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가능한 일

by 자유인

20대 초반, 가장 친했던 친구와 관계가 끊겼다. 일일이 설명하기 힘든 어떤 복잡한 일이 우리 사이에 일어났고, 그 일의 책임이 내게 있었기에 그 친구가 쌍욕을 퍼붓는 것으로 관계는 종말을 맞았다. 하지만 가족만큼 가까웠던 친구와 절연되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난 너무 어렸고, 또 불안정했다. 차라리 깔끔하게 사과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떠나는 길을 막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것은 더 큰 화를 불렀고, 끝내 나는 혼자 남겨졌다.


후유증은 끈질기고,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다. 친구와 멀어지고, 몇 달 후 유럽 여행을 한 달 동안 했다. 거기서도 어김없이 친구는 불쑥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럴 때면 죄책감, 후회 따위의 감정들이 숨통을 조였다. 아름다운 북유럽의 풍경도 그 친구가 떠오르는 걸 막아낼 수는 없었다. 어디에 있건 상관하지 않고 그는 내 발길을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그는 꿈에도 나타났다. 꿈에서 그는 예전처럼 나를 환대하던가 적대하던가 했다. 잠에서 깨면 옷은 온통 땀에 젖어있었다. 하루하루는 지옥이었고, 차라리 그가 흔적 없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지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의식 깊숙한 곳 어딘가 문신처럼 각인돼 매일 선명하게 떠올랐다.

또 그 친구와 비슷한 체구, 비슷한 외모의 어떤 사람을 볼 때면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혹시 그 친구인가?’


그 친구가 아니란 걸 깨달은 후에도 평정심을 되찾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일까. 막연하기만 했다. 그 친구는 나를 영구적으로, 완전히 떠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여파 속에 파묻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를 매일 떠올리고, 죄의식을 느끼고, 악몽을 꾸고, 그의 잔상 비슷한 것을 볼 때마다 심장을 움켜잡는 삶이 매일 같이 반복되고 있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던데, 시간만 충분히 지나고 나면 서서히 잊혀질까. 아니, 그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는 이미 발가락, 심장과 같은 신체의 일부가 되어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일로써 기능하고 있다. 시간의 여신이 베푸는 세례는 내게 해당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녀라도 신체를 떼어갈 수는 없는 법이니.


그와 얽힌 다른 친구들이 여럿 있다. 과거의 우리는 시간이 되는 대로 모여 술을 마시고 놀곤 했다. 하지만 그와 멀어지고 난 후, 나는 그 무리에서 빠져나와 독립된 생활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따로, 개인적으로 만났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실 때면 버릇처럼 이 말을 했다.

“나는 너네들 결혼식 못 간다”

상상에서 마주하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그를 현실에서 마주하는 건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나대로 삶을 살았다. 그러는 동안 거짓말처럼 그 친구는 점차 희미해졌다. 그가 의식의 수면 위로 떡하니 고개를 내밀 때도 딱히 고통스럽거나 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세시대를 대하는 현대인처럼, 그것은 먼 옛날의 일이었고, 그래서 특별한 치우침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이 그 친구를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얼떨결에 승낙의 뜻을 전했고, 마침내 그와 5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나는 약속이 잡히자 그가 뼈와 살이 붙어있는, 실제 살아있는 인간임에 놀랐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그는 오랫동안, 나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는 나의 의식, 무의식,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 어딘가에 기거하며 추상적인 차원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그를 관념적 존재로서 상정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가 추상적 차원에서 부유하는 동안 그의 현실성에 대한 감각을 잃어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를 구체적 실체가 아닌 추상적 존재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의 약속을 앞두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는 이틀에 걸쳐 썼고, 여러 번 퇴고를 거듭한 끝에 완성했다. 편지에는 그간의 생각과 미안함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약속 당일 우리는 과거 여느 때처럼 술을 마셨다. 다른 친구들도 함께 있었기 때문에 둘 사이의 그간 묵혀둔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그는 내 머릿속의 추상적 존재가 아닌,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 존재가 되어갔다. 그간 관념적 차원에서 나를 적대하던 것과는 달리, 실제의 그는 나를 잘 맞아주었다. 다른 친구들이 화장실 간 사이 그에게 조용히 편지를 건넸다.


다음날, 친구 중 한 명은 나를 그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초대했다. 이후, 단톡방에서 그와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몇 달이 지난 후, 단톡방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 물론 거기엔 그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행 때 우리는 허물없이 장난치며 놀았고,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그와 나는 서스름 없이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장난을 쳤다. 여행이 끝나고 며칠 후, 그는 5년 간의 정적을 깨고 내게 개인톡을 보냈다. 오랜 기간 그 친구로 고통스러웠던 사실 자체가 없던 일처럼 느껴졌다. 결국 우리 둘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는 고전적인 결론을 맺고 싶지만, 그것은 아니고, 현재로서는 서로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은 경계하는 불문율을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다.


과거의 나는 시간의 힘을 얕잡아 봤다. 현재의 고통이 시간을 초월할 만큼 집요하고 파괴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참석할 모든 결혼식에 불참할 거라는 소리를 당당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얕잡아보았던 시간은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에서 움직였다. 나는 인격적으로 성장해 갔고, 친구들은 물밑에서 재회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그의 분노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이 복잡한 전개 양상은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내 인지 영역 밖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편지를 써도 이상하게 썼을 것이고, 그와의 만남 이후 관계의 회귀를 꾀하고자 개인톡을 보내며

질척였을 것이다. 그가 부담을 느끼던 말던 나의 결핍을 채우는 것이 우선 사항이었다. 당시 나는 그를 억지로 만나게 해 준다고 해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친구를 적절하게 대하는 일은 당시 내 그릇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읽고, 글을 적고, 여러 경험을 하고, 사색을 하는 동안 나는 인격적으로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었다. 인간관계에 있어 여유도 생겼다. 이제는 시간의 흐름에 조용히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취하는 사소한 행동으로 그가 부담스럽지 않길 바란다. 흘러가는 대로 두면 시간이 알아서 제 할 일을 할 것이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의 꾸준한 노력도 역할이 컸다. 무엇보다 나의 죄책감, 그의 분노가 시간에 섞여 서서히 희석되었다. 인생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학교육의 현실: 형식주의의 무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