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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09. 2021

런던 남자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06. 육욕 : 상처는 당신의 상상에서 시작된다

육욕 : 미모(美貌), 애교(愛嬌), 말소리, 이성의 부드러운 살결, 사랑스러운 인상(人相)에 대한 탐욕이다

3개월 남짓 한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첫 비행을 하게 되는 순간까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드디어 삼 개월의 사막 생활을 청산하고 처음으로 1박 2일 여행을 하게 될 곳은 런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생처음 밟아보는 영국 땅, 그 모든 것들이 기대되는 여정이었다.


이번 달 비행 스케줄이 떴을 때부터 빅벤과 템스강을 볼 생각에 들떠있는 나와 달리 동료들 반응이 시큰둥하다.

우리가 머무르는 호텔은 다운타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외각에 위치했는데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시니어 크루들은 이렇게 하룻밤만 지내고 오는 스케줄엔 거리가 왕복 두 시간이나 되는 여정을 피하고, 대신 동네에서 식료품이나 생필품 등을 쇼핑한다고 했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방에만 있는다고?

아싸 그럼 나 혼자 가지 뭐!’

혼자 여행하는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 사람에게 승무원은 최적의 직업이 아닐 수없다.

Tate modern에서 타임랩스로 촬영한 템스강

      


빅벤 앞에서 멋있게 셀카를 찍으려는데 구도가 잘 잡히질 않는다. 흔한 셀카봉도 준비하지 못하고 나온 탓에 자꾸만 초점 없는 사진만 건지는 게 슬슬 지쳐갈 무렵이었다.

 “내가 찍어줄까? 가방 이리 줘!”

곱실거리는 머리칼에 큰 키를 가지고 있던 그가 친구들 무리를 벗어나 한참을 카메라와 씨름하고 있던 내쪽으로 걸어와 말은 건넨다.

 “고마워..!”

괜히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일부러 부탁 없이 혼자 끙끙거렸는데, 로컬이면 하지 않았을 빅벤과의 셀카에 목숨을 걸고 있었던 나는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한 관광객이었나 보다.


요즘 티브이나 유튜브를 보면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일도 많고,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의외로 나에겐 직접 영국 사람을 만날 일이 많지 않았다.

신사의 나라, 영국. 젠틀맨, 섹시한 악센트, 전통, 역사, 클래식. 그래서 영국을 떠올리면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들은 내게도 적잖은 환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 살아?”

“아니, 잠깐 비행 왔어.”

아, 승무원이구나!, 혹시 한국인이야?”

“아. 응!”

“나 한국 친구들 많거든! 반가워, 릭이야”



빅벤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지는 늦은 오후였으니 저녁을 먹고 호텔로 출발하면 거의 자정이 될 것 같았다.

레스토랑에서 혼밥을 할까 했지만, 새벽부터 비행준비를 했던 게 고단해서 호텔로 돌아가는 지하철로 향했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호텔. 로비로 들어가려는 찰나 맞은편에 작은 피자가게가 보인다.

‘두 판에 6.99 파운드면 나쁘지 않네!’


피자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찍었던 사진들을 구경했다. 그중에 몇 장은 엄마에게 보내주고, sns 프로필 사진 도 업로드 했다.

“ 여기 주문하신 페퍼로니 피자 나왔어요!”

방으로 올라가 따끈한 피자를 먹을 생각해 들뜬 내가 카운터로 바짝 몸을 기대며 물었다.

“ 네, 6.99파운드 맞죠?”


가방을 뒤지다가 뒷골이 싸한 게 느껴진다.

아, 현금봉투가 없다.

크루들은 호텔에 도착하면 체류하는 날짜수에 맞춰 그 나라 화폐로 용돈을 받는다. 그 돈이 담긴 봉투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유럽. 크루들이 신신당부를 했기에 수시로 가방을 확인했는데 도대체 언제.....

“ 아..... 릭 이 새끼...”


과연, 사람이든 일이든 직접 체험해 봐야 한다는 내 대쪽 같은 신념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신사의 나라에서 온 릭은 내게 전혀 젠틀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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