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27화 - 전산쟁이 기질
민수는 자리에 앉아 마감 작업 결과를 일지에 적다가 출근하는 중만을 본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기분 좋아 보이네? 에러 찾았어?”
“예, 어젯밤에 우연히 찾았어요.”
“무슨 에러였어.”
민수는 자랑하듯 발견한 에러에 대해 말한다.
“조건문 IF 문장이 반복되는 부분에 점이 하나 들어가 있었어요.”
“아, 그래” 나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는데 찾기가 어려웠어, 잘됐네.”
“오늘 기계실에 작업 의뢰를 하려고요.”
“벌써 프로그램을 다 짠 거야? 작업 의뢰서 작성했어?”
“조회 마치면 작성하려고 합니다.”
조회방송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나오자 중만과 민수는 TV를 향해 앉는다.
민수는 작성한 작업의뢰서를 살펴본 후 결재판에 끼운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일섭의 자리로 다가가 결재판을 내민다.
“벌써 다 한 거야?”
일섭이 결재판을 펼치며 묻는다.
“예. 테스트까지 마쳤습니다.”
“그래? 테스트 결과는 어때?”
“테스트 데이터로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일섭은 팀장 서명을 하고 과장 서명란에 전결을 적어 넣는다.
“작업 결과 나오면 알려줘, 민감한 리포팅 작업인 만큼 정확한지 확인해 봐야 하니까.”
일섭은 민수에게 결재판을 돌려주며 말한다.
“예, 알겠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신계약팀 일행이 구내식당에서 나와 구내매점을 지나간다.
민수는 구내매점 유리창에 걸린 연극 포스터를 바라보며 일행들에게 말한다.
“여기 잠시 들렀다가 갈게요.”
일행들은 알았다는 듯 손을 들고 보이며 걸어가고 민수는 구내매점으로 들어간다.
“연극 티켓 있어요?”
민수가 구내매점 직원에게 묻는다.
“언제 것으로 드릴까요, 내일이 마감 공연인데.”
민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한다.
“내일 것으로 주세요.”
“무슨 자리로 드릴까요, R석하고 S석이 그리고 A, B, C석이 있는데?”
“S석으로 두 장 주세요.”
“사원 우대 50% 할인해서 두 장에 7만 원입니다.”
민수는 신용카드를 내민다.
“혹시 연극 티켓 환불하신다면 내일 공연장 매표소에서 하세요, 여기서는 이제 판매 종료하거든요.”
매장직원이 카드 결제 후 연극 티켓이 들은 봉투를 건넨다.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온 민수는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리고 오전에 전산 기계실에 의뢰한 작업이 시작되었는지 살핀다. 첫 번째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본 민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모니터를 통해 의뢰한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민수는 내일 재희와의 일정을 상상한다. 재희와 함께 앉아 연극 보는 모습, 연극 관람 후 재희와 생맥주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 그리고 재희를 택시로 바래다주는 모습이 현수의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민수는 혼자서 실실 웃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뢰한 작업이 단계별로 이어지고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의뢰한 작업이 모두 완료된다. 민수는 떨리는 마음으로 최종 작업 결과를 살펴본다.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 민수가 중만에게 말한다.
“선배님, 작업이 끝났어요.”
중만이 몸을 기울여 민수가 보는 화면을 본다.
“그래? 이것이 그 작업 결과야?”
“예.”
중만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오, 그렇네…, 이것이 이번에 그 허위 계약 설계사지?”
“예, 그 설계사의 주소와 관련된 계약이 42건입니다.”
중만은 민수와 함께 모니터에 뜬 화면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살펴본다.
“이것 프린터로 찍어서 대리님께 보고해.”
“예, 알겠습니다.”
민수는 키보드를 두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찍찍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도트 프린터로 다가간다.
잠시 후 민수는 인쇄된 작업 결과를 가지고 일섭에게 다가가 자료를 건넨다.
“작업 결과 나왔습니다.”
“오, 그래?”
일섭은 민수가 내민 리스트를 찬찬히 살펴보고 난 후 서과장 자리를 힐끗 본다. “잠시만 기다려봐.”
일섭은 리스트를 들고 서과장 자리로 가서 리스트를 내민다.
일섭은 리스트를 바라보는 서과장과 뭔가를 이야기한 후 일섭 자리로 돌아온다.
“이 자료, 시스템 프린터로 찍어서 계약부로 넘기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민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은 후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러고 나서 전화 수화기를 든다.
“안녕하세요, 정보시스템실 이민수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상조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업이 끝났나요?”
“예. 데이터 리포트 나왔습니다.”
길고 고단한 작업을 마친 민수, 상조에게 간단히 말한 후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퇴근하는 중만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민수에게 말한다.
“오늘 수고했어, 빨리 퇴근해.”
“예, 내일 뵙겠습니다.”
민수는 퇴근하는 중만을 바라본 후 전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재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민수가 웃으며 말한다.
“나 민수야. 뭐 해?”
“이제 막 저녁 먹으려고 하고 있어. 혹시 저녁 먹자고 전화했니?”
“아니야. 내일 저녁 시간 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내일 저녁?”
민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한다.
“응, 내일 저녁 연극 공연.”
“어디서?”
“세종문화회관. '루트'라는 연극이야.”
재희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어머, 루트? 그거 유명한 거잖아.”
“응, 내일 7시 반, 내일 저녁에 시간 돼?”
“정말? 잘 됐다.”
흥분한 재희는 옆에 있는 선영에게 말하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하여 들린다.
“민수가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루트 보러 가재.”
“어머, 정말이야?”
수화기를 통하여 재희와 선영의 말을 듣고 있던 민수가 당황하며 재희에게 묻는다.
“선영이하고 같이 있어?”
“응, 선영이가 집에 와 있어, 연극 표는 어떻게 구했어?”
“응, 회사에서 사원 우대 할인으로 두 장 샀어.”
재희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두 장?”
선영의 목소리가 수화기로 들린다.
“너희들끼리 가, 나는 됐어.”
민수가 잠시 당황하다가 말한다.
“선영이도 같이 가지 뭐, 연극 표 한 장 더 사면 돼.”
“비쌀 텐데…”
“아니야, 괜찮아.”
“그래도….”
재희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민수의 마음을 더 씁쓸하게 한다.
“내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일곱 시에 봐. 셋이 같이.”
“일곱 시? 그래, 내일 거기서 봐.”
민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놓고 한 장의 연극 티켓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고민한다.
신계약팀의 분주한 아침, 중만이 모니터를 보며 바쁘게 키보드를 치다가 민수를 보며 말한다.
“민수씨, 매우 바빠?”
“아니요, 바쁘지 않습니다.”
“아, 그래? 내가 좀 급해서 그러는데 신계약 테스트 파일 좀 만들어 줄 수 있어?”
“어떻게 만들면 되는데요?”
“응, 종피보험자의 연령과 성별 그리고 직업코드를 좀 만들어 줬으면 해서.”
종피보험자라는 말에 민수가 자신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 민수에게 중만이 설명한다.
“간단해, 청약서 파일에 있는 주피보험자 데이터를 가져와서 종피보험자 필드에 채워 넣기만 하면 돼.”
“청약서 파일에 있는 임의의 피보험자 데이터를 종피보험자 필드에 집어넣으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렇게 하면 돼.”
“예, 알겠습니다.”
“하다가 모르면 나한테 물어봐.”
민수와 중만이 다시 모니터에 매달려 일을 한다.
민수는 모니터를 보며 바쁘게 일하고 있는 가운데 영숙이 민수에게 다가와서 상냥하게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민수는 영숙을 힐끗 본 후 방어 모드를 취하듯 다시 모니터로 눈을 꽂는다.
“어제 주신 자료 잘 보았습니다. 부장님께 내용을 보고 드렸어요.”
민수는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예….”
영숙은 회의 탁자에 있는 의자를 손수 가져와 민수 옆에 앉는다.
“그런데 지금 것은 계약 건수만 나오잖아요. 추가로 계약자 수도 나오게 해 주실 수 있어요?”
‘이런 제기랄 또 변경 요청이야?’라고 속으로 되뇌는 민수. 민수는 영숙의 말에 관심이 없다는 듯 계속 모니터에 시선을 두고 있다.
그러나 모니터를 바라보는 민수의 머릿속에는 영숙이 요청하는 작업의 프로그램 코드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리포트 리스팅 프로그램의 출력 레이아웃 항목에 '계약자 수' 필드가 ‘계약 건수’ 옆에 추가된다.
민수는 이 작업이 20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머릿속으로 프로그램을 굴리고 있는 민수 옆에서 영숙이 말을 이어간다.
“리스트에 계약자 수만 추가하는 것인데 간단한 거잖아요.”
머리를 한창 굴리고 있는 민수가 영숙에게 대답한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서요, 데이터를 새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사실 데이터를 새로 만들 필요 없이 생성된 데이터의 순서만 조정하면 된다. 그러나 민수는 뻔뻔스럽게 말한다.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민수는 머릿속으로 SORT 단계를 떠올린다. SORT 유틸리티의 매개변수 입력란을 수정하는 데 3분도 안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영숙이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데이터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민수는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20분 + 3분 = 23분. 그러나 민수는 뻥튀기해서 말한다.
“그거 작업하는 데 3일은 더 걸려요.”
“이번 작업은 빨리 해 주셨잖아요? 이것도 빨리 될 수 있지 않나요?”
영숙의 간절한 요청에 민수는 거만하게 대답한다.
“빨리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잖아요?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왔으니까 일이 그렇게 빨리 된 거지요.”
“어머, 그러셨구나. 몰랐어요.”
영숙은 놀라는 척하며 아양을 떤다.
민수는 영숙의 존재를 무시하며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영숙은 빚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현수 옆에 말없이 앉아 있다.
영숙의 말 없는 시위, 그리고 민수의 버티기, 둘은 이렇게 대치하며 시간이 흐른다.
영숙은 민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다시 말한다.
“부탁 좀 드릴게요.”
민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한다.
“지금 엄청 일이 밀려서 그것 작업할 시간이 없어서 그래요.”
민수의 말에 영숙은 머뭇거리다가 일어서며 공손하게 말한다.
“바쁘신데 내려갈게요. 부탁드릴게요.”
영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에서 나간다.
옆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중만이 싱긋이 웃는다. 중만은 민수의 ‘뻥’을 알고 있다.
민수는 연신 벽시계를 쳐다보며 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러다가 중만에게 말한다.
“선배님, 신상품 테스트 파일 다 만들었어요.”
“오케이, 고마워.”
민수는 벽시계를 쳐다본다. - 6시 50분.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무실에서 급히 나간다. 그리고 회사 문을 나와서 거리를 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