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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08. 2021

당신들, 이거 국제사기야!

05. 아빠 : 외로울 때 거칠어지는 사람들

[ 최종 합격입니다. 워크 비자 발급을 위한 자세한 안내는 추후 메일을 통해 전달드리겠습니다.]


영어 필기시험을 포함한 네 번의 인터뷰를 마치고 이 곳에 머무른 지 딱 10일째 되는 날, 햇살이 유난히 뜨거운 오후였다. 면접장을 나와 밖을 향해 걷는 내내 되뇌는 엄마 생각으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엄마 나 합격했어..!’


비자 발급은 시간이 꽤 걸려서 현지인이 아닌 경우에는 국제 메일로 송달되는 형태로 입사가 진행되었기에 그 날저녁 급하게 호텔을 퇴실 한 뒤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이륙을 앞둔 기내는 고요했다. 창밖으로 화물 지게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고 기내는 바쁜 승무원들과 승객들로 소란스러웠지만 마치 다른 세계에 동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그들과 완전히 분리된 느낌이 들었다.

창문을 바라보는 내내 그동안의 일들을 상기하는데 느닷없이 아빠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갓난쟁이인 나를 두고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아빠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업데이트된 내용이 있는지 메일함을 뒤져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 거실은 엄마가 청소기 돌리는 소리로 시끄럽고 창밖으론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한두 달이면 도착했을 비자가 수개월간 감감무소식이다. 외국항공사 채용은 확실히 국내 항공사보다 변수가 많고 입사일을 받아놓고도 수가 틀리면 채용이 취소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지원자들의 행동이 조심스럽다. 내가 합격한 회사의 경우, 비자를 담당하는 하청 에이전시가 따로 있어 관련 사항은 그쪽과 상의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입사 후 살게 될 기숙사가 완공이 될 때까지 추후 안내를 기다리라는 입장이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처음 보내준 비자의 3개월 유효기간이 만료가 되면 다시  번째 비자발급은 문제가 없는지 확실히 매듭지어야만 했다. 에이전시 측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드나 로컬 지원자들은 애초 계약사항에 기숙사가 보장되는 경우가 없어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안내해준 에이전시라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에 면접  받아놓은 HR 부서로 메일을 보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나는 청천벽력 같은 회신을 받는다.


[기숙사는 제공되지 않으며, 첫 번째 비자로 오지 않을 경우 재발급은 불허합니다]


이미 비자는 만료가 되어 갈 수 없는 상황. 즉시 에이전시에 따졌으나, 걱정 말라는 뻔한 답변만 돌아왔고 나는 회사와 에이전시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사실부터 참을 수 없었다.

“ 에이전시 총책임자 번호나 메일을 알려주세요. 제가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요.”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자 어느새 내 몸엔 다시 독이 바짝 들어있었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나도 출국하면 다시는 아빠 보러 안 와! 걱정하지 마!!”

아빠는 알아서 한다는 내 말이 미덥지 않았나 보다.

국제사기를 당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 때는 내 인내심도 폭발해 결국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걱정하는 마음을 돌기 돋친 투박한 말들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아빠가 싫어서, 이럴 때는 나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

감정이 격해지면 남의 속도 모른 채 일부러 상처 내려고 작정한 것처럼 긁어대는 말들이 미웠다.


[비자가 도착했으니 서명 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에이전시 본사에 항의 메일을 보내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변명에, 거짓말이 들통나자 내쪽에서 나긋나긋하게 국제소송을 거론했던 게 먹힌 모양이다. 마지막 회신에서 그녀는, 자신이 수 천명의 한국인을 인터뷰했고 비자업무를 맡았으나 이렇게 직접 항의 한 사람은 처음이라며 나를 무섭게 비난했다. 뭐, 당연한 말씀. 남들이랑 똑같았으면 이런 방법으로 합격해서 당신에게 메일 보낼 일도 없었겠지. (덧붙이자면, 입사 후 회사에선 이 일을 계기로 해당 에이전시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삼일 내로 건강검진을 마치고 모든 수속준비를 마쳐야 하는 바람에 할일이 태산이었다. 아빠에겐 화가 아직도 단단히 나있는 상태여서 엄마에게만 상황을 알리고 부랴부랴 짐을 싸기 시작했다.

‘ 팔자에 역마살이 있나, 한 곳에 붙어있질 못하는구나.’

다시 8개월 만의 출국이었다.




유난히 추운 새벽이었다. 아침에 출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공항 도착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매해야만 했다. 그래서 집을 나선 시간은 새벽 세시.

인천까지는 꼬박 네 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캐리어 두 개를 낑낑대며 방을 나오는데 열린 안방 문으로 뒤따라 아빠가 나온다. 엄마한테 터미널까지 혼자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미리 말해놓았는데 어쩐 일인지 다들 일어나 옷까지 입고 있었다.


혼자 가겠다고 했잖아. 날씨도 추운데 어딜 가려고 옷을 입었어

“그래도 같이 배웅해야지, 딸 멀리 가는 건데.”


대꾸하는 엄마 옆에서 아빠는 말없이 신발을 신는다.

아빠가 운전하던 차는 몇 개월 전 사업이 무산되면서 이미 처분된 상태였다. 우리 세 식 구로 가득 찬 콜택시는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정적으로 조용했다. 공항버스를 타는 곳은 첫 번째 창구에 있었는데 새벽 세시인데도 해외여행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탑승까지 20분 정도는 여유가 있어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어째 가는 사람보다 아빠 엄마가 더 안절부절이다.


[ 제1 터미널행 공항버스 3시 20분 차량 승객분들 탑승해 주십시오 ]


매표소 직원의 안내에 부랴부랴 버스 쪽을 향하는데 어느새 따라붙은 아빠가 돌덩이처럼 무거운 캐리어를 낚아채 짐칸에 넣는다. 괜스레 내게 빠진 게 없냐고 묻는 아빠 얼굴에 새로 보는 주름들이 많다. 눈시울이 빨개지는 엄마를 한번 안고 그 옆에 아빠를 안았다. 이번엔 싸우기도 했겠다, 아빠랑은 정 떼기가 수월하겠다 생각했던 내가 멍청이였지. 몇 번을 머릿속에 상상했던 이 순간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입술을 꼭 깨문 채 창가 너머로 익숙하고 어색한 얼굴들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손을 흔들었다가 무언가 말을 건네 봤다가 입모양을 만들고 웃어봤다가, 그동안 살피지 못했던 서로의 설움들을 발견하면서.

나를 태운 버스가 터미널 모퉁이를 돌고서야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어린아이 같이 우는 엄마가 보인다.

내가 처음 그녀로부터 독립했던 19  내리는 어느 겨울날처럼.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돌림노래마냥 시작된 통곡은 이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흠뻑 적시더니 고속도로를 진입하고도 한참을 멈추질 않았다.


나눌  없자 자기 밥그릇 챙긴다고 자꾸만 부모 곁을 떠나는 내가 가여웠을 엄마는 감히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 없고, 그런 자식을 하루빨리  안으로 들이고 은 아빠는 두려움속에 세상을 마주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간다.

누가 자와 각도기를 이용해 반으로 정확히 나누어 합쳐놓은 것처럼, 나는 나의 상처이자 사랑이고 전부인 그들을 참 많이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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