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독립선언을 하기까지
요리한 지 어느덧 3년 정도 되었다. 요리 시작의 출발점이 언제라고 정확히 딱 집어 말하기엔 애매하지만, 휴대폰 사진 폴더 속 가장 오래된 요리 사진을 기준으로 하자면 그 정도가 된 것 같다.
나는 혼자 사는 남자의 전형에 가까웠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편의점,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런 남자였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 아니어서 어릴 때도 반찬 투정을 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때, 때때로 친구들이 석식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햄버거 같은 기름진 음식을 먹으러 학교 밖을 나가면, 난 거기에 개의치 않고, 급식을 받아 묵묵히 식당의 한 자리를 지키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국이든 반찬이든 고기만 조금 들어가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친구들이 석식을 포기하고 다른 음식을 먹으러 나간 당시 결정이 아직도 납득되지 않는다. 그때 메뉴, 진심으로 맛있었는데.
요리에 관심이 없던 건 음식 자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어디 맛집에 가자고 제안이라도 하면 거절하기 일쑤였고, 줄을 서야 하는 식당에는 웬만하면 얼씬도 하지 않았으며, 따로 군것질도 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 매점도 거의 가지 않았다. 오히려 쉬는 시간마다 군것질하러 매점으로 득달같이 달려가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짧은 쉬는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사람 많은 북적이는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어야 할 만큼, 그만큼 군것질이 절박했던 걸까?
티비에 백종원 얼굴이 도배되고, 음식 프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한창 유행을 탈 때가 있었다. 음식 프로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그 시절, 절간의 스님이 가질 관심만큼 거기에 관심을 가졌다. 유튜브 먹방 ‘같은 것’도 당연히 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매점으로 달려가는 친구들을 볼 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는 음식 프로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거의 매일 요리를 한다. 새로 시도할 요리를 알아보고, 장을 보고, 레시피를 따라 요리한다. 다른 나라의 요리, 이국적인 향신료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휑했던 냉장고에는 각종 조미료, 소스, 음식 재료로 가득찼다. 시에서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요리 교실에도 자주 갔다. 요리 관련 책을 읽고, 먹방도 즐겨 보게 되었다.
끝내는 엄마에게 선언했다.
이제는 내가 알아서 요리해 먹겠다, 반찬이나 국 같은 것은 안 해놔도 된다는 ‘음식 독립 선언’이었다. 날짜를 정확히 기록해 둘 걸 그랬다. 개인사적으로는 나름 역사적인 날이었는데. 엄마가 혹여나 자신의 역할 일부를 빼앗긴 것에 대해 서운해할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내게는 음식 독립의 날이었지만, 엄마에게는 앞치마 해방의 날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임무는 평화적으로 내게 이양되었다. 이때부터 삼시세끼는 내가 해결해야 할 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