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네 이야기 제4화
어느새 인주의 아이스크림까지 가로챈 혜진, 양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번갈아가며 먹고 있다. 현수는 앙큼한 혜진에게 웃으며 묻는다.
“하얀 아이스크림이 맛있어? 빨간 아이스크림이 맛있어?”
혜진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두 손 모두 번쩍 들며 말한다.
“두 개 모두.”
“하나는 인주 줘.”
현수의 말을 무시하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혜진, 어차피 혜진 혼자 다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현수는 피식 웃는다.
혜진보다 두어 살 많아 보이는 듯한 여자 아이들 둘이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흙장난하며 놀고 있다. 혜진이 그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아빠, 저기 어린이 있어.”
“어린이가 아니고 언니라고 해야 하는 거야.”
“아빠, 나 저기 가서 놀래.”
혜진은 양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들을 현수에게 떠맡기고는 여자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쫓아간다.
현수는 혜진으로부터 받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인주에게 쥐여준다.
“인주야, 우리 아이스크림 먹자.”
벤치에 나란히 앉아 느긋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인주와 현수, 그러면서 공원 한쪽 구석에서 아이들과 쪼그려 앉아 흙장난하며 노는 혜진을 지켜본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인주는 비치볼을 가지고 놀고 있고, 현수는 뒷짐을 진 채 그런 인주를 따라다닌다. 인주의 서툰 발길질에 데구루루 구르는 비치볼, 현수는 그 비치볼을 발로 잡아 인주 앞으로 다시 굴려준다.
그렇게 놀고 있던 인주가 지쳤는지 현수에게 안아달라며 팔을 벌린다.
“인주, 이제 집에 갈까?”
“응.”
현수는 인주를 유모차에 태우고 혜진이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여전히 흙장난에 몰두하고 있는 혜진을 보며 현수가 말한다.
“혜진아, 이제 집에 가자.”
“싫어! 더 놀다 갈 거야.”
현수는 야무지게 대답하는 혜진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인주가 집에 가고 싶어 하는데...”
“싫어!”
그때 혜진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둘이 소곤거린다.
“우리도 갈까?”
“그래, 가자.”
아이들이 일어나 자리를 뜨자, 혜진도 할 수 없다는 듯 손을 털며 일어난다.
“아빠, 우리도 가자.”
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수가 미는 유모차의 한쪽 손잡이를 잡고 걷는다.
“혜진이, 노래 불러줘.”
현수의 부탁에 혜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네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탔다네♪ 너무너무 재미가 좋아 좋아 랄랄라♬ 다른 친구 코끼리를 불렀네♪.”
노래 부르는 혜진과 인주의 유모차를 미는 현수는 그렇게 '평화롭게' 집으로 간다.
집에 돌아온 현수는 작은방에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딸칵 딸칵...”
잠긴 방문을 열려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혜진이 문밖에서 소리를 지른다.
“아빠~.”
공원에서 실컿 놀아줬는데도 또 놀아 달라는 혜진. 그래서 현수는 혜진이 불러도 묵묵히 책을 본다.
“아빠, 아빠 방에 들어갈래~.”
현수는 책에 눈을 꽂은 채 야멸차게 말한다.
“안돼, 아빠 공부해야 해.”
“아빠~.”
혜진의 애절한 요구에 현수는 책에서 눈을 떼고 웃는다. 그러고는 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일부터 백까지 세어봐.”
“알았어. 일, 이, 삼, 사, 오...”
문밖의 혜진은 방문에 걸려있는 그림 숫자판을 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숫자를 센다.
혜진의 숫자 세는 소리가 들리자 현수는 다시 책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 구십일곱, 구십여덟, 구십아홉, 백! 아빠, 백까지 다 세었어.”
혜진이 숫자 세는 것을 들었을 리 없는 현수가 책에 눈을 꽂고 말한다.
“78이 빠졌어, 다시 세어.”
방에 들어가고 싶은 혜진, 어떤 이의도 달지 않고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알았어. 일, 이, 삼, 사, 오...”
책을 보던 현수는 고개를 들어 혜진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웃는다.
“... 구십여덟, 구십아홉, 백! 아빠, 백 다 세었어.”
현수가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말한다.
“이번에는 17이 빠졌어.”
현수의 장난질에 아무런 불평 없이 천진난만하게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혜진.
“일, 이, 삼, 사, 오….”
현수는 숫자를 세는 소리를 들으며 웃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방문을 열어준다.
혜진이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현수의 무르팍 위에 올라앉는다.
“어휴, 요것, 요것, 요 여우!”
현수는 혜진 뒤에서 혜진의 볼을 양손으로 잡고 흔든다.
“혜진이 너, 세수했어?”
“안 했어.”
“날라리가 아직도 세수를 안 했어?”
“조금 있다가 할 거야.”
세수를 하지 않고서도 당당한 혜진은 현수 책상 위의 물건을 만지며 말한다.
인주도 방 안으로 들어와 현수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서서 현수를 올려다본다.
“오, 우리 똥강아지도 왔어요.”
현수는 혜진을 오른쪽 무릎으로 옮겨 앉히고 인주를 들어 왼쪽 무릎에 앉힌다. 그리고 인주의 볼을 한웅큼 잡고 흔든다.
“어구, 이쁜 거...”
"아, 아~."
볼을 잡힌 인주가 소리를 지르고... 인주 이쁘다는 현수 말에 자칭 백설공주 혜진이 끼어든다.
'아빠, 나는?"
혜진의 말에 심술굳게 웃으며 혜진의 볼을 잡으려는 현수, 마침 거실에서 미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 아기 목욕 시킬 건데 물 좀 받아줘요.”
“어, 아기 목욕한다.”
현수는 혜진과 인주를 무릎에서 내려놓고 작은방에서 나간다. 혜진과 인주도 현수 뒤를 따른다.
거실 한가운데 아기가 목욕할 큰 대야가 놓여있다.
현수는 화장실에서 찬물을 가져와 대야에 부은 후 주방으로 간다.
“뜨거운 물 위험하니까 아이들 좀 잡고 있어.”
미라는 혜진과 인주를 못 움직이게 감싸 안는다.
현수가 큰 냄비에 담긴 뜨거운 물을 가져와 대야에 조심스럽게 붙는다.
미라는 물 온도를 재어본 후 유아침대에 누워있는 한주를 안고 나온다.
배냇저고리 입은 한주를 천천히 물에 담근 후 배냇저고리 위로 물을 끼얹는 미라.
옆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혜진이 거들기 시작한다.
“엄마, 나도 해볼래.”
혜진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주의 배냇저고리 위로 물을 끼얹는다.
그것을 본 현수도 손을 물에 담그려 하자 미라는 현수의 손을 탁 친다.
민망하게 웃는 현수, 대신 한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요놈 코 벌름벌름 거르는 것 좀 봐, 하하하, 한주, 이 갓난쟁이, 기분 좋아요?”
“예, 기분 좋아요.”
미라가 한주를 대신하여 현수의 말에 대답하자 혜진도 한주에게 묻는다.
“한주야 따뜻해?”
“예, 따뜻해요.”
이번에도 미라가 한주를 대신하여 혜진에게 대답해 준다.
미라는 조심스럽게 한주의 배냇저고리를 벗긴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한주의 몸에 비누칠한다.
목욕하는 한주를 보고 있던 현수가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든다.
“어?”
현수는 주위를 휘둘러보자 미라가 현수를 보며 묻는다.
“왜요?”
“인주?!”
현수는 일어서서 안방을 들여다본 후 다시 작은방 방문을 열어서 본다.
“인주가 안 보이는데.”
“설마요, 베란다를 한번 보세요.”
현수는 안방으로 들어와 무릎 높이 창틀로 이어진 베란다를 내다본다.
“여기도 없어.”
미라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현수를 다그친다.
“설마요. 잘 찾아보세요.”
현수가 안방을 나서려다가 혹시나 싶어 유아침대 쪽을 본다.
한주가 누워있던 유아침대에 인주가 떡하니 누워있다. 염치없이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는 것이 민망한지 현수를 바라보며 웃는 인주.
“인주, 언제 여기 들어왔어?”
현수가 인주에게 하는 말을 듣고서야 미라가 당황한 표정을 풀며 말한다.
“아유, 깜짝 놀랐네.”
“인주, 아기 침대가 탐났었나 봐.”
예상치 못했던 인주의 행동에 대해 현수가 그 이유를 짐작해서 말하자, 그 말을 들은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아기 침대에 매일 매달려서 탐을 내더니 오늘 드디어 소원 풀었네.”
혜진도 현수가 서 있는 유아침대 옆으로 와서 누워있는 인주를 쳐다본다.
“여보, 한주 닦이게 저기 있는 수건을 바닥에 좀 깔아줘요.”
현수는 한주가 닦을 큰 수건을 안방 한 중앙에 펼쳐놓는다.
한주를 조심스럽게 안고 방으로 들어오는 미라, 한주를 수건 위에 눕힌 후 수건을 덮어 한주 몸의 물기를 닦아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수가 한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한주, 기분 좋아요?”
팔과 발을 바둥당거리는 갓난쟁이 한주.
“혜진 아빠, 저기 배냇저고리 좀 주세요.”
현수가 방 한쪽에 있는 배냇저고리를 미라에게 건네며 유아침대 쪽을 본다.
“어쭈, 혜진이까지 저기 들어가 있네.”
현수는 일어나서 유아침대 안쪽을 바라본다.
좁은 유아침대 안에 혜진과 인주가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현수가 말한다.
“녀석들이 여기 들어가 있으니, 세상이 다 조용하네.”
“하하하, 왜 아니겠어요.”
미라의 대답에 현수는 한 수 더 떠서 말한다.
“이 침대를 이놈들에게 그냥 넘겨주는 것이 어떨까?”
미라가 한주에게 배냇저고리를 입히며 말한다.
“한주 대감, 저 침대를 형아에게 줄까요?”
현수는 미라에게 작은방으로 건너가겠다는 눈짓을 하고는 아이들 몰래 작은방으로 건너간다.
현수가 작은방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책 페이지 한쪽 한쪽 넘어가며 시간이 흘러간다.
현수는 지친 듯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켠다.
안방에서 미라의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리자 현수는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간다.
안방으로 들어서는 현수에게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혜진이가 동생들 이마에 저렇게 스티커를 붙여났어요. 자기도 붙였고. 하하하.”
미라의 말을 들은 현수는 아이들 이마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살펴본다.
인형을 가지고 인형극을 하고 있는 혜진 이마에 손톱 크기의 노랗고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있다.
TV에서 나오는 동요 율동 화면을 보며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인주 이마에도 역시 같은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고, 유아침대에 누워 있는 한주도 똑같이 붙어있다,
현수는 아이들 이마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살펴보며 웃는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모두 한 형제라는 사실에 현수는 왠지 가슴이 벅차오른다.
미라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어린이들, 오늘 놀이는 여기서 끝~. 자 이제 잡시다. 엄마는 잠이 와요.”
미라가 이부자리 위에 눕는다.
혜진도 이부자리로 똑순이 인형을 가지고 와 눕히며 말한다.
“우리 인형도 잘 자요,”
“아유 혜진이는 착하기도 하지.”
미라의 칭찬 한마디에 혜진은 이때다 싶어 다시 조르기 시작한다.
“엄마, 백설공주 인형.”
미라는 혜진의 말을 못 들은 척 돌아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