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 날라리

다둥이네 이야기 제2화

by 여름

이른 아침, 주방 조리대에 서서 라면으로 식사를 마친 현수는 싱크대에 식기를 옮겨놓는다. 그리고 작은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들고 나온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안방에서 나오는 미라,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현수를 보며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묻는다.

“도서관에 가요?”

“응.”

“오후에 마트에 좀 가야 하는데, 분유도 좀 사야 하고.”

“점심때 올 거야.”

안방에서 한주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미라는 안방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잘 다녀오세요.”

현수도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베란다를 통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안방의 반투명 유리창에 부딪쳐 눈이 부시다.

미라가 젖병을 흔들며 안방에 들어온다.

방금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아직 치우지 않은 요 위에 앉아서 노는 혜진, 자기 나이 또래의 모습을 한 ‘똑순이’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는?”

“아빠는 도서관에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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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는 인주를 들어 자신의 양다리 사이에 눕혀 젖병을 물린다.

“아빠 언제 와?”

“점심때 올 거야.”

“그럼 20분에 와?”

“그래 20분.”

시간과 관련된 단어라고는 고작 ‘20분’ 밖에 모르는 혜진, 엄마와 했던 대화를 흉내 내며 인형놀이를 다시 시작한다.


인형을 대신하여 묻는 혜진.

“아빠는 어디 갔어요?”

이어서 엄마처럼 인형에게 대답하는 혜진.

“아빠는 도서관에 갔어요.”

그러자 인형이 혜진에게 묻는다.

“그럼, 아빠는 왜 나하고 안 놀고 도서관에 갔어요?”

“아빠는 도서관이 재미있어서 도서관에 갔어요.”

엄마의 다정한 말투를 흉내 낸 혜진은 이어서 자신의 야무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나는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더 재미있어요!”


미라는 인형을 앞세워 자기 바램을 ‘발칙하게’ 말하는 혜진을 바라보며 웃는다.


창문을 때리던 눈부신 햇살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점심때가 된다.

인주는 누워서 젖병을 잡고 태평스럽게 우유를 빨고 있고, 혜진은 방바닥에 누워 양손으로 양발을 잡고 뒹굴거리며 심심함을 달래고 있다. 혜진 콧구멍에 화장지가 끼워져 있고 그 주위로 코피 흔적이 보인다. 그런 혜진이 몸을 뒤집어서 엎드리며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 언제 와?”

“올 때가 다 됐어.”

“그럼 20분에 와?”

“그래 20분에 와.”

현관문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에 엎드려 있던 혜진이 발딱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가자 인주도 일어나서 젖병을 입에 물고 혜진을 뒤쫓아간다.


혜진의 작은 콧구멍에 커다랗게 끼워진 화장지, 그것을 본 현수는 나오는 웃을을 억지로 참으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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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이 코피 났어?”

“인주가 때렸어.”

인주에게 맞은 것을 나름 심각하게, 어찌 보면 자랑스럽게 말하는 혜진.

그리고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척 해주는 현수.

“뭐! 인주가?”

현수는 젖병을 물고 서 있는 인주를 바라본다.

“하…. 이렇게 해맑은 얼굴을 한 녀석이 어떻게 누나를 조팰 수 있을까? 그거 참 신기하네.”

현수의 ‘조팼다’는 말에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조팼다는 것은 좀 그렇고 그냥 얼굴을 손으로 밀었는데 코피가 났어요.”

“하기야 나도 어릴 때 코피가 잘 났으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현수.

혜진이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아빠가 인주를 혼내줄 줄 알았는데...

현수는 가방에서 과자 두 봉지를 꺼내서 흔든다.

“아빠가 과자를 사왔지롱!”

혜진은 현수가 주는 과자봉지를 받아 들며 다시 한번 자신의 피해를 다시 호소한다.

“아빠, 인주는 주지 마, 인주가 나를 때렸어.”

“그럴까?”

남은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있는 현수는 인주를 안고 작은방으로 건너간다.



“혜진 아빠, 마트 갈 준비가 다 되었어요.”

미라의 말에 안방으로 건너온 현수는 한껏 치장한 혜진의 모습을 신기한 듯이 바라본다.

깜찍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는 혜진, 거기다 스카프로 감싼 머리, 하트 모양의 장난감 선글라스, 앙증맞은 손목시계와 분홍색 구두로 ‘유치찬란’하게 구색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 꼴에 조그마한 핸드백까지 앞으로 걸쳐서 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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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현수는 책장 위에 놓아둔 캠코더를 집어 든다. 그리고 혜진의 모습을 캠코더로 찍으며 인터뷰하듯이 묻는다.

“아, 우리 강동 날라리, 어디 가세요?”

“도서관에요.”

혜진은 현수가 가는 도서관을 재미있게 노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 말에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날라리 하고 도서관은 좀 안 어울린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현수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인터뷰’를 이어간다.

“도서관에 왜 가세요?”

“놀러 가요.”

그 말을 들은 미라의 이어지는 멘트.

“혜진이가 도서관 물 다 흐리네, 하하하.”


현수는 혜진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묻는다.

“혜진이 시계 지금 몇 시예요?”

“20분이에요.”

미라가 웃으며 혜진의 '20분' 의미를 현수에게 설명해준다.

“하하하, 혜진이는 항상 20분이라 그래요. 미술학원에 갈 때도 '엄마 나 20분에 올게' 하면서 가고, 내가 잠시 밖에 나갈 때도 '엄마 20분에 와'하고. 하하하.”

자기 나름 ‘20분’이라는 고차원 단어를 말한 혜진, 현수는 혜진의 시간 표현에 양념을 쳐준다.

“지금은 마트 가는 이십 분이에요.”


현수는 숙인 자세의 미라의 등에 한주를 업힌 후 아기 포대기를 감싸준다,

미라는 아기 포대기 띠를 묶으며 말한다.

“우리 한주 일용할 분유를 사러 마트에 갈까요?”

그 말에 현수가 인주를 들어 안으며 말한다.

“인주도 차 타고 마트에 갈까요?”

현수가 앞장서서 집을 나서자 혜진도 요술봉을 들고 따라나선다.



5층 높이의 소형 아파트 현관에서 인주를 안은 현수와 요술봉을 든 혜진 그리고 한주를 업은 미라가 나온다.

일행은 아파트 앞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에 다다른다.

미라는 혜진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자동차 문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문이 열려라, 얍!”

혜진도 요술봉을 자동차 문을 향해 뻗으며 앙증맞은 목소리로 주문은 왼다.

“문이 열려라,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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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 누르자 자동차에서 '삐빅'하는 소리가 난다.

혜진은 자신의 주문으로 문을 열었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한다.

“엄마, 문 열었어.”

“어머나, 고마워라! 우리 혜진이.”

자동차 뒷좌석 문을 여는 미라.

혜진과 인주가 자동차 안으로 들어간다. 미라도 업었던 한주를 안고 차 안으로 들어간다.


현수가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의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TV에서 나오는 아동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하는 것처럼 리듬을 살려서 묻는다.

“준비됐나요♪~?”

혜진도 리듬에 맞추어 대답한다.

“준비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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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주는 가만히 있다. 현수는 다시 인주를 바라보며 리듬을 살려 묻는다.

“인주도, 준비됐나요♪~?”

인주는 무심한 한마디로 대답을 끝낸다.

“응.”

인주의 반응을 기대했던 현수는 민망한 듯 웃는다.


가족이 탄 자동차가 아파트 주차장을 벗어나 큰길을 달린다.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다 달라고 하면 돼요? 안 돼요?”

혜진의 다짐을 받으려는 미라, 그러나 혜진은 낮은 톤 한마디로 미라의 다짐을 간단히 무시한다.

“공주인형.”

“집에 인형 있잖아.”

몰아부치는 미라의 말에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혜진, 침착하고 낮게 말한다.

“아기 인형 말고 공주 인형.”

어쩌다 수세로 몰린 미라는 목에 힘을 주며 말한다.

“엄마는 공주 인형 안 사줄 거야.”


미라와 혜진이 실랑이하는 소리를 들은 현수가 궁금한 듯 미라에게 묻는다.

“아기 인형은 뭐야?”

“지금 가지고 있는 똑순이 인형을 혜진이는 아기 인형이라고 불러요.”

“아하, 그래서 혜진이가 공주인형 사 달라고 하는구나.”

미라는 혜진의 요구에 넘어갈 것 같은 물렁한 현수에게 미리 못을 박는다.

“인형 사주지 마세요. 한번 사주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쉽게 물러설 혜진이 아니다.


자동차가 코너를 돌며 속도를 줄여서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경사진 지하차도에 설치된 미끄럼 방지 요철로 인해 자동차가 ‘두두두두’ 하며 진동한다.

“엄마~ 공주인혀~어~엉~.”

자동차의 진동으로 인해 자신의 목소리가 바이브레이션 되는 것이 신기한 혜진은 다시 목소리를 내어본다.

“아~~~.”

혜진은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가 신기하여 목소리를 점점 크게 한다.

“아~~~.”

현수 자동차가 지하 1층을 지나 지하 2층으로 내려간다.

옆에 앉은 인주도 혜진을 따라서 목소리를 낸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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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품에 안겨있던 한주는 혜진과 인주가 지르는 소리에 놀라서 운다.

“조용히 해, 한주가 놀래잖아.”

그래도 멈출 줄 모르는 아이들. 두 녀석이 함께 소리를 지른다.

“아~~~.”

“아~~~.”

우는 한주를 손으로 토닥이며 달래는 미라, 혜진과 인주가 소리 지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는다. 미라는 그런 녀석들이 너무나 귀엽다.

그러나 이것이 나중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부조리한 상황을 불러올지 미라는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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