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가다 작명소가 꽤나 있는 것들을 보면서 '아직 장사가 되니까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마냥 예쁜 이름보다 좋은 팔자를 가진 이름을 자식에게 지어주겠다는 마음들이 저 철학관들을 지탱하고 있으리라.
능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인지 우리나라 들꽃과 묘하게 다른 능소화가 정말 중국에서 온 품종이라는 말을 듣고부터 '역시 그랬군' 하고 맘이 식어버렸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능소화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별로 예뻐보이지도 않는 그것을 길에서 볼때마다 휴대폰으로 찍는다. 차츰 날이 더워지면 길목에서 능소화를 찾기도 한다. 사실은 능소화를 좋아하고 있나..?
아래는 전문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8506
나는 이 글을 여름마다 펴본다. 김지영 에디터의 글이다. 그는 여름향 물씬 나는 이 글을 대체로 벚꽃을 기대하고 있을 2월의 끝자락에 썼다.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까. 그의 삶이 푹푹찌는 여름 한가운데 있었을까? 아무리 땀을 닦아도 흐르는 계절에서 괴로워하고 있었을까 넘겨짚어 본다.
우연일지, 계절이 주는 체력의 저하 때문일지 어쩌면 두 이유가 함께 나를 괴롭혀서일지 나는 여름의 초입부터 끝자락까지 무기력과 싸운다. 무기력은 왜인지 축축 늘어져 뚫고 나가야 할 시간을 길게 늘어뜨리는 단어 같지만, 여름을 돌이켜보면 나는 늘 투쟁 속이었다. 굵직하고 치열한 싸움의 기억 때문에 언제나 여름은 짧게 기억된다. 여름=무기력과의 전쟁. 이 짧은 문장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실제로 길어지고 있는 여름이 내 기억 속에 오면 단숨이다.
색다른 기억들이 새겨져 있을수록 시간은 길어지고, 같은 기억의 반복은 시간을 짧게 만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무기력을 안아버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무기력에 잠기기도 하면서. 엎치락 뒤치락 그렇게 무기력을 안고 산다. 그럴때 능소화를 보면 참 꼿꼿해 보인다. 너도 여름인데 어쩜 그렇게 고상하니. 무기력에게 얻어맞아 으르렁 거리고 있을 때 능소화를 보면 더욱 얄궂다. 더운 날을 비웃어버린 능소화가 더운 날에게 지고 말아버린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럼에도 능소화는 내가 이뤄내고 싶은 것을 이루고 존재하고야 만다. 그리고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서 부럽다. 더위를 업신여기는 그 고고함. 그런 것들이 가지고 싶다. 제아무리 나를 늘어지게 하는 무더위일지라도 비웃음 한 번 날리고 꼿꼿이 자세를 유지하고 싶다.
수술 후 운동을 못 했더니 등이 쉽게 굽는다. 힘을 주고 걸어도 더위에 근육이 한풀 더 꺾인다.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이 여름을 올해는 어떻게 채워야 하나.
내 이름에는 특별한 뜻이 없다. 좋은 한자를 써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지만 능소화처럼 이야기나 정신이 담긴 이름은 아니다. 아마 대체로가 그렇겠다.
응, 살아내야겠지.
더위 속에 괴로이 피어난 주홍빛 이름 모를 꽃에 이름을 붙였다면 끝내 내 삶에도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 나서 붙여진 이름과 나고 붙이는 이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