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에 이름을 붙여주자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은 스스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를 확률이 높다. 직무에 이름을 붙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상사가 '너는 ~라는 일을 줄 거야'라고 알려주면 다행이다. 대개는 소속된 부서명을 따라간다. 예를 들면, A 신입사원이 해외영업팀에 배정받았다고 치자. 그는 법인 관리라는 업무를 맡았다. 그가 생각하는 법인 관리는 법인을 잘 리딩하는 일이고 영업인의 KPI는 매출 고점을 찍는 일이다. 즉 그는 법인을 잘 감독하여 이 부서 매출 왕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지 법인과 본사 간 올빼미 역할을 할 뿐이다. A가 2~3년 차가 되었을 때 여기서 오는 괴리감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많은 방법이 있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은 '직무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내 일을 재정의하여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 업무 방향은 그 후에 잡는 것이다.
직무를 재정의하는데 꽤 시간이 걸리는 직무들이 있다.
~전략, 개척 같은 창의적인 단어가 붙는 일들이 대체로 그렇다.
오늘은 시장개척에 초점을 맞춰보겠다.
한자사전에서 '시장개척(市場開拓)'은 상품 판매의 지역을 새로이 더 넓히는 일이다. 시장개척의 '개척(開拓)'은 거친 땅을 일구어 논과 밭 같은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들거나 새로운 영역, 운명, 진로 따위를 처음으로 열어가는 일이다. 성경에서 개척은 제 아무리 에브라임 산지가 험하고 적군의 병력이 강할지라도 끝내 이기는 일이라 말했다. (수 17:15, 17:18)
시장개척 일을 해오면서 그동안 제멋대로 상상한 '개척'의 이미지를 업무에 투영했다. 아무리 많은 고객을 찔러보아도 성과가 없으면 그간 노력이 다 부질없는 시한부 직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떠올려보면 어떤가. 멀리 나갔다 온 것만 해도 목적의 반은 달성한 것이다. 비포장도로에 가로수 하나 없는 길이래도 어떤가, 사람이 가는 곳이 곧 길이니 말이다.
이 생각이 정신 건강에는 좋다.
현실적인 얘기를 해보자.
기업은 반드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날이 온다. 그 사실을 깨닫는 날이 늦으면 늦을수록, 실행이 더디면 더딜수록 땅따먹기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줄어든다. 기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정착한 기업일수록 여유로울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곳에서 성공하지 못해도 손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 있는 기업이나 인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부딪혀야 한다.
뺏어야 한다.
이겨야 한다.
직무를 재정의하기 전에 나를 정의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2가지 부류로 나누는 것이다.
첫 번째, 나는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편하게 가고 싶은 사람인가?
이 2가지 중 하나가 확실해지면 내가 개척 전략만 세우고 실행만 하면 되는 사람인지, 실행이 성과로 전환되게 해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즉 개척이 머리로 하는 싸움인지, 이겨야 하는 싸움인지 재정의할 수 있다. 어차피 성과는 기업이 가져간다. 개인은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재정의가 끝나면 업무 방향은 더 쉽게 정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