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네 이야기 제5화
가족이 아직 잠들어 있는 일요일 이른 아침.
가방을 든 현수는 도서관에 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연다.
안방에서 들리는 한주의 울음소리, 현수는 안방 방문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집을 나선다.
일요일 아침.
TV에서 아동 프로그램 진행자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에 일제히 대답하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
TV가 그렇게 혼자 떠들고 있는 가운데 미라는 한주를 안고 분유를 먹이고 있다. 인주도 미라의 다리를 베개삼아 베고 한가롭게 우유를 빨고 있다.
현수와 놀려고 작은방에 갔다가 그냥 돌아온 혜진이 안방에 발랑 눕는다. 그리고 양발을 감싸고 뒹굴거리며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는?”
“아빠는 도서관에 갔어요.”
“아빠 언제 와?”
“점심 먹을 때 올 거야.”
“엄마, 우리 점심 먹자.”
그 말에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아침을 먹은 다음에 점심 먹는 거야.”
혜진은 미라에게서 들은 말을 인형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아침을 먹지요, 그러면 점심이 와요.”
미라는 혜진이 인형에게 하는 말을 들으며 웃는다.
아침이 지나자 혜진이 말한 대로 점심때가 다가온다. 그러나 안방에 누워 칭얼대며 투정을 부리는 혜진.
“엄마, 공주인형.”
“안 돼”
“엄마, 우리 공주인형 사러 마트 가자~.”
“아빠가 혜진이 생일 때 공주인형 사주기로 했잖아?”
“내 생일 때 다른 거 사주면 되잖아.”
미라는 혜진의 당돌한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까 생각하던 그때 초인종이 울린다.
누워서 투정을 부리던 혜진이 발딱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가고, 인주도 뒤뚱거리며 그 뒤를 따른다.
혜진이 현관문을 향해 소리친다.
“아빠?”
문밖에서 영숙의 목소리가 들린다.
“할머니다.”
혜진은 따라 나오는 미라를 보며 말한다.
“엄마, 할머니래!”
미라가 현관문을 열자, 영숙이 보자기에 싼 물건을 들고 들어온다.
혜진은 영숙을 보자 폴짝폴짝 뛰면서 반긴다.
“할머니! 할머니!”
“아이고, 요 여우딱지, 잘 놀았니?”
미라는 영숙이 들고 있는 물건을 건네받으며 인사한다.
“오셨어요. 이것은 뭐예요?”
“소고기 장조림 좀 해왔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어머나, 이 귀한 것을… 혜진이는 좋겠네.”
영숙은 미라가 안고 있는 한주를 조심스럽게 건네받아서 안는다.
“아유, 우리 대감, 얼굴이 뽀야뽀야 하네.”
옆에 있던 미라가 영숙을 보며 말한다.
“많이 컸죠? 어머니.”
“어휴, 말하면 뭐 하니.”
“식사 준비할까요?”
영주는 여전히 한주에게 눈을 꽂은 채 말한다.
“내 신경 쓰지 마라.”
“조금 있다가 혜진 아빠 오면 같이 드시죠.”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미라가 혜진을 보면서 말한다.
“혜진아, 아빠 왔나 보네.”
“아빠, 아빠!”
혜진이 거실로 나가려다가 안방을 들어서는 현수와 마주친다.
현수가 혜진을 끌어안으며 영숙에게 인사한다.
“어, 오셨어요?”
“어디 갔다 오니?”
“요 앞 도서관에요.”
“도서관은 왜?”
“전산 쪽 자격증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많이 바쁘구나.”
미라가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안방에서 나가며 말한다.
“식사 차릴게요.”
혜진이 입을 빼쪽거리며 영숙에게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할머니, 인주가 나를 때렸어요.”
영숙이 놀라는 척하며 혜진과 인주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래? 인주가?”
혜진은 무슨 큰 일이나 났었던 것처럼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한다.
“그래서 코피가 났어요.”
영숙은 과장된 표정으로 말하는 혜진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한다.
“어이구, 요 야물딱진 여우 딱지.”
영숙은 한주를 유아침대에 누이고 인주를 끌어안는다.
가족과 함께 점심을 마친 영숙은 인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앉아 있다.
혜진은 과자를 먹고 있고, 인주는 혜진이 들고 있는 과자 봉지를 쳐다본다.
그 모습을 본 영숙이 혜진에게 말한다.
“혜진아, 인주에게 과자 좀 줘야지.”
인주에게 과자를 주지 않는 핑계를 대는 혜진.
“인주가 나를 때렸어요.”
“동생에게 과자를 줘야지 착한 어린이지.”
영숙이 혜진에게 간청하듯 말한다. 영숙의 말이 먹혀들지 않자 옆에 있는 현수가 나선다.
“혜진아, 그 과자 인주에게 안 주면 다음부터 과자 안 사줄 거야.”
‘안 사준다’라는 현수의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혜진.
“싫어, 아빠는 백설공주도 안 사주잖아!”
혜진의 불만을 들은 영숙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백설공주? 인주에게 과자를 주면 할머니가 공주인형 사주지.”
영숙의 말에 혜진은 들고 있는 과자 봉지를 인주에게 건넨다.
“아이구, 요 여우딱지.”
혜진을 바라보며 웃는 영숙.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이제 가 봐야겠다.”
인주를 안고 있던 영숙이 가겠다고 말하자 현수가 말린다.
“조금 더 있다가 가세요.”
“안 그래도 어미가 얘들 때문에 정신없는데 나까지 부대끼면 더 힘들다.”
미라가 영숙에게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어머니, 과일 깎을 건데 과일 드시고 가세요.”
“점심 많이 먹었다. 과일은 다음에 와서 먹자.”
영숙은 무릎에 앉힌 인주를 내려놓고 일어서자 혜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할머니, 공주인형.”
“하이고, 요 깍쟁이, 그래 사러 가자.”
현수가 제지하고 나선다.
“그러지 마세요, 얘 버릇 나빠져요.”
“할미 체면이 있지, 하나 사줘야지.”
인형을 사준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혜진을 보며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혜진이 기어코 한 건 하고야 마는군. 아유, 저 여우.”
“얘들 고집을 어떻게 당해? 인형 어디로 가면 살 수 있니?”
영숙의 말에 신이 나서 얼른 대답하는 혜진.
“마트에서 팔아요 할머니!”
영숙에게 부담 지우는 것이 미안한 현수가 말한다.
“마트에서 파는데 차 타고 가야 해요.”
“집 가는 길에 마트를 들리면 되겠네.”
잽싸게 외출복을 들고 오는 혜진, 영숙은 그 옷을 혜진에게 입힌다. 그리고 옷 입히는 영숙의 어깨를 잡고 영숙을 쳐다보는 인주, 영숙은 인주의 뜻을 알아차린다.
“어유, 우리 대감, 대감도 같이 나서려고? 그래 대감도 같이 갑시다.”
미라가 우려하듯 말한다.
“인주도 갈려고? 인주가 차에 타려면 엄마도 따라가야 되는데...”
미라의 말에 현수도 웃으며 말한다.
“인형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다 나서네.”
미라는 영숙의 도움을 받으며 한주를 업는다.
인주를 안은 현수, 한주를 업은 미라, 혜진을 안은 영숙이 아파트 현관에서 차례로 나와 자동차 쪽으로 향한다.
그때 고등학생 또래의 소년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그들 앞을 지나간다.
영숙의 눈에 불량스러워 보이는 소년들을 가리키며 혜진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혜진아, 저 오빠들이 같이 가자고 하더라도 따라가면 안 돼.”
영숙의 속삭이는 어투와는 달리 혜진은 자기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 또렷하게 말한다.
“할머니, 왜 그런지 나 알아요.”
영숙은 어린 혜진이 이런 험한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 듯 혜진을 쳐다본다.
혜진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영숙에게 앙증맞게 설명한다.
“모르는 사람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하지요오~.”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줄 몰라 당황하는 영숙은 혜진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도 따라가면 안 돼!”
그러나 혜진은 영숙에게 그 이유를 아주 쉽게 설명해 준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진~짜로 맛없는 거 사다 주지요오~.”
영숙은 혜진의 말에 크게 웃으며 묻는다.
“그것 누가 가르쳐 줬니?”
“미술학원 선생님이 말해줬어요.”
영숙은 안고 있는 혜진의 볼을 꼬집으며 말한다.
“하이고, 뭐 요런 게 다 있나, 요 여우딱지!”
현수와 미라도 혜진의 말에 웃으며 자동차로 다가간다.
현수가 운전하는 승용차 조수석에 영숙이 앉아 있다. 한주를 안고 있는 뒷좌석의 미라가 바로 앞의 영숙에게 말을 건넨다.
“아이들이 기어 다니기 시작하니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몰라요, 어머니.”
“아이들이 걷기 시작하면 더 하지.”
“아이들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일이에요.”
듣는 영숙도 미라의 말에 적극 동조한다.
“말도 마라, 얘들은 눈만 떼면 번개처럼 히딱하고 사라진다.”
“그래도 혜진이는 말이 통하니 편해요.”
“요 때가 재미있을 때지.”
“맞아요, 어머니. 혜진이 놀고 있다가도 한주가 울면 쫓아가서 한주 입에 젖병을 ‘턱’하고 물리는 것을 보면 얼마나 신기하고 웃기는지. 하하.”
영숙은 뒷자리에 있는 혜진을 돌아다보며 말한다.
“그랬나? 요 여우딱지.”
“그런데 말이 통하니 뭘 그리 사달라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나는 아들만 셋 키워서 그런지 딸 있는 집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영숙이 현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간다.
“나도 첫째가 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운전하는 현수가 영숙의 말을 듣고 미안한 듯 웃는다.
이윽고 자동차가 마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자동차가 지하차도에 설치된 미끄럼 방지 요철 때문에 '두두두두' 하면서 진동한다.
혜진은 이때다 싶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아~아~”
옆에 앉은 인주도 덩달아 소리를 지른다.
“아~ 아~”
화들짝 놀라는 영숙, 소리 지르는 혜진을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혜진아, 왜?”
혜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아~’하고 외쳐댄다. 인주도 지지 않고 외쳐댄다.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에 갓난쟁이 한주가 놀라서 울음을 터트린다.
어리둥절해하는 영숙과 달리 미라는 이 상황을 중계방송하듯 말한다.
“예, 난리가 또 시작되었습니다.”
이 상황이 의아한 영숙이 현수에게 묻는다.
“아이들 왜 이러니?”
“자동차가 ‘두두두두’하고 진동할 때 목소리를 내면 목소리가 떨리잖아요. 그게 신기해서 여기 지날 때마다 저렇게 소리를 질려요.”
“얘들 없으면 웃을 일도 없다더니… 하여튼, 요 이쁜 것들.”
영숙은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천진난만하게 소리 지르는 혜진과 인주의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