 운무 속으로 사라졌다. 그 텐션으로 중봉쉼터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나뭇가지 끝에 봉긋하게 올라온 망울마다 봄비가 대롱 대롱 달려있었다. 마주치는 가지마다 손끝으로 내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오늘은 중봉쉼터에서 짙은 운무 속에서 부리가 길고 머리에 멋진 휘장 장식털을 한 새를 만났다.

천천히 숨죽이고 도둑 발걸음으로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그 새에게 다가갔다.

새는 나와 자신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것을 냅다 알아차리고 저편의 높은 나뭇가지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이런 장면들은 비 오는 날 운무를 헤쳐서 산에 올라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미장센이다.

오늘 하루 중에 운무 속에서 긴 부리의 예쁜 새를 만나서 바라본 그 몇 초의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비가 온 날에는 새들이 바쁘다. 비 오는 날 산에 오면 새들이 유난히 지저귄다. 비 오는 날 땅 속에 있던 벌레들이 많이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떨어진 낙엽 사이로 부지런히 부리를 쪼며 먹이를 찾고 있다.

비가 오면 운무에 싸여 그 신비함이 이루 말로 형용하기 어렵고 눈이 오면 하얀 산이 되어 눈의 여왕처럼 우아함이 이루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아름다움은 참으로 자연에서 나온다. 결코 인위적인 어떤 문명의 기술이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얼마나 인위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길들여져 있는가?

무위자연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까지 정화시켜 준다.

그 아름다움에 그저 찬탄할 뿐이다.

무위의 대도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다면 치유는 뱀의 꼬리와 같아서 자연히 따라오는 이치일 것이다.

뱀을 잡으려면 머리와 목덜미를 잡아야 할 것이다.

참된 아름다움은 무위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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