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네 이야기 1화
VTR로 재생되는 TV 화면에 예닐곱 살 아이들이 나와서 동요에 맞춰 춤추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춤을 추는 두 살 인주, TV 화면에 나오는 아이들의 율동 동작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 엉덩이를 어설프게 흔들어댄다.
이부자리에 앉아 졸음에 겨운 눈을 하고 있는 엄마 - 미라는 TV에서 나오는 신나는 동요에 맞춰 마지못해 손뼉을 치면서 무료하게 인주의 흥을 돋는다. 그리고 몸을 흔드는 인주 또한 아무런 표정이 없다. 참으로 어색한 안방 풍경.
이 와중에 다섯 살 혜진은 교자상 위에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윽고 TV에서 나오던 한 곡의 동요가 끝나자 미라는 아이들에게 애원하듯 말한다.
“어린이들, 이제 잡시다. 엄마 졸려요.”
두 아이와 갓난쟁이 아기 한주까지 하루 종일 돌보느라 지친 미라가 애원하듯이 말하지만, 놀고 있는 녀석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낮잠을 실컷 자서 아직도 생생한 혜진, 지친 엄마 대신 또 다른 놀이상대를 찾는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혜진의 물음에 미라는 10시 10분을 가리키는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몰라요. 이제 제발 잡시다.”
그때 거실 쪽에서 현관문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딸그락'하고 들린다.
혜진은 쥐고 있던 크레파스를 내던지고 거실로 뛰쳐나간다. 또 다른 동요로 이제 막 엉덩이를 흔들어대기 시작하던 인주도 혜진을 따라 뒤뚱거리며 쫓아간다.
밀려오는 졸음을 버티던 미라는 '이때다' 싶어 얼른 TV와 VTR을 끈 후 잽싸게 이부자리에 눕는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서류 가방을 든 현수가 들어선다.
거실로 뛰쳐나와 폴짝폴짝 뛰며 현수를 반갑게 맞이하는 혜진.
“아빠! 아빠!”
현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혜진을 들어서 안는다. 그러나 반가워하던 혜진이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다.
“아이 냄새, 엄마, 아빠 술 먹었어.”
안방을 향해 미라에게 일러바치듯 소리치는 혜진, 현수는 혜진의 깜찍한 배신에 허탈한 듯 웃는다.
뒤따라 나온 인주가 현수를 올려다보며 안아달라고 두 팔을 벌린다.
현수는 혜진을 내려놓고 인주를 들어 안으며 안방을 힐끗 들여다본다. 자려고 누워있는 미라, 현수는 그런 미라의 눈치를 힐금힐금 보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현수는 미라의 따가운 시선을 안고 있는 인주의 몸으로 막으며 안방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막내 한주가 누워있는 유아침대 옆에 선 후 인주를 내려놓는다.
유아침대에서 두 팔을 벌려 나비잠을 자는 갓난쟁이 한주.
그 유아침대 옆에 서서 신기한 듯이 한주를 바라보는 현수,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붙어 서서 한주를 바라보는 혜진과 인주.
현수가 한주의 볼을 만지려 손을 내밀자 뒤에서 마뜩잖은 눈으로 현수를 꼬나보고 있던 미라가 기어이 현수에게 소리친다.
“에이, 손!”
미라의 지적에 머쓱해진 현수는 딴전을 피우려는 듯 인주를 바닥에 누인다.
“인주, 우리 오래간만에 키 크는 쑥쑥이 한 번 해볼까?”
현수는 인주의 양팔을 잡고 머리 위로 쭉 편다. 그리고 인주의 왼손을 잡고 인주의 머리를 감싸본다.
인주의 정수리를 휘감은 왼쪽 팔의 손끝이 오른쪽 귀 윗부분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것이 신기한 현수는 자신의 팔 길이도 가늠해 보기 위해 오른팔을 들어 자기 머리를 휘감는다.
현수의 오른손 손가락 마디가 그의 왼쪽 귀를 덮는다.
“인주는 아직도 머리 큰 외계인이야, 외계인, 빨리 지구인이 되어야 할 텐데.”
현수가 그런 인주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웃자, 누워있는 인주도 현수를 따라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혜진도 왼손을 들어 자기 머리를 휘감아본다.
현수는 혜진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웃으며 혜진의 볼을 살짝 꼬집는다.
현수에게 잔소리할 기회를 노리는 미라, 아이들을 볼모로 딴전을 피우는 현수...
그러다가 미라는 포기한 듯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한다.
“혜진아, 엄마 잠 온다. 빨리 자자. 아빠에게 '안녕히 주무세요' 하렴.”
미라의 말에 현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나 작은방으로 건너간다.
혜진과 인주도 쫓겨가는 현수의 뒤를 따라 안방에서 나간다.
작은방 문이 열리면서 형광등이 켜지고 현수와 혜진이 방 안으로 들어선다. 뒤이어 인주도 뒤뚱뒤뚱 따라 들어온다.
현수는 옷장을 열어 옷을 갈아입는 동안 현수의 책상 의자에 앉아 있는 혜진. 반바지로 갈아입은 현수가 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혜진이 감시하듯 묻는다.
“아빠, 어디 가?”
“화장실, 손 씻으러.”
혜진은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만지기 시작하고, 인주는 의자를 잡고 서서 그런 혜진을 쳐다본다.
잠시 후 현수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방으로 들어오자 혜진이 묻는다.
“아빠, 컴퓨터 켜줘.”
“안 돼, 컴퓨터 만지면 고장 나.”
현수는 의자에 앉은 혜진을 들어서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혜진과 인주 두 녀석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잠을 잘 늦은 시간에 아이들을 작은방에 마냥 있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가자니 눈을 까꾸장하게 뜨고 현수를 노리고 있는 미라가 버겁기도 하고... 그러다가 현수는 아이들을 어르듯이 말한다.
“우리 저 방으로 갑시다. 자 갑시다.”
현수는 두 팔을 펼쳐 닭 몰이하듯 혜진과 인주를 몰고 작은방에서 나간다.
현수가 혜진과 인주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오자 잠을 자려고 모로 누워있던 미라가 고개를 살짝 들며 말한다.
“어린이들, 빨리 코코넨네 합시다. 잠잘 시간이에요.”
미라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는 혜진, 작은방으로 도망치듯 건너갈 기회를 노리는 현수를 보며 말한다.
“아빠, 과자 사러 가자.”
미라의 눈치를 살피는 현수는 어떻게든 안방에서 벗어나고자 혜진 말에 조심스럽게 동조한다.
“그래. 갈까?”
딸과 아버지의 대화에 누워있던 미라가 앉으며 끼어든다.
“안 돼, 밤에 고양이 돌아다니고 있어. 고양이, 어구 무서워!”
겁을 주는 미라, 그렇지만 혜진은 만만한 현수를 바라보며 떼를 쓴다.
“으~으~응. 가자.”
혜진의 애교에 녹아나는 현수가 호기롭게 대답한다.
"그래, 가자."
“혜진이 가면 인주도 따라나서려고 할 텐데, 이 밤에 안 돼요.”
미라의 당찬 말에 현수는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당장 입장을 바꾼다.
“혜진아, 엄마가 안 된대, 내일 가자.”
참 애잔한 현수... 그러나 현수 속사정을 모르는 혜진은 고집을 굽힐 리 없다.
“내일? 안돼, 지금 가~.”
미라는 떼를 쓰는 혜진 앞으로 스케치북이 올려진 교자상을 당겨서 놓으며 말한다.
“혜진이 그리던 그림 마저 그리자.”
작은방으로 내뺄 기회를 놓친 현수는 미라의 기분을 맞추듯 맞장구를 치며 말한다.
“혜진이는 공주 그림 잘 그리지~.”
혜진이 스케치북 위에 놓인 크레파스 집어 든다.
TV가 꺼져서 할 짓이 없어진 인주, 대신 혜진의 스케치북이 펼쳐진 교자상 위로 기어오르려 한다.
“야~ 저리 가~.”
소리치며 인주를 밀치는 혜진, 미라가 나선다.
“혜진아, 괜찮아. 엄마가 인주 보고 있을게.”
혜진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드디어 기회를 잡는 미라, 자리를 뜨려는 현수를 붙잡고 따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렇다 치고, 어제는 몇 시에 집에 들어왔어요?”
작은방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꼼짝없이 걸려든 현수, 최대한 경건하게 대답한다.
“12시가 넘어서 들어왔어.”
“혜진이가 잠도 안 자고 얼마나 기다렸는데….”
혜진까지 들먹이며 따지는 미라의 말에 현수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재철이가 딸 낳았다고 한턱내겠다는데 그냥 오기가 좀 그랬어.”
현수 말에 싸늘한 표정이 풀리면서 호기심 찬 눈으로 바뀌는 미라.
“어머, 재철 씨 둘째 낳았어요?”
“보름 전에 낳았대.”
“아기는 엄마가 낳는데 남편들이 뭘 했다고 술을 마시는지….”
풀린 듯한 미라의 표정을 보며 현수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아기 엄마를 위한 순산 축하주.”
“웃겨….”
미라가 눈을 흘기며 말한다.
그 사이에 인주는 교자상 위로 기어올라가 앉아 있고, 혜진은 스케치북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엎드려서 그림을 그린다.
그 모습을 본 미라는 아나운서가 중계방송하듯 말한다.
“예~, 미술 대가의 작품 활동을 인주가 이렇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현수가 미라의 말을 듣고 웃는다.
유아침대에서 한주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혜진이 발딱 일어나 유아침대로 달려간다.
혜진은 한주 머리맡에 있는 젖병을 한주에게 물린 후 돌아와 다시 엎드려 그림 그리기를 계속한다.
미라는 혜진의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예~, 우리 혜진 어린이, 공사가 다망합니다.”
그 말을 들은 현수는 미라에게 아부하듯 장단을 맞춘다.
“예, 혜진이는 훌륭한 어린이입니다.”
“혜진 어린이는 술 먹고 집에 늦게 오는 아빠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미라의 은근한 핀잔에 현수는 웃으면서 일어나 유아침대로 간다.
동그란 머리베개에 걸쳐서 놓인 젖병, 그리고 그것을 빨고 있는 한주.
현수는 분유를 빨기 바쁜 한주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머리 쪽으로 올린다.
정수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주의 팔 길이.
“아유, 요 외계인.”
현수는 웃으며 작은방으로 건너간다.
현수는 작은방으로 들어서서 이부자리를 편다. 그리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고 이부자리에 누워서 베개를 높여 책을 본다.
잠시 후, 형광등이 켜진 방에서 현수는 손에서 책을 떨어뜨린 채 잠들어 있다.
한밤중의 안방, 어둠 속에서 한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또깍’하는 스위치 누르는 소리와 함께 베란다에 있는 전등이 켜지고, 그 전등 불빛이 창문을 통해 안방을 어스름하게 비친다.
서 있는 미라와 잠자고 있는 혜진과 인주의 모습이 약한 불빛에 드러난다.
미라는 유아침대로 가서 한주를 들어서 안고는 미리 준비해 둔 젖병을 든다. 그러고 앉아서 한주에게 젖병을 물린다.
한주의 젖병 빠는 소리가 들리며 시간이 흐른다.
미라는 졸면서 경쾌한 새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름다운 새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조용한 호숫가 풍경.
화사한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미라가 호숫가 벤치에 편안하게 앉아 있다.
호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미라, 부드러운 바람결에 머리가 흩날린다.
미라의 감미로운 꿈결에 느닷없이 한주의 울음소리가 끼어든다.
“으으으 응애~”
꾸벅꾸벅 졸던 미라가 한주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든다.
한주의 입에서 젖병이 빠져있다.
미라는 한주의 입에 젖병을 다시 물린다.
한주가 울어도 세상모르고 자는 혜진과 인주.
미라는 젖병을 빠는 한주의 배를 조용히 두드리며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무심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