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외침

다둥이네 이야기 제6화

by 여름

혜진은 붐비는 마트에서 영숙의 손을 잡아끌며 앞장서서 걷기 바쁘다. 인주를 안은 현수와 한주를 업은 미라가 그 뒤를 따른다. 미라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현수.

“어제 여기 왔을 때 인형 사줄 것을 그랬어.”

“그러게 말에요.”

“하여튼 아이들 고집은 못 당해.”

그렇게 가족은 혜진에게 이끌려 마트 매장을 일렬로 늘어서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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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을 인형이 놓인 진열대에 끌고 간 혜진.

“할머니, 저것.”

“저 인형 말이니?”

영숙은 혜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인형상자를 집어서 건넨다. 자신의 뜻을 이룬 혜진은 미라와 현수를 쳐다보며 웃는다. 그러나 현수와 미라는 민망스럽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혜진은 상자 속의 인형을 투명창을 통해 요리조리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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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는 오늘따라 얄미운 혜진을 보며 앞 좌석에 앉은 영숙에게 말한다.

“결국 이렇게 사게 될 줄 알았으면 어제 사줄 걸 그랬어요. 어머니까지 이렇게 수고스럽게 할 줄은 몰랐어요.”

“그런 말 하지 마라. 손녀에게 이렇게 사주니, 내야 기분 좋다.”

“인형이 싼 것이 아니라서….”


인주가 혜진의 인형 상자를 만지려 하자 혜진이 인주를 밀치며 소리친다.

“안 돼! 만지지 마!”

인주에게도 장난감을 안겨주지 못한 영숙이 다정하게 말한다.

“인주야, 할머니가 다음에는 인주 장난감 사줄게. 누나 코피 터뜨리지 말고 누나랑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인주를 사고뭉치처럼 말하는 영숙의 말에 현수와 미라가 웃는다.


지하철 입구가 보이자 영숙이 현수에게 말한다.

“나는 저기 지하철역 앞에 세워다오.”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뭐 하러…. 여기서 지하철 타면 편하게 간다.”

혜진에게 인사를 시키는 미라.

“혜진아, '할머니 고마워요' 하고 인사해야지.”

여전히 인형에 정신이 팔려있는 혜진에게 미라는 다시 재촉한다.

“혜진아! 할머니께 인사해야지.”

차에서 내려야 하는 영숙이 혜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혜진아, 할머니 갈게, 잘 있어.”

그제서야 고개를 들며 미라를 바라보는 혜진.

“할머니….”

영숙이 차에서 내리려 하자 마음 바쁜 미라가 혜진을 다시 다그친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하하, 요런 깍쟁이. 인형이 그렇게 좋니?”

“예, 좋아요.”


영숙이 웃으며 차에서 내려서 자동차 차창을 향해 손을 흔든다.

미라는 한주를 안은 채 차창을 내려 인사한다.

“어머니, 조만간 한번 찾아뵐게요.”

“아직 한주가 어려서 데리고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나중에 편할 때 오너라.”

“그럼, 어머니 살펴 가세요.”

영숙은 지하철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아파트에 도착하여 주차한 자동차에서 일가족이 내린다.

석현 엄마가 지나가다가 인형상자를 품에 안은 혜진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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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식구가 또 늘었네.”

“우리 할머니가 사줬어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혜진.

혜진 뒤에 있는 미라가 석현 엄마에게 인사한다.

“석현 엄마, 안녕하세요.”

석현 엄마는 혜진이가 안고 있는 인형 상자를 보며 말한다.

“아이가 넷이네요. 넷.”

“하하하, 아유, 정신없어요.”

“얼마나 재미있을까?”

한주를 안은 미라는 석현 엄마의 말에 웃으며 아파트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인주를 안은 현수와 인형 상자를 품에 안은 혜진이 그 뒤를 따른다.


유아침대에 깔렸던 매트리스가 방바닥에 모로 세워져 인형극 무대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혜진이 양손에 인형을 번갈아 들어가며 인형극을 하고 있고, 미라는 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혜진의 인형극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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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순이 인형을 들며) 사과 사세요.

(백설공주 인형을 들며) 돈 없어요.

(똑순이 인형을 들며) 그럼. 사과 먹으세요.

(백설공주 인형을 들며) 사과 먹기 싫어요.

(똑순이 인형을 들며) 사과 먹어야 해요!


현수가 방으로 들어오자 혜진은 인형극을 멈춘다.

현수는 방안에 모로 세워진 매트리스를 보며 묻는다.

“이 매트리스는 어디서 났어?”

“유아침대에 깔린 건데, 햇볕에 말리려고 베란다에 내놨더니 혜진이 이것을 가지고 인형극을 하네요.”

“인형극?”

그 말을 들은 현수는 책장 위에 올려놓은 캠코더를 집어 들며 혜진에게 말한다.

“자, 혜진이 인형극을 찍읍시다.”

그러자 미라도 혜진을 부추긴다.

“인형극이 나와라. 하나, 둘, 뚝딱!”

현수도 감독처럼 혜진에게 큐 사인을 보낸다.

“인형극이 나와라, 레디 큐~!”

캠코더 앞이라 잠시 주저하는 혜진에게 미라가 다시 소리친다.

“인형극이 나와라. 뚝딱!”


혜진이 인형극을 다시 이어지기 시작하고, 현수는 캠코더로 그 모습을 찍는다.


(똑순이 인형을 들며) “자, 사과 먹으세요.”

(백설공주 인형을 들며) “‘예’하면서 백설공주는 사과를 먹었어요.”

(백설공주 인형을 매트리스 위쪽 모서리에 누이며 독백한다) “백설공주는 잠이 들었어요. 계속 잠을 잤어요. 그런데 용감한 왕자가 나타났어요.”

인형극보다 백설공주에 관심이 더 많은 인주, 인형극 무대에 누워있는 백설공주에게 다가가서 만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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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은 매트리스 앞으로 손을 뻗쳐 인주를 밀친다.

그 모습을 본 미라가 혜진에게 말한다.

“혜진아, 그러면 안 돼.”

“인주가 내 백설공주 만지려고 했어.”

“인주 왕자님이 도와주려고 그러는 것이잖아.”

혜진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한다.

“인주, 왕자님 아니야!”

현수는 인형극이 다시 시작되도록 혜진을 보챈다.

“혜진아, 빨리해. 빨리 찍어서 TV로 보자.”

현수가 캠코더를 혜진을 향해 들며 버튼을 누른다.

인형극을 다시 시작하려는 혜진이 미라에게 말한다.

“엄마, 인주 좀 잡아줘.”

미라는 앞에 있는 인주를 뒤로 끌어당긴다.

혜진의 인형극이 다시 시작되고... 인형극 무대(?)에서 쫓겨난 인주가 이번에는 캠코더를 들고 있는 현수에게 다가간다.


캠코더와 케이블로 연결된 TV 화면으로 혜진의 인형극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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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화면에 나타난 혜진이 미라에게 ‘엄마, 인주 좀 잡아줘.’라고 말한다.

이어서 인주가 미라의 손에 의해 뒤로 끌려가는 모습이 TV 화면에 보인다.

혜진과 인형극 무대를 비추는 TV 화면에서 나오는 미라 목소리,

“그래, 왕자가 나타났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그래서... 이히히... 왕자님이 히히히 백설 공주에게…. 뽀뽀했데요. 히히히….”

‘뽀뽀라는 말을 쑥스럽게 말하는 혜진과 또 그것을 받아주는 미라. 모녀간에 죽이 착착 맞다.

“얼레리꼴레리. 하하하. 그래서?”

인형극의 결말을 말하는 혜진.

“그래서 백설공주 하고 왕자님 하고 결혼해서 아이들을 ‘너무’ 많이 키웠어요.”

그때 인형극이 펼쳐지는 TV 화면 아래쪽에서 인주 얼굴이 쑥 올라온다. 그리고 콧물과 코딱지가 묻은 인주 얼굴이 TV 화면을 가득 채운다.

미라는 불쑥 나타난 그 장면을 보고 상체를 앞으로 숙여가며 웃는다.


현수도 웃으며 혜진에게 말한다.

“혜진아, 이때는 ‘너무 많이 키웠어요’ 아니라 ‘아주 많이 키웠어요.’라고 말하는 거야.”

혜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현수의 말을 되뇐다.

“‘아주’ 많이 키웠어요?”

현수의 말을 들은 미라가 다시 웃음 이어가며 말한다.

“그래, 맞아, 말이 뭔가 이상하더라니 그거였네. 하하하.”

“‘너무’라는 말은 부정의 의미를 강조할 때 쓰는 말이야.”

현수의 말에 혜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출근하는 현수 혼자서 밥상 앞에 앉아 식사하고 있다.

잠에서 방금 깬듯한 혜진이 과자봉지를 들고 안방에서 나온다.

그 모습을 본 현수가 혜진에게 잔소리한다.

“혜진이, 아침에 과자 먹으면 안 돼, 아침 못 먹어.”

현수의 말에 혜진이 응석을 부리며 말한다.

“으~으~응. 과자 먹을래.”

“안 되는데… 아침에 과자 먹으면 돼지 돼. 돼지 공주!”

“아냐, 백.설.공.주!”

현수가 그런 혜진에게 뿌리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다.

“과자 안 먹고 밥 먹으면 아빠가 오늘 동네 한 바퀴 돌아줄게.”

그 말을 들은 혜진은 주방에서 분유를 타고 있는 미라를 보며 말한다.

“엄마, 밥!”

“어머나, 혜진이 밥을 다 먹자고 하네, 아빠 가고 나면 밥 맛있게 먹자~.”


식사를 마친 현수,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출근 복장을 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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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서 구두를 신는 현수에게 혜진이 손을 흔든다.

“아빠, 빠이빠이.”

“응, 빠이빠이.”

“잘 다녀오세요. 술 드시지 말고.”

현수는 미라의 경고 같은 충고에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며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출근하는 현수가 아파트 현관을 나와 화창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걷는다.

“아빠~.”

낭랑한 혜진의 목소리, 현수는 소리가 나는 뒤쪽을 돌아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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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이 아파트 3층 베란다에 장난감 상자를 밟고 올라서서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출근하는 현수를 향해 외친다.

“아빠~.”

“응~?”

“오늘 일찍 와야 해~.”

웃음 가득한 얼굴로 혜진을 향해 다정하게 대답하는 현수.

“알았어~.”

“오늘 ‘너무너무’ 일찍 와야 해~.”

현수가 웃으며 혜진의 말을 고쳐 다시 외친다.

“응~ ‘아주 아주’ 일찍 올게.”


혜진이 소리칠 때마다 현수는 혜진이 있는 3층 베란다를 뒤돌아보며 대답한다.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 혜진과 현수가 외치는 대화가 울려 퍼진다.

“아빠~.”

“응~?”

“오늘 ‘너무너무’ 일찍 와서 동네 한 바퀴 돌자~.”

“그래~ 알았어~.”


혜진은 현수가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수에게 크게 외쳐대고,

현수는 그때마다 연신 뒤돌아보며 혜진에게 큰 소리로 대답한다.

나지막한 아파트 단지의 조용한 아침이 다정하게 외치는 딸과 아빠의 목소리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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