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네 이야기 3화
큰 마트에 온 현수네 가족.
현수가 미는 카트, 그 안에 인주가 들어가 앉아 있고, 혜진은 그 카트 오른쪽 모서리를 잡고 걷는다.
그리고 한주가 앉은 유모차를 밀고 가는 미라, 필요한 물건을 집어서 현수가 미는 카트 안에 담는다.
마트를 걷다가 드디어 장난감 진열대를 보게 된 혜진, 현수가 미는 카트를 잡아끌며 그쪽 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장난감 진열대에 전시된 인형을 손으로 가리키며 만만한 현수에게 떼를 쓰기 시작한다.
“아빠, 백설공주 인형.”
미라의 다짐을 거스를 수 없는 현수, 혜진 말을 자른다.
“안 돼.”
“아빠, 백설공주~.”
혜진의 애절한 요구에 흔들리는 현수는 마음에 없는 말을 책 읽듯이 줄줄이 엮어낸다.
“집에 인형이 있는데 인형을 또 사면 안 됩니다. 백설공주는 욕심 많은 어린이를 싫어합니다. 일곱 난쟁이가 혜진 어린이를 잡으러 옵니다.”
현수의 말에 오히려 약이 오른 혜진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친다.
“아빠, 백설공주~우!”
미라의 다짐과 혜진의 요구 사이에서 눈치 봐야 하는 현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엄마는 백설공주를 싫어합니다. 백설공주 사면 혜진이 혼납니다. 아빠도 혼납니다. 백설공주도 혼납니다.”
그러나 막무가내 혜진에게는 소용이 없다. 더 단호하게 또박또밖 소리를 지르는 혜진.
“아. 빠! 백. 설. 공. 주!”
혜진의 귀여운 앙탈을 버틸 수 없는 현수, 미라 있는 쪽을 바라본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미라, 혜진이 떼쓰는 것을 못 본 체하며 유모차를 밀면서 슬금슬금 멀어져 간다. 현수는 미라의 그런 모습에 야속함을 느낀다.
혜진의 압박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버거운 현수, 때마침 카트 안에 앉아 있는 인주가 현수를 바라보며 두 팔을 벌린다. 현수는 혜진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고자 인주를 얼른 안으며 딴전을 피운다.
“오, 우리 똥강아지, 심심했어요?”
“...”
현수의 물음에 인주가 아닌 혜진이 빚 받으로 온 빚쟁이 마냥 소리친다.
“아. 빠~ 인, 형, 사, 줘!.”
인주는 대답이 없고, 혜진은 인형에 대한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현수는 말 못 하는 인주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간다.
“인주야, 누나처럼 이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그 말에 혜진은 양 미간에 힘을 잔뜩 집어넣으며 눈을 아래로 깐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때린다~.!”
현수는 혜진의 깜찍한 위협을 바라보며 놀리듯이 말한다.
“어구, 무서워라.”
인주를 안은 현수는 혜진의 앙탈에 시달리면서 카트를 밀며 나아간다.
혜진은 장난감 진열대로 카트를 다시 끌고 가기 위해 현수의 옷을 잡고 늘어진다.
마음 약한 현수는 카트를 멈춰 미라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단념한 듯 카트를 밀고 나간다.
쇼핑을 마치고 자동차에 오른 가족.
자동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지하 출구를 향해 올라간다. 지하차도의 미끄럼 방지 요철로 인해 자동차가 ‘두두두두’ 하며 진동한다.
“아~.”
이번에는 인주 혼자 소리를 지른다.
현수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혜진이 궁금하여 백미러로 혜진을 슬쩍 본다.
원하던 인형을 못 사서 세상 다 잃은듯한 표정으로 뾰로통하게 앉아 있는 혜진.
현수는 혜진의 그런 모습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말을 꺼낸다.
“백설공주 인형은 혜진이가 여섯 살 되면 사줄게.”
인형을 못 사서 속이 상한 혜진이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여섯 살인데...”
혜진의 ‘여섯 살’이라는 말에 현수는 ‘아차’ 싶어 얼른 말을 바꾼다.
“응, 만으로 여섯 살 되면 사다 줄게.”
“만으로 여섯 살이 뭐야?”
궁금증이 발동한 혜진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현수는 혜진에게 만 나이를 설명할 방법을 몰라 쩔쩔매기 시작한다.
“그게 뭐냐 하면.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당황하는 현수의 모습을 보며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드디어 아빠가 혜진이의 궁금증 함정에 빠져들었습니다. 하하하.”
미라의 놀리는 듯한 말에 현수는 재빨리 생각을 가다듬은 후 아부하듯 대답한다.
“혜진 생일이 진짜 여섯 살이 되는 날이거든, 혜진 생일 때 아빠가 인형 사줄게.”
현수의 말에 혜진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현수에게 묻는다.
“아빠, 그럼 내 생일 몇 번 자면 와?”
“지금이 6월이니까… 백오십 번 자면 돼.”
아직 숫자 감각이 둔한 혜진, 미라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엄마. 백 오십 번이 많은 거야?”
미라가 혜진에게 숫자 크기를 말해준다.
“혜진이 일에서 백까지 숫자세기 하지?”
“응.”
“그거 백까지 세고 조금 더 세면 돼.”
혜진의 어리둥절한 표정.
현수는 그런 혜진을 보며 웃는다.
현수네 자동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한다.
현수가 차에서 내려 물건이 잔뜩 들은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먼저 올라간다.
자동차 뒷자리에 혜진의 시계와 안경 그리고 핸드백 등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자동차 뒷자리의 물건을 정리하는 미라에게 혜진이 조른다.
“엄마, 놀이터.”
일단 집 밖으로 나온 혜진이 곱게 집에 들어갈 리 없다는 것을 아는 미라, 현수에게 떠넘긴다.
“엄마는 한주 때문에 못 가. 아빠랑 갔다 와.”
쇼핑백을 집에 올려놓고 아이들을 데리러 내려오는 현수를 혜진이 조른다.
“아빠, 놀이터.”
혜진에게 인형을 사주지 못해 미안한 현수가 혜진의 말을 순순히 받아준다.
“그럼 동네 한 바퀴 돌까?”
“인주도 아빠 따라 놀러 가야지.”
미라의 말에 현수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한주가 타던 유모차를 꺼내 인주를 앉힌다.
혜진은 유모차의 오른쪽 손잡이를 잡고 현수와 나란히 걸어간다.
미라가 걸어가는 혜진을 뒤에서 바라보며 말한다.
“강동 날라리, 잘 놀고 오세요.”
인형을 사주지 않은 미라가 야속한 혜진은 미라의 말은 무시한 채 현수와 재잘거리며 걷는다.
“아빠, 우리 아이스크림도 사먹자~.”
한주를 안은 미라는 그들의 가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현수가 미는 유모차를 붙잡고 열심히 재잘거리며 걷는 혜진,
미라와 같은 연배인 석현 엄마가 그 옆을 지나간다.
“아유, 혜진이 오늘은 아빠랑 놀러 가네.”
"..."
대답 없는 거만한 혜진을 대신하여 현수가 석현 엄마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혜진은 석현 엄마에게 인사 대신 자랑을 늘어놓는다.
“우리 아이스크림 사러 가요.”
“호호호, 혜진이는 좋겠네.”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해야지.”
현수가 혜진에게 인사를 보채자 혜진은 천진난만한 말투로 석현 엄마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아유, 이뻐라, 인사도 잘하네.”
석현 엄마의 말에 현수가 민망한 듯 웃으며 말한다.
“엎드려 절 받기죠.”
“호호호. 얘들이 다 그렇죠.”
석현 엄마는 혜진을 보며 빙긋 웃어준 후 길을 간다.
걸어가면서 현수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혜진.
“아빠, 내 생일날 백설공주 사주는 거야?”
“응, 생일선물로 사줄게.”
“나도 생일선물 알아, 미술학원에서 생일선물 주고 그랬어.”
“그래, 혜진이 생일 때 아빠가 백설공주 인형 선물할게.”
“아빠, 내 생일 빨리 오게 해 줘~.”
유모차를 미는 현수와 혜진이 다정하게 말하며 공원을 향해 걸어간다.
현수는 인주가 탄 유모차를 밀며 혜진과 함께 공원 입구에 들어선다.
공원 입구에 조그마한 상점이 있고, 그 앞에 전동으로 움직이는 앙증맞은 놀이기구가 놓여있다.
“아빠, 아이스크림.”
현수는 상점에서 흰색과 빨간색의 아이스크림콘을 하나씩 사서 혜진과 인주에게 쥐여준다.
“아빠, 아이스크림 까줘.”
현수는 벤치 쪽으로 가서 혜진과 인주를 벤치에 앉힌 후 혜진의 아이스크림콘 포장을 뜯어준다. 이어서 인주 아이스크림콘도 포장을 뜯어서 쥐여준다.
“혜진이 아이스크림 맛있어?”
“응, 맛있어.”
“그럼, 노래 불러봐.”
혜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유치원에서 그랬듯 손까지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한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탔다네♪ 너무너무 재미가 좋아 좋아 랄랄라♬ 다른 친구 코끼리를 불렀네♪.”
혜진의 노래를 들은 현수가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뭐?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린다고?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이렇게 부조리한 동요가 있을 수 있지?.”
현수의 중얼거림을 들은 혜진이 현수에게 묻는다.
“아빠, 이 노래 싫어?”
“아니, 그냥 너무 웃겨서 그래.”
그러면서 현수 혼자 또 중얼거린다.
“아무리 아이들이 무식하다지만, 어떻게 이런 노래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할까.”
투덜거리는 현수의 혼잣말에 혜진이 현수에게 다시 묻는다.
“아빠, 노래 그만해?”
“아니, 계속해.”
혜진이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두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탔다네♪ 너무너무 재미가 좋아 좋아 랄랄라♬ 다른 친구 코끼리를 불렀네♪.”
이어지는 혜진의 노래에 다시 기가 막히는 현수, 혜진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뭐, 두 마리 코끼리라고? 그럼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이렇게 계속 늘어나는 거야?”
“응.”
혜진의 순진한 대답에 현수는 노래 부르는 유치원을 상상한다.
유치원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유치원 선생님들이 사무실에서 모여 잡담하고 있다.
한 명의 유치원 선생님이 말한다.
“지금 얘들이 몇 마리째 부르고 있어요?”
“잠시만요.”
다른 유치원 선생님이 사무실 건너편의 유치원 교실을 슬쩍 보며 노랫소리들 듣는다.
‘♪육십 세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탔다네♪...’
“아직 육십 세 마리째 하고 있어요.”
“아직 백 마리까지는 시간이 많네, 호호호, 저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놀고 있는 유치원 선생님, 그것도 모르고 입을 크게 벌려가며 경쟁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유치원생들...
이런 상상을 하는 현수가 혼잣말로 이 부조리한 동요에 대해서 평가한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무지한 아이들에게 노래 한 곡 가르쳐 놓고 아주 뽕을 뽑는구만.”
혜진은 공원 입구 구멍가게 앞에 놓인 말 모형의 전동 놀이기구를 손으로 가리킨다.
“아빠, 저것.”
“말 타고 싶어?”
“응.”
현수는 유모차를 밀며 놀이기구 앞으로 간다.
혜진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현수에게 맡기고 말 모형 놀이기구에 올라탄다.
현수가 동전 투입구에 동전을 밀어 넣자, 놀이기구가 음악 소리와 함께 아래위로 끄덕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수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혜진을 호명한다.
“꿈나무 미술학원 김혜진 어린이~”
“예~”
“재미있어요?”
“예, 재미있어요~.”
“만세~ 해보세요.”
혜진은 아래위로 끄덕이며 움직이는 놀이기구에서 두 손을 살짝 든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는 현수, 유모차에 앉아 있는 인주는 말을 타는 혜진을 무심히 쳐다본다.
이윽고 놀이기구가 멈추고 혜진이 내려온다.
그 옆의 두더지 잡기 놀이기구가 놓여있고 열 살 전후의 아이가 방망이를 내리치고 있다.
혜진은 두더지 잡기 놀이기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빠, 저거.”
“안돼, 저것은 학생이 하는 거야.”
“으응으응, 아빠~.”
“안 돼, 저건 혜진이 학생 되면 하자.”
떼를 쓰는 혜진에게 현수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건넨 후 유모차를 밀며 공원 안 운동장으로 간다.
두더지 잡기 놀이를 하지 못한 혜진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현수를 따라간다.
혜진의 불만을 모른척하며 걸어가는 현수, 혜진이 불렀던 노래를 능청스럽게 부른다.
“열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뒤따라 가던 혜진이 현수가 부르는 동요 중간에 끼어든다.
“아빠, 그거 아니야!”
“왜 아니야?”
“세 마리 할 차례야.”
현수는 웃으며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세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탔다네♪”
현수가 노래를 멈추며 말한다.
“그다음은 잘 모르겠다, 혜진이가 불러줘.”
혜진이 이어서 노래를 부른다. 유치원에서 그랬듯 손까지 좌우로 흔들며 부른다.
“너무너무 재미가 좋아 좋아 랄랄라♬ 다른 친구 코끼리를 불렀네♪.”
뒤따라 오며 노래 부르는 혜진, 현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