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술래
세월을 먹어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나무 의자가 결국 코하네의 원피스
올, 가닥을 잡아당겼다.
튕겨 올라온 모양이 불거져 지저분한 꼴이다.
원피스 끝자락을 뒤집어
잡아당겨 보지만 아무 쓸모없는 행동이다.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별일 아닌 일임을 알면서도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마사토는 코하네의 행동을
자세히 보더니 눈치를 보며 얇은 방석을 건넨다.
이미 늦은 후지만 쓸모 있길 바라본다.
이번엔 커피잔이 말썽이다.
커피를 들이마시다 날카로움에
입술이 스쳤다.
자세히 보니 약간의 파임이 보인다.
입술에 닿은 거친 느낌이 사라지질 않았다.
파인 부분을 볼 때마다 그 맛이 생각났다.
역시 커피 맛은 시간과 비례했다.
이번에는 꼭 마사토에게
경고하겠다고 마음먹고,
성큼성큼 잔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때 입안에 넣은 초콜릿이
이미 달콤함을 뽐내며
입안에 단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사토가 코하네에게 말했다.
“커피 더 줄까?”
경고에 대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네준 커피잔의 뾰족함을
확인할 틈도 없이
마사토는 커피를 조르륵 따라내며 말한다.
“갖다 줄게.”
“고마워요.”
고맙다니, 코하네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바보라고, 말하고 있다.
나오코가 없는 자리에
마사토가 초콜릿을 준 건 굉장한 호사였다.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자신을 위로하며 다시 초콜릿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마사토는 커피를 따르다 말고,
약간의 소리를 치며 코하네에게 말했다.
분명 그 속엔 짜증도 섞여 있음이다.
무딘 마사토는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다.
“말하지.”
그녀가 다짐한 각오를
여우 같은 마사토에게 들키는 순간이다.
그녀는 그 순간이 더욱 창피했다.
손바닥을 보이며 괜찮다는 시늉을 했지만
코하네의 볼은 순간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사토는 자신이 한 실수도
남을 탓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녀는 또 한 번 바보짓이다.
“괜찮아요, 초콜릿이 맛있으니까?”
이번엔 정말 용서하기 힘든
바보 같은 말이 툭 나와버렸다.
마사토가 새로 가져온
꽃무늬가 가득한 커피잔을 바라보며
다시 위로 삼는다.
마사토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겐 영,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한 사람이었고,
친절하게 말하는 법도
잊은 채 사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달라진 코하네의
말끔한 뒤통수를 알은체했다.
“어찌 된 일이야?”
“네?”
마사토가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머리통, 말이야.”
그의 말을 듣자니,
초콜릿에 체하는 기분이 들었다.
“잘랐어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에그, 쯧쯧쯧쯔.”
코하네의 머리카락이
제 멋대로 된 건 전 날밤이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으며
늦게 잠이 든 것도 아니었다.
평상시보다 일찍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자마자 거울로
얼굴을 확인했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결론을 내자면,
잠결에 일어나 가위를 들었다.
거울 앞엔 머리카락과 가위가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에
기억을 해내기는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인지,
왜 갑자기 머리카락을 잘라 냈는지,
도통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탈모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건 며칠 되지 않았다.
빗질하거나 머리를 감을 때마다
뭉텅, 솜처럼 빠지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스스로 가위질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눈물은 마를 대로 말라 버렸고,
다 쏟아붓고 나서야,
이미 저질러 놓은 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빠르게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설 준비를 했다.
쥐가 파먹은 듯한 머리 모양을
가릴 모자 하나도 채 보이질 않았다.
고민 끝에 하늘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밖을 나섰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지만,
미용실에 다다를 때까지
절대 칭칭 감은 것을 풀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에 발을 놓자마자
스카프를 풀어헤쳤다.
한 사람 두 사람, 또 다른 사람들과의
눈 마주침, 이미 복잡한 그곳의
사람들은 그녀를 확인했다.
스카프를 다시
칭칭 감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들은
동정의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다.
마치 남편에게,
또는 부모에게 또는 친구에게
모진 꼴을 당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쯤 견뎌 내는 것이야,
그녀에겐 아무 문제도 아니다.
질문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이곳은 역시 올 때마다
낯설고 아는 얼굴 하나 없다.
다행히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코하네의 짧은 커트 스타일이
나오기까지는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은 듯했다.
아니 불자의 머리칼 길이보다는
약간의 머리칼이 보일 정도라고
하는 게 정확할 듯싶다.
잠시 눈을 감으며 기다렸을 뿐인데,
여자의 가는 목소리가
완성이란 말을 하고 있다.
눈을 뜨고 자신의 낯선 모습을
오랫동안 감상하는 중이다.
미용실 직원이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은 듯한 말을 건넸고,
그녀의 귓속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설익은 밤톨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우두커니 서 있는 모양새다.
긴 시간 동안 감지 않아
뭉쳐 있던 엄마 후미코의
머리카락이 생각났다.
솜씨 좋은 할머니는
후미코의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주었다.
그 이후 후미코의 뭉쳐 있는
머리카락은 보지 못했다.
또한 긴 머리카락도.
아빠 신페이의 얘기로는
후미코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을 때,
자신의 짧아진 머리카락을 보고
내내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후미코는
자신을 위해 츠키노가
머리카락을 잘라 낸 거라고 믿지 않았다.
후미코는 늘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돌아가도 이런 모습의 날,
엄마는 알아볼 수 없을 거야.”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우울해하는
후미코의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신페이는 값비싸고
그 당시 구하기도 힘든 긴 머리카락과
비슷한 가발을 들고
후미코의 머리 위에 씌어 주었다.
후미코는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고,
마치 남편이 아닌 남을 대하듯,
예의를 다하여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고 말했다.
그때의 후미코의 머리 모양이
코하네와 같았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후미코의 머리 모양이 생각나질 않는다.
떠올리려 할수록 더욱 희미해질 뿐이다.
마사토의 가게 안에 있는 물건 중
역시 가장 쓸 만한 건 선풍기일 것이다.
어찌나 센 바람인지
밤톨에 붙은 짧은 머리카락도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목덜미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싫지 않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오코의 머스크향을 가게 안에
가득하게 만들었다.
아찔할 정도로 향긋하고
콧속을 흥분하게 만드는 향이다.
코하네는 나오코의 미모만 보아도
입이 쩍, 하고 벌어졌고
동시에 나오코는 코하네의 짧아진 머리카락과
작은 머리통을 보고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어깨가 봉긋하게 올라오는
겨자 색 블라우스에 허리가
잘록해 보이도록 옥죄는 허리띠,
블라우스와 짝을 이루는 겨자 색 바지는
꼭, 도시에 사는 여자를 대표하는 차림새다.
풍성하고 검은 머릿결은
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선풍기 바람이 나오코의 머리칼을 날리며
더욱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마사토는
벌떡 일어나 벌린 입이 창피하지도 않은지
눈을 굴리며 보란 듯 나오코를 바라보았다.
나오코가 붉은 입술을 벌리며
코하네에게 말했다.
“코하네?”
“으, 응 왔어?”
나오코는 의자에 앉자마자
고개를 코하네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물어봐야겠어.”
코하네는 알만 하다며 손사래 친다.
“괜찮은 거야?”
나오코는 다시 괜찮냐, 는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응 그럼.”
“하, 놀랐다.”
코하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오코가 있는 상황에만
행동이 빠른 마사토가
그녀 앞에 재빨리 나타나
초콜릿을 내밀었다.
코하네에게 베푼 초콜릿과
다른 모양이다.
그럴싸한 모양이 꽤 값이 나가 보였다.
코하네는 소리 내며 웃었다.
“프읍.”
마사토가 아닌 척
코하네에게 눈을 흘기며
아랑곳하지 않고 나오코를 알은체했다.
“커피로 줄까요?”
나오코가 바구니에 담겨 있는
초콜릿을 보며 미소 지었다.
“네, 좀 진하게 주세요,
이 앨 보니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나오코가 코하네의 머리통에 대고 손짓했다.
“네, 그러죠.”
마사토는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핑크색 방석을 나오코에게 내밀었다.
방석을 의자에 모두 놓아주면 될 것을
마사토는 꼭, 친절함을
티를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아, 네 고마워요.”
정말이지 핑크색 방석을
내민 그는 한심해 보였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부리나케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나오코는 어깨를 으쓱하며
왜 저러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내가 좀 늦었지? 미안.”
“괜찮아.”
“겐토가 늦었지 뭐야,
하… 미리 연락이라도 주던가,
아무튼 확실하지가 않은 사람이야.”
나오코는 오늘도 겐토에 대한
못마땅한 얘기를 빼놓지 않고 말하고 있다.
“늦은 것도 아닌걸, 나오코 괜찮아.”
마사토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며
나오코를 흘긋거린다.
나오코의 커피를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알은 계속 그녀를 훑고 있다.
내내 신경 쓰고 있지 않던 나오코도
티 나게 구는 마사토가 불편했는지,
나오코 특유의 말투를 내뱉는다.
“마사토씨,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내내 상냥하던 나오코가
정색하는 모습에
꽤나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마사토는 다시 얼음이 되어버렸다.
나오코는 다시 정색하며 말했다.
“그 커피, 제 것 맞아요?”
그의 행동은 안타깝기까지 했다.
손은 덜덜, 볼은 붉게,
눈동자는 갈 곳을 못 찾고 있었다.
코하네는 차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볼 수 없어
한숨을 길게 늘어뜨리며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사토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나오코가 중얼거렸다.
“하, 정말이지 신경 쓰여, 젠장.”
천천히 뒤돌아 가는 마사토는
나오코의 가시 돋친 말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나무 쟁반을 들고
빠르게 사라졌다.
나오코의 가시 돋친 말을
미리 막아주지 못해
코하네는 오지랖 넓게
그에게 또 미안했다.
마사토의 유일했던 낙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나오코가 내려놓은 커피잔에
붉은 립스틱이 선명하게 묻어났다.
“머리통, 쇼 같아 작기도 하지, 큭.”
나오코는 왜 머리카락이 사라졌는가?
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고
궁금하다란 티도 내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코하네가
괜찮다면 괜찮은 것이다.
코하네는 그런 그녀가 좋았다.
“근데 마호씨는?”
나오코는 마호는 꼭
너와 함께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응, 연락 못 했어.”
“안 한 거겠지, 그 머리통 때문에.”
“흣.”
“다행이다, 내가 먼저 봐서.”
코하네는 꽃무늬가 있는 곳을 피해
잔을 돌려 마셨다.
코하네가 마신 커피잔에는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는다.
나오코가 들고 온 가방은
그녀가 입고 온 투피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코하네 답지 않게
가방에 호기심이 생겼다.
가방은 낡은 상태에 뭔가
가득 담겨 툭, 튀어나온 모습이다.
나오코의 패션에
완성미를 떨어뜨리는 건 분명하다.
“가방, 찢어질 거 같아.”
“왜? 잘린 손목이라도 있을까?”
나오코는 물을 벌컥, 들이켜더니
얼굴이 발개지며 말했다.
“하즈키, 냉장고에 채워야 할 것들.”
“아”
“그런데 그 집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어서 말이지…”
“으응?”
“친구인 척, 사칭하는 전 부인.”
“그래도 이걸 들고 다닐 거야?
잠깐 가서 놓고 오지 그래.”
“그거, 싫어.”
코하네는 나오코가
하즈키와 마주 보고 앉아
한마디라도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미워하는구나?”
“솔직히 말하면,
완벽하고 너무 좋은 사람이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미운 건?”
마치, 그건 당연한 거야,
넌 안 그래?라고 묻는 것 같다.
나오코는 가방 속에서
네모 난 작은 도시락통을
코하네에게 내밀었다.
코하네의 눈이 동그래졌다.
“으응?”
나오코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하즈키 것 아냐, 네 거야.”
나오코는 가방 속의 똑같은 모양의
여러 개의 도시락통을 보여주며 웃었다.
“나오코.”
“그런 눈빛은 뭐야?”
“이런, 고마워 나오코.”
코하네는 전 부인이라 칭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마음을 갖고 있잖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또 다른 오지랖 같아
침으로만 꿀꺽, 삼키고 만다.
“고마운 거 알면 제발 먹고 다녀, 응?”
차가운 도시락에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 두 손으로
그것을 감싸며 고마움에 어쩔 줄 몰라한다.
코하네는 그녀에 대한 마음의 절반은
믿지 못함과, 어색함,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 것에 대한
낮은 자존감, 이 늘 자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오코에 대한
진심은 심장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도시락 하나에 바뀌는
얄팍한 인간성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꼭, 그럴게.”
코하네의 꼭, 이란 말은
정말 지킬 게,라는 말과 같아
나오코는 아주 비싼 미소를 보여준다.
“커피 다 마셨지?”
“으응, 식은 지 오래야 큿.”
“가자.”
“응.”
코하네가 벌떡 일어난 순간
그녀의 흰색 원피스가
불거져 나온 못에 다시 걸려
의자가 대롱, 하고 매달려 있는 꼴이다.
바닥에는 깔고 앉아 있던
때 묻은 얇은 방석이 떨어져 있었다.
“아, 이런.”
자세히 보니 얇은 면으로 된
원피스 끝자락이 찢어져 있다.
나오코는 찢어진 부분을 보며 깔깔 웃었다.
“와, 짧은 게 더 보기 좋은데? 큭.”
이미 자신감을 잃고 주눅 든
마사토에게 자신마저
싫은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코하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사토가 보란 듯 남긴 초콜릿을
한 움큼 집어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오코는 그녀의 그 모습을 보더니
보상은 이미 받았다는 듯,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마사토를 보고 웃었다.
정말이지 마사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무뚝뚝해 보이기만 한 마사토는
나오코의 미소와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코하네는 그런 그가 내심 부러웠다.
감정표현에 있어
이토록 더 솔직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마사토는 나오코의 웃음에
다시 밝은 햇살을 처음 본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나오코는 가방을 짊어지며
자신보다 한참 작은 코하네의 팔짱을 껴 본다.
그들은 보다 짧아진 원피스 얘기를 하며
해맑게 웃고 떠들었다.
나오코의 머스크향과 코하네의 웃음은
꼭, 닮아있어 어디에서나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도 그녀들, 임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문을 열자마자 답답한 공기가
밖으로 훅, 하고 날아가며
답답함이 그들을 맞는다.
조금이라도 환기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묵직한 공기이다.
커튼으로 막아 놓은 좁은 공간에는
빛이라 곤 커튼의 작은 틈, 하나.
세로줄로 길게 뻗는 작은 틈,
언뜻 보기만 해도
아주 귀한 빛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오코는 코하네의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만큼 작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먹을 거라고 생수통과 까만 커피 가루와
코하네의 머리통 모양과 닮은 달걀, 뿐이다.
그나마 있는 달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알코올의 늪으로
일찌감치 빠져 있는 그들이다.
나오코는 씩씩거리며
연신 흘려보낸 웃음도 지쳤는지
숨을 고르는 중이다.
코하네의 네모난 작은 방,
개수대, 1인용 침대, 그녀만 한 거울,
사방으로 놓인 불규칙한 책장,
어느 한 곳이라도 그녀를 닮지 않은 것이 없다.
심지어 사람 한 명이 들어가도
모자랄 것 같은 화장실은
과연 씻을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코하네는 그 좁은 공간에서도
마치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가볍게 통통거린다.
답답하다는 말을 꺼낼 뻔했지만,
나오코가 생각해도
정말 예의 없는 말일 것이다.
다시 심호흡을 길게 하며
코하네처럼 넓게 앉아 보았다.
책으로 둘러싸인 벽을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대부분 나오코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적힌 책이다.
흑백 사진 속 사람들은
상상하지 않아도 코하네의 부모,
또는 다른 가족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통까지 똑같은 여자,
멋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
작은 체구의 남자가 어린 코하네를
번쩍 들어 올려 웃고 있었다.
다른 흑백 사진 속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마치 싫지 않지만, 하지 말아라,
하며 속삭이며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오코는 좀 의아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녀는
검은색, 어둠, 인내심, 과 같은
단어들이 비치는 아이였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고,
코하네는 지금도 그렇다.
뭔가 충격을 받은 것처럼 앗, 하는
탄식이 나왔다.
코하네의 행복해 보이는 유년 시절이
흑백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진 속의 여자와 남자,
그리고 노인은 정말 코하네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고,
꼭, 영원히 곁에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감고 침대 위에 뻗은
코하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코하네가 부러웠다.
몸집이 작은 이 아이는 늘,
안타깝거나, 부족하거나,
도움이 필요하거나, 의 단어들을
갖고 다닌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그것들을 오직 자신만이
채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부족한 코하네란 생각에
자신만이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는 것에
내심 희열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어쩌면 그로 인해 텅 빈 자신의
가슴속을 채우고 산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코하네로 인해 난 뭔가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부러움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나오코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알지만 알고 있다는 척도 하기 싫었다.
마치 치호의 배부른 모습과
웃고 있는 모습을 본 것처럼.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화가 날 것처럼, 단단히도 부러웠다.
코하네의 찢어진 새하얀 원피스마저 부러웠다.
코하네는 마치 작은 새의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나오코는 누운 코하네를
장난 삼아 후, 하고 불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또 후, 하고 불어 본다.
사진 속의 이야기와,
알아볼 수 없는 언어의 책,
풀어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나오코는 묻지 않았다.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미치도록 부러워지는 게 두렵다.
“코하네.”
코하네는 여전히 공기 위에
두둥실 떠서 눈을 감고 있었다.
“으응.”
나오코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눈동자는 알 수 없는 글자로
빽빽한 궁금한 책들 사이를
계속 오고 간다.
“자?”
“으응, 아니.”
“아까 그 남자 말이야,
아이가 있다는 말에 달라지는 얼굴 봤어?”
“너 짓궂어.”
“그가 아닌 이상, 남자들은 다 똑같아.”
코하네가 눈을 감으며 키득거렸다.
“그래도 겐토씨, 그뿐이네.”
나오코는 그가 겐토라고 칭하는
코하네의 말에 그가 그는 아니야,라는
말을 담지 않았다.
한참을 키득거리며 누워 있던
코하네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나오코, 난 정신이 너무 말짱해.”
나오코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집었다.
“아니, 아니야 그냥 둬.”
“으응? 집 안에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정말 술독 같아.”
코하네는 개수대에 고개를 들이밀고
수돗물을 벌컥거렸다.
어찌나 세게 틀었는지
물의 반이나 되는 양이
그대로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가끔 보이는 코하네의 거친 모습은
참, 어울리지 않아 더욱 매력적이다.
짧은 머리칼에도 물방울이 맺혔다.
“으하… 마실래?”
코하네의 입술, 뺨, 목 주변에
물이 흘러내린다.
대수롭지 않게 찢어진 원피스
끝자락을 올리더니 쓱, 하고 닦아냈다.
나오코에겐 있을 수 없는 일,
나오코는 넋 나간 사람처럼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
코하네가 나오코를 다시 불러본다.
“나오코?”
“응? 응.”
“물.”
나오코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아니, 괜찮아.”
나오코는 창문 열기를 포기한 채
바닥에 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빠르게 휘리릭, 소리가 날 것처럼
책장을 넘겨보았다.
군데군데 코하네가 그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 붉은 밑줄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모른 척하고 있기엔
궁금증은 점점 수위가 달해갔다.
고맙게도 코하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것 알아?”
나오코가 책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해 보였고
코하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글쎄.”
코하네는 입을 앙, 다물며
찢어진 원피스를 훌렁 벗어던진다.
갑작스러운 코하네의 행동에
눈을 피할 길도 없이
유난히 작은 몸집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코하네의 어깻죽지는
이상하리만큼 툭 튀어나온 상태로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뭔가 잘린 것 같은 느낌도 드는 모양새다.
왼쪽과 오른쪽 뼈가
뒤틀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날개라도 솟아오를 것처럼
준비된 자세인 듯하다.
졸아든 엉덩이 살은
셀 수 없는 여러 개의 주름으로
둥근 모양을 대신했고,
허벅지는 남아있는 살을 찾아볼 수가 없다.
쇄골은 젖가슴보다 더 튀어나와 있었고,
없는 가슴살에 유난스럽게 크고
동그랗게 튀어나온 젖꼭지는
갓난아기의 것처럼 분홍색을 띠고 있다.
그것은 꼭 낯선 이방인처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나오코는 그때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가 떠올랐다.
꼭, 거짓말로 만들어진
마법에 빠진 몸 같았다.
코하네는 창피함도 거슬림도 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날아다녔다.
알몸으로 다가온 코하네가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국어, 책.”
나오코가 다가서자
쇼에게서 풍기던 파우더 냄새가 났다.
그때 나오코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코하네는 자기의 모습이 창피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하네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응? 한… 국?”
“코하네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새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흰 원피스를 그녀가 즐겨 입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옷장 안이 온통 흰색으로
뒤 덥힌 것을 보고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조금 다른 디자인의 옷을 걸쳤지만
안타깝게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나오코가 이번엔 천천히 책장을 넘겨보았다.
알 수 없는 글이었지만 모양이 웃거나,
울거나 하는 것처럼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코하네처럼.
“한국.. 사람이니까.”
나오코는 알고 있었음에도
화들짝 놀라 눈과 동시에
어깨가 위로 올라간다.
코하네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이란,
단어는 굉장히 비밀스러웠고,
무언가 비장한 느낌까지 들었다.
나오코가 대답할 말을 생각하느라
지체하는 중에 코하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색하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날아든다.
“한국어는 한글, 이라고 말해.”
나오코가 책장을 넘기며
글자 하나하나를 뚜렷하게
보려 애를 썼다.
“한국사람…인 거 잊고 있었어.”
코하네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가끔 그래.”
나오코는 그녀의 웃음에
억지웃음조차 튀어나오지 않았다.
코하네가 싫어하는 행동인 줄 알면서
그저 안타까운 미소로 바라볼 뿐이다.
“아, 나오코 그럴 필요 없어,
난 또한 일본 사람인 걸.”
이번엔 나오코가 코하네처럼 웃었다.
“푸핫.”
나오코가 다시 책을 들여다본다.
“이제 알 것 같아.”
코하네의 어깨가
피노키오의 코처럼 으쓱, 올라갔다.
“넌, 마치 다른 곳에 머무는 사람 같았는데…”
나오코는 들고 있던 책을 올려 보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다른 곳이 이 나라였군.”
코하네가 두 나무다리를 부딪으며
일어나 서성거렸다.
“운명이야, 싫어도 운명 좋아도 운명.”
나오코는 운명이라는 말에,
쇼와 겐토의 얼굴을 떠올리며
겐토의 얼굴로 마침표를 찍었다.
코하네가 부르는 소리는
잠시 들리지 않는다.
“나오코?”
“으응, 응.”
코하네가 손에 든 맥주를 흔들었다.
“응.”
나오코는 들고 있던 책을 책장에 집어넣더니,
그림과 사진이 많은 책을 골라
좁은 침대 위를 장악했다.
코하네는 좁은 볼에 담은
콩 과자와 맥주를 나무 쟁반 위에 담았다.
그 모습을 본 나오코가
코하네에게 엄지를 올려 보이며 웃는다.
“얼른 와.”
책을 바라보는 나오코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며,
몸을 웅크려 집중하기 시작했다.
코하네의 뼈가 먼저 닿아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대며 알은체한다.
“정말 궁금해, 너의 반쪽 나라.”
코하네는 나오코의 손가락을 무시한 채,
카디건을 어깨에 걸치며 시간을 끌었다.
빠르게 넘긴 맥주병이
어느새 비어 있음을 확인하며
눈을 찌푸린다.
나오코가 큰 눈을 깜박이며
그녀를 계속 응시했지만,
코하네는 질문에 여전히 답이 없다.
“궁금하다니까?”
그제야 코하네의 입이 열렸다.
“흐으음.”
나오코가 말했다.
“읽을 순 없지만 열심히 볼 순 있어..”
“으응.”
나오코의 코가 피노키오처럼 비죽,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얀 원피스가 저만치 날아갔다.
코하네는 벌써 맨발 위로
샌들 끈을 동여매고 있다.
“같이 가.”
“나오코 난 너무 말짱해, 그니까…
다녀올 게 혹시 배고파?”
나오코가 쇼처럼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하얀 원피스가 사라져 버렸다.
“콰앙, 철컥.”
굳게 닫혔다고 말이라도 하듯, 쾅,
소리가 꽤 오랫동안 메아리쳤다.
찰나에 열린 틈으로
강바람의 습함이 날아들어 왔다.
바람은 그새 책장을 넘기며
한글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어둠이 깔린 아스팔트는
한낮에 받은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채 열을 뿜어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열기가 들어와
온몸이 끈적거렸고,
맥주의 찬기가 물방울로 뚝뚝,
쟁반에 얼룩을 만들었다.
좁은 공간은 꼭, 낮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주황색 등이
오로지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그들의 말소리는 마치 꿀을 모으는
벌의 날갯짓 소리 같다.
어느새 감각이 뛰어난 옷을 벗어던진
나오코는 코하네처럼
알몸 위로 흰 원피스를 걸쳤다.
팔과 다리와 엉덩이의 작은 움직임에도
사각소리가 날 것 같은
이것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짧아진 소매, 껑충 뛰어오른 밑단,
팽팽해진 가슴선,
작은 옷을 구겨 넣은 것치곤, 아주 볼만하다.
좁은 공간 속 나오코의 걸음은
이쪽, 저쪽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런 옷은 처음인걸? 나쁘지 않아.”
코하네가 맥주 깡통을
개수대에 골인시키며 말했다.
“이런 옷을 그렇게 입은 사람도 처음이야.”
나오코가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에 보이는 코하네를 바라보았다.
거울 속 코하네는 또 다른 모습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코하네를 불렀다.
“코하네?”
코하네가 고개를 들고
나오코를 바라보았다.
나오코는 다시 거울 속에 비친
코하네의 얼굴을 바라본다.
사진 속의 젊은 여인과 같았다가,
다시 백발의 노인과도 같았다.
“넌 정말 매력적이야.”
코하네는 고개를 젓고
감사의 미소를 보낸다.
나오코가 비틀거리며
코하네가 들어갈 만한 옷장을 뒤지더니
이해할 수 없다며
코하네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야, 코하네.”
나오코의 초점은
조금씩 엇나가고 있었다.
“이것 좀 보라고, 온통 눈밭이라고,
디자인이 다른 건,
아무 소용이 없지.”
“매력적이라며?”
나오코가 미친 듯이 웃어 댔다.
“아하하 그랬지.”
코하네의 얼굴을 살피며
갑자기 옷장 문을 쾅, 닫아버렸다.
나오코가 남은 맥주를 들이켠다.
그녀처럼 개수대에 완벽하게 꼴인.
코하네는 나오코가 묻지도 궁금함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얘기를 풀어냈다.
“엄마 때문이야.”
나오코의 풀린 초점이
사진 속 젊은 여인에게
정확하게 꽂혔다.
“엄만 항상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다고 했어,
흰옷을 입지 못한 날은,
밤을 꼬박 새우고
옷이 마르기만 기다려,
그걸 입어야만,
그래야 깨끗하다고 믿었으니까.”
나오코는 열일곱의 그때를 생각했다.
코하네의 엄마에 대한 소문은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나의 것이 아닌 누구의 것에 대해
가슴 아프다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 소문들이 사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 속의 그녀는 오직 청초함, 그 단어 밖에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때 난, 더러워지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엄마였을 거야,
그건 어떤 힘으로도 저항할 수 없는 거야,
엄마가 다가와 씻기고
옷을 갈아입힐 때면
난 아예 눈을 감고 포기했지,
얼른 끝이 나기만을 기다렸으니까,
누군가 날 더럽혔을까,
아주 꼼꼼하게
내 몸을 관찰하는 시간이었어,
난 차라리 누군가 날 데려갈까,
이불속에 날 숨긴 채 문을 꼭꼭,
걸어 잠글 때가
더 낫다고 생각했지.”
나오코는 세상 속 어떤 얘기 속에서도
들어 보지 못한 얘기를 듣고
한동안 그녀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친 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조금 전
코하네의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코하네의 엄마 이야기는
독한 술을 들이켜고 있을
미네코를 떠올리게 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코하네에게 다가가 축,
늘어진 그녀의 손을 잡고
딱딱한 종아리에 살포시 기대어 본다.
“그게 그렇게 싫었었는데,
어느새 난 같은 모습을 하고 살고 있어
마치 엄마에게 겨눈 총포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난 너의 그대로, 다 좋아,
비난하지 마.”
코하네의 차가운 손가락이
나오코의 정수리를 쓸었다.
“한국으로 갈 거야.”
나오코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 보았다.
“가면?”
“가는 거지.”
“누군가 기다려?”
“글쎄 그들이 그래 줄까?”
“누군가 있구나?”
나오코가 일어나 후미코의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찾고 있진 않을까?
엄마를 또는 나를...”
“글쎄.”
나오코가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아, 이건 현실적이지 않아…”
“그것도 운명.”
그들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터져 나오자마자
입꼬리도 동시에 올라간다.
코하네가 개수대에 쌓인
맥주 캔을 종이봉투에
모으기 시작했다.
나오코가 말했다.
“처음부터 그럴걸.”
코하네의 나지막한 이힛하고 웃는 소리는
늘, 나오코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개수대에 흘러나온 맥주의
독특한 냄새가 오랫동안 집 안에 남았다.
이제 곧 잠들 것처럼
어둠 속에서도 코하네의
눈 밑이 파랗게 보였다.
하루의 피곤함이 아닌
짙고 오래된 피곤함이다.
그럴수록 코하네를 좋아하게 되는
자신의 감정 또는
심리가 이상하리만큼 복잡했다.
마치 쇼를 사랑하는 것처럼
코하네를 좋아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이유가 없었다.
나오코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좁은 침대 위를 부스럭거렸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누워있던 코하네가 말했다.
“쇼, 가 궁금해.”
나오코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어리둥절하다.
“응? 쇼오?”
눈을 뜨고 코하네도
부스럭거리며 나오코를 바라보았다.
처음 이토록 가까이서 본
코하네의 얼굴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나오코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길고 가는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쇼처럼, 아이처럼 조르는 것 같다.
나오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코하네가 또 눈을 깜박거린다.
“쇼 보러, 가자.”
“응? 지금?”
“응, 지금.”
나오코가 다시 누우려는
코하네의 두 팔을
더욱 세게 잡아당기며
상체를 완전히 일으켜 세웠다.
“나오코, 시간이 너무.”
어느새 코하네처럼 자연스럽게
원피스를 훌러덩, 알몸으로
좁은 공간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나오코는 다시 멋들어진 옷으로
갈아입고 팔짱을 낀 채
느릿느릿한 코하네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시간만 더 늦어질 뿐이야”
“아… 나오코.”
밤이 되면 강해지는 불어오는
바람 걱정에 옷장을 열어
얇은 카디건을 찾아
코하네의 어깨 위에 걸쳐 주며 말했다.
“이제 됐지?”
코하네는 못 이기는 척했지만
내심 이힛, 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친절한 나오코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차가운 손끝을 데워줄 요량이다.
맨션 주위의 어둠과
골목의 조합은 언제나 잘 어울리는 합이다.
그러하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남, 녀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발로 짓이기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생각하려 애쓴다.
‘아, 플라스틱?’
쓸데없는 집중력은
더욱 하즈키를 예민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또각거리는 소리다.
남성의 것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좁은 구두 굽이
아스팔트와 마주하며
매력을 발산하는 소리다.
‘굽이 높은 구두.’
그 속에 섞인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있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이번엔 무엇인지 확신하기가 힘들다.
‘운동화?’
며칠 동안의 불면증은
하즈키를 피곤하게 만들 뿐,
절대적인 수면으로
그를 이끌 생각이 없었다.
간혹 이쯤 됐을 땐
사정없이 잠에 빠지곤 하지만
이곳에선 달랐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온갖 소리가 그를 괴롭혔다.
시간이 흐른다고
소리에 익숙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눈을 감지만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암흑 속이 얼룩져 보였다.
감은 눈의 암흑 속에서
커다랗고 무서운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잠을 자려고 할수록
그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오로라처럼 흘러가는 물결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또 눈을 뜨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타다요시의 집을 생각해 보면
어둠처럼 소리도 어두웠었다.
마치 달이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곳의 소리는 24시간 내내
살아 움직인다.
날카롭게 들리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멀어졌다.
열어 놓은 창문 틈으로
익숙한 담배 냄새가 들어왔다.
그는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여자가 피우는 담배.’
기억의 끝은 담배 냄새.
드디어 이곳으로 온 후
그제야 처음으로 긴 숙면 한다.
그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이 잠의 달콤함을 느꼈다.
몇 번이고 이불을 감싸며
그 달콤함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주아주 달았다.
마나츠가 그의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그를 찾기보다 냉장고 안을 먼저 살핀다.
어느새 빈틈없이
모든 공간을 꽉꽉 채운 모습이다.
나오코의 방문을 예상하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이번엔 냉장고 속에
나오코가 너무도 많이
들어있는 모습이다.
마나츠의 기분을
조절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우거진 숲과 같이
네모난 통 안의 것들은 온통 초록빛이다.
물을 채워 놓으면
금방이라도 자랄 것만 같다.
자신이 생각한 것이 우스웠는지,
이를 드러내며 피식거렸다.
하즈키는 예민한 그 답지 않게
인기척에도 몸을 뒤척이지 않았다.
마나츠라는 것을 짐작했거나,
단잠을 자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마나츠는 몇 번 두리번거리다가
수돗물을 받아 조용히 들이켠다.
그의 곁이라 맴도는 갈증은
오늘도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자석처럼 빠르게 그의 곁에 다다랐다.
그를 볼수록 갈증은 더해 간다.
마나츠의 짙은 갈색 립스틱과
눈두덩이의 갈색 섀도는
비장한 모습을 연출했다.
또한 투피스의 스커트가 아닌
바지 차림은 그녀 자신도
어색했는지 자주 허리춤을 매만지는 중이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온
효과를 볼 참이다.
사랑이 가득한 마나츠의 눈동자가
하즈키의 볼에 시선을 멈춘다.
따뜻한 손을 천천히 갖다 댄 순간,
하즈키의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그가 입술을 열었고,
마나츠의 심장은 여전히
발 딱 발 딱, 거렸다.
그가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흠, 화아… 천국 같은 당신 냄새.”
하즈키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마나츠… 조금만, 난 잠이 필요해.”
마나츠는 하즈키가 들을 수 없는 대화로
그를 지긋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하고 쑥스럽게
그의 볼을 탐하며 입술로 인사한다.
그들의 어른스러움을 채우지 못했던 시절
선택한 결혼은 당연히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나츠가 꿈꾸던
그,라는 사람과의 생활이었고
찰나였지만 그 시간은 최고의 행복이었다.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를 선택한 순간부터
보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끝이라는 순간을 함께라는
단어로 장식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물론 그와 함께 있을 때도 함께,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마나츠의 허리춤을
두 손으로 감싸며 그가 파고들었다.
늘 그의 숨소리는 새근새근 달콤했다.
‘갖을수록 내 것이 아닌 당신’
허리를 감은 그의 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자세를 고치며 잠든 그를 바라보았다.
잠에서 깨 길 기다리다가,
그가 깰까 조바심 내다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처럼
시간을 잡고 싶은 눈치다.
그녀는 눈 한 번 깜박이며
그가 보이지 않은 암흑인 시간도 아까웠다.
부릅뜬 그녀의 눈동자 속에
둥둥 떠다니는 하즈키.
‘그만할 거야 이제 그만할래,
그럴 거야…”
마나츠는 조용히 현관문을 나선다.
좁은 1인용 철제 침대가
삐그덕, 거리며 다시 한번
그녀의 시선과 발을 잡아당겼다.
여름의 이른 아침 공기는 신선하다.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훅, 하고 뱉는다.
이 방법은 머리를 맑게 해 준다며
늘 쓰던 하즈키의 방법이다.
“흐으으음, 후아유.”
나오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냉장고 안을 생각하니,
자신과도 같아 보여
조금은 안쓰러운 감정과
별수 없다는 웃음이 배시시 나온다.
이른 아침 시장 풍경은
두말할 것 없이 생동감이 넘쳤다.
새벽부터 부지런 떨었을 그들이다.
얼굴엔 전날 밤 마신 술이
아직 남아있는 듯,
피곤함이 역력했다.
이 모습이 바로 보통 사람들의
흔한 모습일 것이다.
마나츠는 혹시 자신이
첫 손님일까,라는 걱정에
이곳저곳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 헤매다
결국 시장을 지나 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또한 분주하다.
역시나 이곳 주인장도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이른 오전 시간은 이곳 사람들의
가장 바쁜 시간이다.
잠깐 주인장과 마주친 눈에
마나츠는 고개를 까딱, 하며
인사를 하려 입을 오므리다,
이내 앙다무는 모습이다.
미소로 인사를 했다면
민망해질 뻔한 순간이다.
머릿속에 하즈키가 과하게 소리를 내며
된장국을 들이마시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녀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면 늘 그렇게
칭찬이 섞인 맛있는 소리를 냈다.
마나츠가 먹었을 때
원하는 맛이 아니었다 해도
그는 항상 그랬다.
우선 큰 크기의 된장을 집어 들었다.
나오코가 구비해 놓은
주방 집기들은 좁은 집에
꼭 필요할 것들만 갖춘 완벽함이 있었다.
그것들은 자신의 손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니,
뿌듯함이 올라왔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보다 자신이 먼저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일 것이다.
마나츠는 자신의 유치함에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이게 뭐라고, 훗.”
된장과 궁합이 좋은
각종 채소가 자신의 색을 드러내며
신선함을 뽐내고 있었다.
마나츠의 눈에 먼저 들어온
당근을, 다음은 감자를 집어 든다.
밝은 녹색이 흙에 감춰져
있는 것이 엉큼해 보였다.
신선하지 못함을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집어 든 감자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내가 속을 것 같아?’
만들어 놓은 각종 절인 채소와
과일을 주워 담았다.
점점 무거워지는 바구니에
자신이 없어진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남은 두부가 마나츠의 눈길을 끌었다.
마나츠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먹음직스러운 두부에 손을 얹는다.
그 순간 흰색 원피스가 훅, 하고
날리더니 나무 작대기 같은
긴 팔이 그것을 낚아채 가 버렸다.
마나츠는 하나 남은 두부를
잃었다는 억울함보다
작대기 같은 가엾은 팔을 가진
사람이 궁금하다.
마나츠는 자신도 모르게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민망할 정도로 미동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시선이 강력한 접착제로
붙여 버린 것처럼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피곤해 보이는 작은 눈을 가진
소녀는 마나츠를 보며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미소는 분명 그녀가
잊을 수 없는 미소가 분명하다.
“앗, 미안해요 가져가세요.”
마나츠는 마네키를 닮은
소녀의 얼굴을 기억했다.
너무 놀라 온몸이 굳어
자신을 보고 눈짓하는
마네키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 여기.”
마네키가 들고 있는 두부를
마나츠에게 건넨다.
마나츠는 그렇게 반가웠던
두부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여전히 꼿꼿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음식이라고 쌀 한 톨도
넘기지 않을 것 같은 그녀가
계속 말을 걸었다.
“저기 언짢으셨다면 죄송해요
여기, 가져가세요.”
신선한 두부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다.
그제야 마나츠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린다.
“아니, 아니요 괜찮아요.”
마네키가 들고 있는 두부의 무게가
걱정되기까지 했다.
마네기가 말했다.
“전 정말 괜찮아요.”
마나츠는 정색하며
표정까지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됐어요.”
난처한 모습의 마네키는
전보다 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고맙습니다.”
흰색 원피스가 다시 날리며
등을 돌린다.
마네키에게 뿜어 나오는 향기는
너무 푸르러서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나츠는 자연스럽게
마네키를 따라가 계산대로 걸어갔다.
마네키를 모른 척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척하던 주인장이
그제야 아는 척,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만
마나츠의 귓속은
마네키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있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곳을 나오자 마네키의 흰 원피스가
강한 바람에 우후죽순 움직였다.
펄럭일 때마다 드러나는
그녀의 몸은 곧 강한 바람에
꺾이지 않을까 싶었다.
거리를 두고 코하네도
따라가는 중이다.
한데 그녀의 방향은
하즈키의 집을 가는 방향과도 같았다.
마나츠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 핫.”
하즈키의 집 앞에 서서
마네키의 집을 확인할
요량인지 멈춰 서서 기다렸다.
인기척을 느낀 마네키는
강한 바람에 조금 휘청, 거리며
반원을 그리며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마나츠를 바라보았다.
마나츠는 자신도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했다.
마네키에게 가볍게 목례하더니,
검지를 들어 보이며
그의 집을 자신의 집 인양, 가리키며 웃었다.
마나츠의 미소는 멀리서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네키도 함께 목례하며
하즈키의 집 반대편 골목으로 사라진다.
마나츠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건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 건지,
우연치곤 질기고 대단한 운명 같았다.
속이 쓰리고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갔다.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를 보러 온
발걸음이 꼭, 아귀가 맞아 들어갔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될 수밖에 없는
길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가 그리도 넋을 놓고 바라보거나,
생각하던 사람이 그 사람의
인생에 폭, 들어올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즈키는 마네키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직은.
하지만 늘 그녀를 생각했고,
궁금해하거나, 또는 한 번 더, 라며
보고 싶어 했고 확인하고 싶어 했다.
마네키를 말할 때
그의 눈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마나츠는 하즈키와
다른 공간에 있어도
같은 달을 보고 같은 공기를
들이마신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자신이 그에게 느끼는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이다.
한데 그건 가짜였다.
마네키와 하즈키는
같은 곳에서 자신들의 운명도 모른 채,
같은 달을 보고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심장이 아팠다.
밝은 빛을 보이던
아침 해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바다의 강한 바람이
외로운 마나츠의 옆구리를 스쳤다.
심장의 통증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아랫배의 통증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장을 붙잡고
쥐어짜는 것 같다.
잠시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쭈그리고 앉았다.
꼭, 졸도할 것 같은 통증이었다.
조금씩 통증이 가라앉더니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하악.”
구름에 가린 해가 반짝하고 나와
마나츠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춘다.
이제야 놓쳤던 그림이 생각났다.
마켓 주인장이
두부를 새로 진열하고 있었던 모습이다.
널브러진 비닐봉지를
집어 들고 해를 맞으며
뒤돌아 걸었다.
“두부가 없는 된장국은 아니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이
아스팔트 위에 툭, 하고 떨어졌다.
마치 비처럼.
품고 있던 가짜인 달도, 그도 함께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떨어진 달은 다신
주워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켓 주인장은 마나츠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아주 반갑게 인사한다.
그의 기억력은 아주 좋지 않거나,
마켓의 비닐봉지를 알아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군데군데 비어 있던 곳들은
금세 다른 물건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마나츠는 따뜻한 두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하즈키가 두부를 후루룩, 거리며
마나츠에게 보내는
마지막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