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7월 10일

14. 료카

by 금봉



발을 조금 움직여도 손을 뻗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이길 바랐던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세상의 온갖 고통이 자신에게 쏠려 있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뜨고를 반복하며

벌써 열두 시간이 훌쩍 넘어 지쳐 있는 상태였다.

호흡이 어려워지자 호흡기를 끼운 채,

진통을 참아 내고 있었다.


마나츠는 미네코 대신 자리를 지켰다.

부쩍 쇠약해진 미네코를 오게 할 수 없다며

하즈키가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하즈키도 오늘은 혼자 코하네 곁을

지키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하즈키는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연거푸 피워 대고 있었다.

하루를 꼬박 넘긴 진통 끝에 유토를 낳은

마나츠가 하즈키의 머리를 쓸며 말했다.


“걱정 마, 쉽지 않겠지만 엄마는 결국 해 내.”


하즈키가 마나츠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름은 정한 거야?”


“료, 카 히다 료카.”


“아주 예쁜 이름이야.”


두 손을 합장한 채 기도라도 하는 그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한때 참으로 사랑했던 하즈키가

그토록 원했던 아이의 아버지가 되다니,

마나츠 또한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골똘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인연이란 것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몇 시간의 시간이 더 흐른 후,

갑자기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누군가의 빠른 손짓에 하즈키가 귀신에 홀린 듯, 들어갔다.

하즈키는 다른 그 어떤 것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오직 코하네만을 바라보며 그녀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잠시 정신을 잃은 듯한 그녀의 표정은 참 평화로워 보였다.

이마에 땀이 범벅인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딸입니다 축하합니다, 산모는 약간의 탈수 상태이긴 하지만 안정이 필요합니다
아이도 아주 건강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잠깐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곤

다시 코하네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는 눈과 코가 시뻘건 상태로 병원 복도로 걸어 나왔다.

마나츠가 하즈키의 입이 얼른 움직이길 기다렸다.

하즈키는 말보다 먼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은 거지?”


“응, 둘 다.”


“아, 축하해 하즈키 정말 축하해.”


그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하아… 실감이 나지 않아 기쁜 건지 잘 모르겠어.”


“그런 말이 어딨어? 뭐 처음엔 이츠키도 어리둥절했지.”


“거짓말 같아 하하.”


“이제야 웃네? 축하해 히다, 당신처럼 나도 기뻐.”


마나츠가 하즈키에게 다가와 그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행복하자, 평범하게.”


“고마워.”


“우리 이제 커피 한잔 하면 안 될까?”


“하하하 그래 그러자.”


미네코는 그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늘 낮잠을 자는 시간도

마다하고 전화기 앞에 기대어 앉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주 잠깐 눈을 감고 있는 틈,

소리를 키워 놓은 전화벨 소리가 찢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따릉 따릉.”


미네코는 소리가 울리자마자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래 그래.”


하즈키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얼른 말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둘 다 건강해요.”


미네코의 숨이 길게 퍼져 나왔다.


“아이고오... 잘 됐어 정말 잘 됐구나.”


“딸이에요, 코하네도 좋아요.”


“다행이구나, 하즈키.”


“연락 또 드릴 게요, 이제 좀 주무세요.”


하즈키는 미네코가 어떤 상태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 그래 다들 고생이 많았구나, 류에게 꼭 전해 주렴,

장하다고 축하한다고 말이야.”


“네 그럴게요.”



“그래 그래 들어가거라.”


“네 쉬세요.”


하즈키는 짧은 그녀와의 통화가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코하네가 아이를 출산한 지금부터,

하즈키는 모든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미네코의 목소리는 정말 엄마처럼 따뜻했고

위로가 되는 소리였다.

마나츠의 말처럼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즈키의 눈과 코가 다시 벌겋게 달아오른다.

코하네가 있는 병실에 문을 열었다.


마나츠는 다량의 카페인을 마신 탓인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마나츠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쉬이 잇.”


하즈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먼발치에 앉아

잠든 코하네의 얼굴을 관찰했다.

마나츠가 속삭이듯 말한다.


“휴식이 필요해.”


그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잠든 코하네의 두 볼이 하즈키의 코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얀 목을 둘러싼 짙은 녹색과 파란색의

핏줄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말라버린 나무 같은 코하네의 하얀 팔에

꽂은 주삿바늘이 원망스럽다.

그 주삿바늘이 그녀를 건강하게 해 줄 거라 하니

침을 꿀꺽, 삼키며 원망도 내려보낸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나오코는 휴가를 보내고 있는

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어도 받지 않는 전화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다.


생각해 보니, 지금 병원을 들른다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즈키가 애절한 눈으로 코하네를 지키고 있을 것이고

아이를 출산했지만, 아직도 처녀 때의 미모와 몸매를

잃지 않고 있는 마나츠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반겨 줄 것이다.

상상을 해 보면 전혀 내키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오코는 다시 한번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엔 신호음이 길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 카스미…”


보모의 목소리는 깊은 잠에서 방금 깬 것이 분명하다.

나오코는 미안함에 조금 주눅이 들었다.

그녀는 쇼에게 무슨 일이라도 난 건 아닌지

나오코 보다 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오코 무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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