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수 Nov 01. 2024

억지 선생

연재소설 : 러브 코딩 28화 - 억지 선생

거리를 뛰던 민수가 세종문화회관 앞에 이른다. 그리고 재희와 선영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뛰어오느라 숨이 찬 민수는 헉헉거리며 재희에게 말한다.

“내가 좀 늦었지? 회사 일 때문에, 허어허억, 좀 늦게 나왔어.”

“어머 땀 좀 봐, 좀 쉬면서 숨 좀 가다듬어.”

재희가 민수의 모습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며 말한다. 

그 옆에 있는 선영이 인사한다.

“민수야, 오래간만이야.”

뛰어오느라 기진맥진한 민수는 몸을 앞으로 구부려 양팔로 무릎을 짚으며 대답한다.

“응, 선영이, 안녕.”

“가까운 곳에 가서 좀 앉아서 숨을 가다듬자.”

염려하는 재희의 말에 민수가 바삐 대꾸한다.

“아냐, 됐어, 들어가자. 시작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민수가 앞장서서 걷자 재희와 선영이 그 뒤를 따른다. 


일행이 세종문화회관 입구에 다다른다.

민수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표를 재희에게 내밀며 말한다.

“너희들은 먼저 들어가서 로비에서 좀 기다려 줘.”

재희와 선영이 출입구로 들어가고 민수는 매표소 쪽으로 간다.


매표소 앞에 선 민수가 창구 안 직원에게 말한다.

“같이 온 일행이 있어서 그런데 E25나 E26 옆에 자리 있어요.”

“E25, 26 옆자리는 없고, F24자리는 있어요.”

창구 직원의 말에 민수는 신용카드를 내밀며 말한다.

“그것으로 주세요.”

잠시 후 민수는 티켓과 신용카드를 받아 들고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민수는 로비로 들어서서 재희와 선영이 서 있는 곳으로 간다.

“저녁을 못 먹어서 어떻게 해? 내가 좀 일찍 와서 간단히 요기하려고 했는데.”

민수의 말에 재희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아냐, 괜찮아.”

“연극 끝나고 생맥주나 한잔하자.”

“응, 그래, 그런데 여기 참 좋다.”

재희가 로비 안을 둘러보며 말하자 민수도 로비 안을 둘러본다.

“나도 여기 처음이야. 좋긴 좋네.”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일행은 홀 안으로 들어간다.


세 명은 홀 안으로 들어서서 자리를 찾는다.

재희와 선영은 앞자리에 앉고 민수는 재희의 뒷줄 왼쪽에 앉는다.

선영이 뒤쪽에 앉는 민수를 보며 말한다.

“너 자리가 왜 거기야?”

“응 거기 옆자리가 없대.”

선영이 민수를 미안한 표정으로 보며 말한다.

“내가 그리로 갈게, 너가 여기 와서 앉아.”

“아니야, 그냥 앉아.”

선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냥 자리에 앉는다. 사실 선영 혼자 뒷자리에 앉는다면 모양새가 더 어색해질 것이라 민수는 생각한다. 그리고 재희도 불편해할 것이고.

웅장한 종소리와 함께 막이 스르륵 올라가며 화려한 무대가 나타나고 연극이 시작된다.

연극을 바라보는 재희의 호기심 어린 표정.

재희의 대각선 뒷자리에 앉은 민수는 재희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연극이 중반부를 넘어서자 재희는 때로는 웃고 때로는 감동한 표정이 이어진다.

민수는 연극의 고비마다 변하는 재희의 표정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본다.


어느덧 연극 막이 내려온다.

일행은 감흥에 젖은 듯 말없이 일어서서 홀을 나선다.


일행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나와 말없이 걷는다.

재희와 선영이 짝을 이루어 걷고 그 옆으로 떨어져 민수가 걷는다.

민수가 재희를 바라보며 말한다.

“생맥주 한잔할까?”

“아니, 늦은 것 같아, 그냥 집에 가면 어떨까?”

재희의 야속한 대답에 민수는 서운한 표정을 숨기며 말한다.

“그럴까?”


세 명은 또 말없이 걷다가 횡단보도가 있는 사거리에 다다른다.

“우리는 여기서 길 건너 버스 타고 집에 갈게. 너는 시청역에서 지하철  탈 거지?”

재희의 말이 서운한 민수,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 짧게 대답한다.

“응.”

“야, 너 횡단보도 건너는 신호등 불 켜졌다, 빨리 건너가.”

민수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럼 갈게.”

민수는 건널목을 건넌다. 혼자서 걷는 민수는 무척 섭섭하다. 

재희는 걸어가는 민수의 뒷모습을 깊은 눈망울로 바라본다.



민수는 단말기 테이블에 앉아서 일하고 있다.

영숙이 비닐봉지에 무엇인가를 들고 신계약팀으로 다가온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일섭이 영숙을 쳐다보며 말한다.

“응, 우리 팀에 자주 오네.”

“저는 대리님 뵙는 게 좋은데, 대리님은 저가 싫으세요?”

영숙의 말에 일섭이 웃는다. 

영숙은 비닐봉지에서 음료수를 꺼내서 일섭의 책상 위에 놓으며 말한다.

“대리님, 이것 드시면서 일하세요.”

“웬 거야? 뇌물?”

일섭의 말에 영숙이 새침한 표정으로 말한다.

“내 마음이에요.”

영숙은 음료수를 신규와 중만의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민수의 자리로  다가온다.

“저번 데이터 리포팅 잘 쓰고 있어요. 이거 드세요.”

민수는 영숙이 건네는 음료수를 얼떨결에 받아서 든다.

“어…. 고마워요.”

영숙은 민수 책상에 비어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 좀 앉아도 되죠?”

민수는 영숙의 바뀐 태도에 긴장하며 말한다.

“예, 그러세요.”

“어제 저가 부탁한 거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영숙의 애절한 요청에 민수는 여전히 뻣뻣하게 대한다.

“글쎄요, 다른 일이 많이 밀려 있어서요.”


민수는 머릿속은 작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화면이 펼쳐진다.

그 화면에 'YES?'와 'NO?' 글자가 쓰여진다.


“좀 부탁드릴게요, 예?”

“내 마음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요. 이 일 하려면 작업의뢰서를 작성해서 대리님 결재받아야 하니까요.”

영숙은 일섭을 바라보며 한껏 애교스럽게 말한다.

“대리니임~, 좀 해주세요오~.”

그러나 일섭은 민수에게로 결정 권한을 패스한다.

“민수씨가 맡아서 하는 일인데,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영숙은 다시 민수를 향해 말한다.

“선생님, 좀 해주세요.”

‘선생님’, 영숙의 ‘선생님’이라는 말에 민수의 머릿속에 그려진 'YES?'라는 글자가 커진다.

“선생님이 해준다고 하기 전까지는 안 내려갈 거예요.”

다시 한번 더 말하는 영숙의 ‘선생님’이라는 말에 민수의 머릿속에 그려진 'YES?'와 'NO?'라는 글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선생님 = OK!'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그래도 민수는 마지못한 듯 말한다.

“일단은 해 볼게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좀 기다려야 될 겁니다.”

“어머, 고마워요. 빨리 해주시면 더 고맙고요.”

영숙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일섭에게 인사한다.

“대리님, 내려가 볼게요.”

“응.”

중만은 영숙이 나가는 뒷모습을 웃으며 바라본다.

영숙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중만은 민수를 바라보며 놀리듯 말한다.    “선생님? 아하하하.”

그 말을 듣는 일섭과 신규도 만족한 듯 웃는다. 이로써 신계 팀에 ‘선생님’ 한 명이 더 만들어진다.



영숙이 부탁한 작업을 수행하는 민수, 그의 책상에 전화벨이 울린다.

“정보시스템실 신계약팀 이민수입니다.”

“민수야, 나야, 재희.”

민수는 주위를 살피며 말한다.

“으응? 무슨 일?” 

“어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해서 그래서 전화했어.”

“아니야, 고맙긴.”

“연극이 끝나고 나오는데, 기분이 뭔가 참 묘했어. 머리가 묵직하다는 기분이 들고, 말을 하기는 뭔가 어색한 느낌? 그래서 호프집에 갈 기분이 안 내켰어.”

“그래, 나도 너하고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아.”

민수는 재희와 느끼는 감성이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까 하고 속으로 놀란다.

“민수야.”

재희가 잠시 말을 멈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미안해.”

재희의 미안하다는 말에 민수가 긴장한다. 그래서 민수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뭐가?”

“내가 미숙이랑 같이 간 것도 그렇고, 어제 너가 뛰어 오는 모습, 집에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너만큼 해주질 못할까 하고 생각했어. 민수야, 나 참 못됐지?”

긴장하던 민수는 웃으며 말한다.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래서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아.”

민수는 재희 기분을 풀어준다는 핑계로 조심스럽게 선을 넘는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너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민수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자리 주위의 눈치를 한 번 더 살핀다.

민수의 말에 예상대로 재희는 황당하다는 듯 웃는다.

“하하하, 뭐? 내가 사랑스럽다고?”

이어서 유들유들하게 도를 넘는 민수.

“그리고 깜찍하고.”

“뭐 깜찍? 얘는, 날 놀리니? 하하하.”

민수는 재희에게 자신의 마음을 한껏 날려 보낸다.

“정말이야, 어제 연극 보는 너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어.”

민수의 은근한 고백에 재희는 노련하게 방어막을 친다. 

“참 나 원. 너가 우리 아빠같이 말한다. 하하하.”

재희의 아빠 이미지 뒤집어씌우기 장풍에 당황하는 민수, 물타기 신공으로 역공한다. 

“뭐 아빠? 하긴 내가 선생님으로 불리기도 하니까 아빠로도 불릴 수도 있겠지, 하하하.”

능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민수에게 재희가 황당하다는 듯 묻는다.

“누가 너를 선생님이라 불러?”

민수는 과시하듯 말한다.

“그렇다, 왜?”

그런 민수가 가소로운 재희, 일침을 날린다.

“하하하, 누가 너같은 새파란 신입사원을 선생님이라 부르니?.”

그래도 민수는 물러서지 않는다.

“정말이야!”

민수의 능글능글한 내공에 재희는 결국 꼬랑지를 내린다.

“너 일해야 하는데 이만 끊어야겠다, 잘 있어.”

이렇게 대결을 마치는 것이 아쉬운 민수, 그래도 재희에 대한 진도가 어느 정도 나간 것에 만족하며 대답한다.

“응, 내가 연락할게.”

민수는 미소를 지으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민수는 영숙이 부탁한 작업을 마무리 지은 후 작업 결과를 중만과 검토한다.

“잘했어, 대리님께 보고해도 되겠네.”

일섭에게 보고한다.

일섭은 민수가 건넨 데이터 리포팅 리스트를 살펴본다.

“수고 많았어. 일을 빨리 끝냈네.”

“감사합니다.”

중만이 민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민수씨, 일을 그렇게 급하게  하면 사고나, 한 박자 쉬어 가면서 일을 해야지.”

중만의 말한 뜻을 몰라 되묻는 민수.

“예?”

“안 되겠어, 오늘 교육 좀 해야겠어,”

이어서 중만은 일섭을 향해 말한다.

“대리님, 오늘 한 잔 어떻습니까?”

“아냐, 오늘 집에 일찍 가봐야 해, 자기들끼리 한잔해.”

중만은 신규도 바라보며 말한다.

“신규씨, 오늘 한 잔 어때?”

“저는 좋습니다.”

그때 중만은 지나가는 소라를 불러 세운다.

“소라씨, 오늘 저녁 어때?”

“예? 저녁요?”

“오늘 한잔하러 갈 건데, 소라씨도 같이 안 갈래?”

“어머, 선배님, 고마워요”

소라의 말을 들은 ‘선생님’ 민수가 소라에게 묻는다.

“여기 계신 선배님은 선배님이고 부르고, 나는 왜 선생님이라 불러요?”

소라가 민수에게 아주 친절하게 말해준다.

“선배님은 저보다 먼저 입사했으니 선배님이고, 선생님은 그냥 부르는 호칭이에요, 선생님이란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아, 예….”

그 말을 들은 민수는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신계약 팀원들은 민수의 허탈한 표정을 보며 웃는다.



<<< 러브 코딩 1편을 저장 용량 사정상 마무리 합니다, 러브 코딩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월, 수, 금 연재
이전 27화 전산쟁이 기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