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7월

15. 커다란 움직임

by 금봉




유난히 성급히 찾아온 더위에

코하네의 입은 오므릴 새가 없다.

아이가 뱃속에 있던 때보다 힘이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치는 생각은

마나츠나 나오코는 정말 대단한 일을

불평 없이 해냈다는 대단함이다.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고 있지만

벌써 머릿속의 상상은 위대한 그녀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나오코는 어린 나이에

조금 더 특별한 엄마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생각할수록 놀라웠고 대단했다.


막 태어났을 때의 모습과는 다르게

료카는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

살이 올라 팔과 다리는 마치

부풀어진 풍선 같은 모습이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 밑의 피곤함이 절로 사라지며

미소를 짓게 된다.

젖만 물리면 금방 잠이 들어 버리는

착한 아이는 코하네의 휴식을 만들어 준다.


코하네는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아예 알몸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시간인지

알기 때문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이다.

출처, 리틀 포레스트


가장 먼저 화분에 물을 듬뿍 주고,

인스턴트커피에 차가운 물을 부었다.

잘 녹지 않아 유리잔에 덩어리 진 채 남았지만,

얼음을 세 덩어리 정도 더해

저어주면 맛은 최고다.


요즘은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그것들을

다시 꺼내 보기 시작했다.

그 시절 그 책들을 마주할 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은 정말 다르다.

우울할 때 꺼내 볼수록 더욱 우울해지는 것들이었다.


지금은 뭔가 희망적인 감정이 생기거나

뭔가 기대하는 감정으로 글을 읽어가는 중이다.


코하네는 구둣방 이층에서 이 모두 버릴 작정으로

방한 구석에 쌓아 놓았다.

분명히 버릴 것이라고 글을 적어 붙여 놓기도 했다.

하즈키는 코하네가 병원에 있는 일주일 동안

구둣방에서 버릴 것들을 모조리 옮겨 놓았다.

물론 얼룩진 것들은 다시

원상복구 되긴 어려웠지만 꽤, 깨끗해진 상태다.


“하즈키? 이건.”


그가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필요할 것 같아서.”


코하네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버리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 틀림없다.


“아, 하즈키.”


“정말 필요하지 않을 때, 그때 정리 해.”


코하네는 하즈키의 말처럼 되어버렸다.

애써 외면했던 것은 아직

그녀에게 굉장히 필요한 것이었다.

오늘은 정말 완벽하게

글을 익힌 것처럼 자신만만하다.

기분만은 완벽했다.

다 읽은 책을 다시 처음으로,

이렇게 첫 장부터 시작이다.

시간을 확인하며 아직 많이 남은

자신만의 시간에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칭얼대는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방 안이 캄캄했다.

하루의 낮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코하네는 자신이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 료카.”


아주 빠른 행동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이불을 모두 벗어던진 아이를 끌어안았다.


“미안 미안, 엄마가 미안.”


아이는 코하네가 안자마자 울음을 그치며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를 보고 함박웃음이다.

축축하고 묵직한 기저귀를

아주 능숙하게 아주 빠르게 바꾸기를 성공시킨다.

아이의 얼굴은 더욱 환해지고 더욱 꺄르륵거린다.

코하네는 달랑거리는 모빌을 흔들며 말했다.


“자, 봐봐 이쁘지?”


하즈키에게 혹시 전화가 오진 않았는지 걱정이다.

그가 퇴근할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따릉 따릉.”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급히 받는다.


“당신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핫, 뭐야 코하네.”


코하네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얼굴이 금방 붉어진다.


“나라고, 이걸 어쩐다, 실망한 거야?”


“응 나오코 아니야 토요일인데,

그 사람이 아직이라서.”


“아, 기다렸구나?”


코하네는 다시 또 나오코의 말투 때문에

기분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오늘 겐토와 다 같이 만났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하즈키는

직접 전화를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역시 나오코는 코하네가

묻고 싶은 말을 알고 있다.


“하즈키가 깊은 잠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하던데?”


코하네는 두 발 더 늦게

나오코의 말을 이해하고 대답했다.


“으응?”


“너무 정신없이 얘기하느라

이 시간이 됐는지도 몰랐어
오랜만에 너무 많이 웃었어.”


코하네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고 화가 났다.

나오코가 소리친다.


“하즈키이 하즈키? 코하네 잠깐 기다려.”


한참 후, 하즈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코하네?”


코하네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여보세요?”


“당신, 이 전화를 했어야죠.”


하즈키는 나오코가 코하네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는 상태다.


“아, 미안 미안 코하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알았어요.”


“아, 이런 내가 실수했어

미안해 코하네
깨우기 싫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될 줄은.”


“아침에 얘기라고 해 주지 그랬어요?”


“갑자기 겐토 녀석이

회사에 들이닥쳤지 뭐야 미안.”


코하네는 자신이 옹졸하게 구는 건지,

정말 하즈키의 실수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저녁 전이지?”


“괜찮아요, 끊을게요.”


하즈키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코하네는 전화를 집어던지듯 끊어 버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분노가 치밀었다.

하즈키와 함께 지낸 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그가 미웠고 원망스럽다.


아이로 인한 행복감도 빠르게 식어버리는 순간이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하즈키는 나오코를 미워했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떼어내고

또 떼어내던 사람이다.

지금 코하네가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배신감이다.


하즈키의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은

화가 났거나 지극히 미안하다는 뜻이다.

맛있게 먹던 갈비를 다시

젓가락으로 잡을 수가 없다.

료카로 인해 늘 잠이 부족한

코하네를 위해 배려를 하다,

배려가 아예 코하네를 잠시 잊었다가 되어버렸다.

뭐라고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미안했다.


나오코는 별일 없다는 듯,

아니 나오코에겐 별일이 아닐 것이다,

겐토와 입에 넣은 고기를 씹으며

말을 끊지 않고 계속 반복한다.

하즈키가 한숨을 길게 내쉰다.


“하아…”


나오코는 코하네가 자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떠들었다.


“아이가 그맘때면 정말

말이 안 되는 것들로 싸우게 돼,

이 사람과도 늘 그랬으니까.”


겐토가 하즈키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린다.


“자식, 정말이지 전쟁이라고.”


“코하네는 달라 나도 다르고,

우린 아이 때문에 다투지 않아.”


나오코는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입안에 말을 뱉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치챈 겐토는 어렵게 다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겐토가 말했다.


“그러니까, 아이 엄마에게

일주일 한 번은 휴가를 줘.”


하즈키는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일어선다.


“저녁 잘 먹었다 먼저 일어난다.”


나오코는 앞에 있는 가족은

안중에도 없는 하즈키에게 다시 또 서운하다.


“하즈키, 우리도 가족이야.”


“다음엔 다 같이 모이자,

오늘은 가 볼 게.”


겐토가 일어나 그를 배웅할 작정이다.


“그래, 그러자.”


그들이 고깃집 문을 나설 때쯤

나오코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때부터야 늘 전전긍긍, 쯧.”


나오코가 차는 혓소리는 정말

쇠를 긁어 대는 소리보다 더 자극적으로 들렸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지만

고개를 돌렸다가 또 다른 시간을

낭비할 것이 뻔하다.

하즈키는 도망치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겐토가 그녀에게 볼멘소리로 말한다.


“편하게 식사할 수가 없어.”


“또 나 때문이라는 거야?”


겐토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당신은 하즈키에게 뭐가 불만이야?
잘 살고 있잖아 노력하는 거 안 보여?”


나오코도 겐토를 따라 담배를 입에 물었다.


“왜 자꾸 그들 사이에 있으려고 해?

그거 말 안 되는 거 알기는 해?”


이번엔 겐토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냥 넘어가지 않을 작정인 듯하다.

나오코가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나를 그렇게 보는 거야?”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말들이 쑥, 들어가는 순간이다.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야,
그런 기분 정말 겪고 싶지 않아.”


“겐토, 모르겠어?

저들은 방향이 서로 달라,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아?”


“뭘 말하는 거야?

또 마호를 말하는 거야?”


겐토는 어이가 없었다.

나오코가 말했다.

“언제든 나타나겠지?

아니 나타나도록 하겠지?

그게 잘못된 거야.”


겐토가 반문했다.


“당신 말이야 그럼 당신과 나는?

우리 관계는 그렇게 완벽한가?”


나오코의 표정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지 말라는 것처럼 서늘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난, 난 당신을 사랑해.”


나오코는 웬일인지,

알고 시작한 것과는 달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난 당신을 사랑한다고 저들과 달라.”


겐토는 과거 여러 개의 필름을

머릿속으로 찍어내고 있었다.

가만히 나오코의 왼손 등을 내려보았다.

하지만 그 상처는 아직도

진한 커피 색깔을 한 채 뚜렷하게 남아 있다.


“나오코, 그들은 서로 사랑해, 모르겠어?

그리고 하즈키가 류를 사랑하지.”


겐토는 마치 자신이 나오코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러면 됐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모두 평화롭잖아?

나오코 당신이 그걸 깨 줄 필요는 없어
자식 볼 때마다 안쓰럽다고.”


“그래서 지금, 당신은 행복하고 평화로워?”


나오코의 말에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말하지 않은 채, 밖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나오코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행복하지 않은 거야

그래도 난, 당신을 사랑해
저들처럼 방향이 다르지는 않아."


겐토는 나오코를 두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치졸하게 굴지 마.’


그날 겐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오코는 겐토가 그랬던 것처럼

밤새 그를 기다렸다.

겐토는 그렇게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얼굴을 비추었다.

나오코의 상상, 술에 젖었을 거라는

모습과 달리 그는 아주 멀쩡했고

아주 깔끔한 모습이다.


나오코는 하룻밤의 일을 묻지 않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쇼와 그를 보통의 날처럼 대했다.

아니, 더 많이 웃었다.

오랜만에 차린 나오코의 밥상 또한 화려했다.

보모 덕분에 웃음기 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치 불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평생이 가도록

오늘 일을 곱씹지 않았고 내색하지도 않았다.

꼭 꿈속에서 걸었던 길을 잠에서

깨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좁은 집 안에서 아이를

늘 안아 올려야 하는 코하네에게

선풍기 한 대가 더위를 식혀 줄리 없다.

몸이 벤 것 같은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한다 해도 적응되지 않았다.

특히 오늘처럼 하즈키가

그녀의 기분을 몰라줄 땐 더 힘들다.


누구에게 깊게 의지하는 성격이 아닌

코하네는 점점 변해가는

자신의 성격 때문에 더 화가 났다.

다시 생각해 보면 꼭, 화를 낼 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즈키는 미안함 때문인지

아이의 쌓인 기저귀를 모조리

빨 작정인 것 같다.

코하네의 고민하던 입이 드디어 열리는 중이다.


“아, 하즈키,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해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그가 말했다.


“힘이 필요해 이건, 내가 하면 돼.”


코하네의 얼굴이 붉어진다.


“참, 당신도 하루쯤은 구둣방이라도 다녀와,
료카는 내가 있으니까 걱정 말고

그리고 기저귀 말이야,
적응도 했으니까 일회용으로 바꾸자고.”


코하네가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


“아이를 두고요? 아니에요,

그렇게까진 안 해요, 나중에 함께 가요.”


“뭐, 어쨌든 필요할 땐

당신이 얘기해 줬으면 해 응?”


“으응, 그럴게요.”


드디어 코하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도 안심한 모양이다.


“그리고, 미리 연락 못해서 미안.”


코하네는 눈을 끔뻑거리며 하즈키를 보았다.


“깨우지 않는다는 게,

어찌 그렇게 됐어 하하”


하즈키가 하얀 거품이 묻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아이가 갸륵, 하며 웃었다.

그 소리에 절로 그들은 웃고 또 웃었다.

정말 평범해지고 있는 하즈키는

또 한 번 감사함에 위를 올려 보며 기도한다.


그들은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까지,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행복하거나,

세상에 있는 모든 감정들을 이겨내고

흡수하고 또 이겨내야 하는 시기를 겪었다.

앞으로 더 많은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결과는 늘, 가족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다시 또 하루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코하네는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

늘 소망하던 대로 함께 첫 나들이를 했다.

아이를 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편의 도움의 손길이 늘 함께

따라다니긴 했지만

코하네의 손만 한 건 없다는 것을

하즈키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일이다.


아직 봄의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찬 공기도 나쁘지 않다.

아이는 갈수록 하즈키의 얼굴을

꼭, 빼다 닮았다.

누가 뭐래도 료카는 하즈키의

아이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마치 아이는 다 자란 아이처럼

엄마의 눈을 오랫동안 눈을 마주한 채

행복을 느끼게 했다.


빛을 받을 때마다 더욱 선명한

아이의 짙고 빛나는 갈색 눈은 정말 아름답다.

보통의 아이들보다 더 길쭉한

팔과 다리는 스스로 앉고 기어 다닐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어디를 가든 료카는 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즈키는 사진을 찍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그는 돈이란 것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시기이다.

하지만 고가의 사진기를 사는 건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코하네는 비쩍 마른 몸에

무거운 사진기를 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을 담은 사진들은 시간이 갈수록 많아졌고

추억도 고스란히 베어 사진 위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면 마치

그때 먹었던, 음식 냄새와

시원하게 불어오던 바람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료카는 여름에 태어난 아이답게 일 년 후,

가을이 시작할 무렵부터

감기를 앓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차가운 공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민감한 아이다.

공기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곳에서는

맑은 콧물을 달고 지냈고

재채기는 당연한 일이었다.

봄이 오면 봄이 와서 또 걱정이었다.


눈에 가득 넘치는 꽃을 구경하기에도

모자란 계절에 료카의

두드러기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그들은 아이의 그런 모습에

전전긍긍하다 다시 정상의 모습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 달이란 시간,

일 년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가 걸음을 걷기 시작 때는

한 살 반, 차이가 나는 유토를

그렇게 따라다녔다.

료카가 빨리 걸을 수 있었던 건

아마 유토 덕분일 것이다.

마나츠와는 사는 곳이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료카가 유토를 너무 잘 따랐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미네코의 집에 자주 들렀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 줄도 모르고 지낸다.

그러다가 약속한 날짜에

도쿄로 넘어가지 못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하즈키는 실망감이 대단했다.

그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미친 듯이 일하는 것을 취미로 삼은 그가

휴가를 내고 그곳으로

달려온 적도 허다했다.

그런 하즈키를 보고 미네코가 말했다.


“그냥 이곳으로 이사를 오는 것이 어때?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모두 이곳에서 학교를 나왔으니

더 잘 알 것 아니니?”


그때는 모두 말을 쉽게 웃어넘겼지만,

그는 한참 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내심 모두 알고 있었다.

또한 도쿄의 좁은 집에서

일에 쫓기며 아이와 코하네와 함께

있어 주는 시간도 많지 않았고,

그곳은 정말이지 전쟁 같은

소굴이었기 때문이다.


코하네는 미네코와

고부 사이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그러는 동안 미네코가 자주 하는 말이 생겼다.


“정말 완벽한 가족이야.”


그들은 그 말이 그들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건지

자신이 속한 그들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건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다.


코하네는 아주 가끔 무표정을 일관하는

하즈키를 몰래 바라보고 있으면

미소를 지으며 미네코가 말 한

완벽한 가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참,

감사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료카의 성장이 빨라지고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그들의 생활은 생각과 다르게 더욱 바빠졌다.

수입에 비해 지출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들이 저축하는 금액은 줄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


코하네는 하즈키의 고집, 반대를 넘어서고

시간제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료카가 유치원에 등원하는

시간 동안 하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 덕에 새벽이 되어야 잠이 들던 그녀가

아이가 잠이 드는 순간

함께 잠에 빠지는 건, 당연한 그림이 되었다.


치열한 평일을 보낸 후,

주말이 되면 누가 먼저일 것 없이

아주 익숙하게 짐을 싸고

미네코의 집으로 출발했다.

반년을 같은 생활을 지내다 보니,

그것은 그들에게 조금 뒤로

미뤄야 할 일이 되고 말았다.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고,

건강에는 별문제 없다고 생각한 그들이다.


하즈키의 퇴근 후,

그는 저렴하게 신칸센을

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서

그들은 또다시 짐을 싸고 있는 중,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기억을 하자면 기억이

조각난 것처럼 잘 맞지 않았다.

좀 전까지도 웃고 있던 하즈키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쿵, 하는 소리와

료카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쿠궁.”


“아아아 아빠아.”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코하네는 아이에게 소리친다.


“료카, 잘 알지? 전화 전화.”


아이가 울먹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코하네는 먼저 쓰러진 하즈키의

기도를 확보했고 숨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하즈키? 히다? 히이다아?”


아플 정도로 두 뺨을 번갈아 가며 때렸다.

하즈키는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코하네는 그의 짧지만

처절한 호흡 소리만을 숨죽여 들었다.

겐토가 올 때까지 마치 백 년의 시간이

흐른 줄만 알았다.

구급차보다 더 일찍 도착한 겐토는

하즈키를 들어 업으며 중얼거렸다.


“자식, 가볍긴.”


정신없이 달려온 티가 난,

나오코는 코하네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그때야 하즈키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온갖 도구들로 그를 치장하기 시작했고,

코하네는 두 손을 모으며

그들이 시키는 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료카는 울먹임을 언제부터인지

스스로 멈추고 있었다.

속 깊은 아이는 엄마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겐토가 료카에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응?”


“네에.”


나오코는 여전히 심기가 불편하다.


“겐토 씨, 정말 감사합니다.”


나오코가 말을 자르며 나섰다.


“오늘도 미네코에게 가려는 중이었어?”


코하네는 마치 취조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대답할 수가 없다.

코하네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마침,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밝은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보호자 분?”


그제야 고개를 들고 벌떡 일어난다.


“네, 네 선생님.”


“우선 환자분 상태는 양호합니다.

자세한 건 검사를 진행 중입니다.”


그들의 숨이 동시에 길어진다.


“한 가지, 지금 상태를 보면 탈수 증상이 심합니다
영양 상태도 굉장히 좋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은 환자분을 좀 쉬도록 두시는 게 좋습니다
그럼 검사 후, 다시 뵙겠습니다.”


코하네를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나오코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아니, 영양 상태라니, 하… 말도 안 돼.”


겐토가 나오코를 보고 눈치를 준다.


“나오코.”


아랑곳하지 않는 나오코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나오코는 투박한 걸음을 걸으며

코하네를 옆을 지나갔다.

코하네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즈키가 있는 곳으로 나오코를 따라 걸었다.

하즈키의 잠든 모습이 저렇게

평화스러워 보이는 건 처음인 듯하다.

하즈키의 모습을 보니 코하네는

더욱 미안한 마음에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료카는 내내 아빠의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손을 놓지 않았다.

벌써 자정이 되어 가는 시간에

아이를 계속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막이 흐르던 병실에서

코하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기, 나오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나오코의 눈이 떨어진다.


“이제 들어가 봐, 너무 늦었어”


나오코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넌?”


“난 있어야지.”


나오코의 손가락이 잠든 료카를 가리킨다.

대답을 고민하던 중에

하즈키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에 모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벌떡 일어난다.

하즈키의 손을 잡고 엎드려 있는

료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우리 딸, 료카아?”


코하네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쓸었다.


“더 쉬어요, 응?”


“아빠아.”


코하네의 뒤통수에

나오코의 긴 한숨의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료카, 이리 와.”


하즈키가 힘없이 침대를 가리킨다.

순식간에 아이는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아빠 괜찮아요?”


나오코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섭게 말했다.


“료카, 내려와 당장, 아빠가 아프잖니?”


코하네도 따라 료카를 내리려 다가갔다.


“료카 이리 와.”


하즈키가 나오코에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려 애를 쓴다.


“난 괜 찮 아, 나오코

넌 그만 들어가.”


“후, 그럴 거야,

내일 음식 좀 가져올 게.”


코하네가 나오코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


“료카 인사해야 지?”


아이는 얼굴을 하즈키에게

더 파묻을 뿐, 인사하지 않았다.


“료카?”


“됐어, 그만둬.”


나오코는 병실을 나오자마자

의자에 앉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다.


“나오코 미안해 여러 가지,

신경 쓰이게 해서.”


“하, 할 말이 없어, 정말 그래
아니 너무 많아서 뭘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게 정확해.”


“응, 알아 나오코.”


“안다고?”


“내가 너무 신경을 못 썼어.”


“그것도 혹시 알아?”


“응?”


“하즈키가 왜 저렇게 미친 사람처럼

일을 하는지...”


사실, 코하네는 하즈키가 얼마나

저축하는지 그의 월급이 얼마인지,

잘 알지 못했고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즈키가 늘 모자라지 않는

생활비를 챙겨 줬고,

코하네 또한 남은 생활비를

쪼개서 저축도 하는 중이다.


“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겠지?
왜 저렇게 미친 사람처럼

일, 일일, 하는지 말이야.”


나오코는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코하네는 이럴 때마다

나오코가 정말이지 다시 또 이해되지 않는다.


“다 너 때문이야.”


코하네는 나오코의 말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응 알아 우린 가족이니까.”


“하, 코하네?

저 사람이 널 데리고 그곳으로 가려는 거야,

이 바보야, 그렇게 모르겠어?”


“무슨 소린지.”


“너 나라. 한국이라는 네 나라.”


코하네의 얼굴이 갑자기 얼어버렸다.

한 번도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일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순식간에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하즈키는 미쳤어.”


“나오코 그렇게 말하지 마.”


“아니? 정말 미쳤어,

정말 부탁인데,
제발 그것에 너까지

미치지 않았으면 해 알아?”


나오코는 코하네가 들고 있던

자기 가방을 낚아채며 성큼성큼 걸었다.

코하네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질문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

코하네는 그렇게 한참을

의자에 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꼬박, 6년 동안 하즈키는

정말 충실한 가장이었다.


생각해 보면 하즈키는

늘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다.

알고 있음에도 왜?라는

말을 해 보지도 의문을 가져 보지도 않았다.

그냥 그가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나오코의 말대로

코하네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헌납하고 있던 것이다.


아니 어쩜 그것이 코하네가 바라는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하즈키는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누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답답했다.


감사함보다는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주 굵고 절대 끊어지지 않는 끈에

그와 자신이 묶여 있는 것처럼 느꼈다.

코하네는 숨을 가다듬고,

좋아하지도 않는 찬물을 쉬지 않고 들이켠다.


“으허 하…”


갑작스러운 차가움에 위가

뒤틀리는 것처럼 통증이 일었다.


“으읍.”


코하네의 손바닥에 땀이 가득했다.

씻고 또 씻어도

끈적함이 나아지질 않는다.

하얀 얼굴을 마른세수 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땐

좀 전 그의 얼굴보다 더 혈색이 좋아 보인다.


“오래 걸렸네?”


료카가 물 잔을 하즈키에게 건넨다.


“어쿠, 고맙습니다 공주님.”


“당신 좀 어때요?

이렇게 일어나도 되는 거야?”


밝게 웃는 그의 모습에 심장이 아프다.


“별거 아니야, 정말 괜찮아.”


“아빠, 집에 가요.”


코하네가 료카를 보며 말했다.


“료카, 우선 엄마 말 잘 들어.”


아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네에.”


“어른에게 인사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야,

고모는 조금 서운했을 거야.”


“난, 고모가 무섭고 싫어.”


“그렇지 않아, 널 정말 좋아해,

아깐 아빠가 걱정되어 그랬던 거야
엄마도 고모와 같은 생각이었는걸.”


“응, 알았어요.”


코하네는 료카를 코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그 요 장난꾸러기.”


하즈키도 쓰러졌던 사람 같지 않게 환하게 웃었다.


“코하네, 이제 그만 들어가 너무 늦었다.”


“힝, 아빤 왜 같이 안 가요?”


“료카 아빠는 치료를 받아야 해,

아빤 여기서 더 계실 거야.”


“아, 주사요?”


그들이 동시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가 말했다.


“그래 아빤 이렇게

커다란 주사를 맞아야 해,

같이 있어 줄 거야?”


료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자, 그러니까 료카도

당신도 얼른 들어가요, 응?”


“당신 잠들면…”


하즈키가 말을 잘랐다.


“아니 내 맘 편하지 않다는 거 알잖아?
나 편하게 해 줘, 좀 쉬어 볼게.”


“흐음, 응 알겠어요, 그럴게요.”


“료카 우리 내일 보자.”


“응, 아빠 잘 자요, 주사,

많이 아프지 않길 기도 할게요.”


“그래 우리 딸 고맙구나 자 이리 와.”


하즈키가 료카를 꼭 끌어안으며

한 손은 코하네를 끌어안았다.

이 그림은 미네코가 말하던

그 그림일 것이다.


코하네는 병실을 나와 마치

6년 전 하즈키가 그랬던 것처럼

하얀 옷을 입은 사람에게 확인한다.


“환자 보호자예요,

연락처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머리카락이 할 올도 튀어나오지 않은

올림머리의 여자는

굉장히 깔끔해 보였다.


“환자분 성함은요?”


“히다 하즈키입니다.”


“이 연락처가 맞나요?”


“아, 네 맞네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요 내일 오전에는

늦지 않게 오세요,
검사 결과도 함께 봐야 합니다.”


“아, 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코하네가 료카를 향해

눈치를 주지 않아도 아이는

벌써 깔끔한 간호사에게 인사를 하는 중이다.


“안녕히 계세요.”


간호사는 아이의 인사를 보자

큰 미소를 지으면 말했다.


“아주 친절하구나? 낼 보자.”


료카는 뭐가 그리도 신이 났는지

발걸음을 통통거리며 앞서 걸었다.

코하네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아이와 함께 정말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정말 나오코는 정확했고

그녀의 말은 꼭, 들어맞았다.

하즈키가 몇 년 동안 묵묵히 쉼 없이 달려왔던 건,

정말 그곳에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건 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코하네가 물었다.


“당신이, 걱정돼요.”


“왜?”


“우린 지금 행복하잖아요,

더 애쓰지 말아요.”


코하네의 말에 하즈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애쓰는 게 아니야,

더 행복하기 위해서야,
그리고 난, 이곳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어.”


코하네는 하즈키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즈키는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을 떠날 작정이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


코하네는 어릴 적,

막연한 그리움과 후미코의 기억 때문에 그곳을 동경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정심이었을 것이다.


이 나라가 꼭, 알아야 할,

그 나라의 희생에 대한

양심을 갖기 위해 그것을 꼭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늘 책을 지니고 다녔고,

늘 그 나라의 말을

입에 담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코하네의 행동과 말과 대해,

그리고 그 나라에 대해

무한한 관심이 있던 이는 마호뿐이었다.


코하네를 통해 모두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래?

그게 정말이야?라는 단어로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코하네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그것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어쩜 잊고 사는 게

아이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가 후미코의 불안한 감정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건,

후미코의 많은 이야기가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젠 하즈키가 정말

그곳에 가자고 말한다.

코하네는 덜컥 겁이 났다.

과연 현실로 다가올까? 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무엇보다 이 아이와 함께 간다는 건,

정말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던 삶은

아이로 인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울타리 속 사람들은 말했다.

모험이 아니라 미친 짓이라고 말이다.

나오코는 그들이 그곳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그 시간 동안 내내 그들을 설득했다.


“내 욕심이 아니야,

하즈키 이건 료카의 미래가 달린 일이야,

생각해 봐 그곳에서 료카가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코하네도? 아니 더 불행해질 거야.”


하즈키는 그럴 때마다 미소까지

지으며 태연하게 굴었다.


“돌아올 곳이 있잖아.”


“아, 기가 막혀 정말,

대체 뭘 위해서 간다는 거야?
왜 케케묵은 과거를 다시

꺼내서 보여주려는 거야?”


하즈키는 다시 평안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료카를 위해서."


“우리? 하즈키,

우리라는 단어에 우리는 없는 거야?
남아 있는 우리라는 가족은?

미네코는? 쇼는?”


하즈키는 끝내 나오코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미네코는 그 소식을 듣고

몇 날 며칠을 앓아누웠다.

그리곤 병문안 온 마나츠에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 원래

내 것은 아니었으니까…”


마나츠는 미네코의 말이

그렇게 슬프게 들릴 수가 없었다며

내내 눈물을 훔쳤다.

자신의 선택에 고민 한 번 하지 않던

하즈키가 고민에 빠진 순간이었다.


그들의 말을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던

료카가 입을 닫아 버린 것이다.

그들은 일본을 떠나기 전

미네코와 한 달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 시간 동안 료카는

미네코와 정이 흠뻑 들어 있었고,

또한 유토를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에

굉장한 슬픔을 느꼈다.

그 슬픔은 이별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

료카의 긴 성장기였지만

고민도 잠시 하즈키가 품고 있던

미래에 대한 고집은 아주 강했다.


미네코는 마치 그들이 없는 시간을

미리 연습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운동을 즐기거나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교류하지 않았던

이웃들과 함께 걷기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하루 중 남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모습이 많아졌다.

그녀와 나이가 비슷한 손님이

방문했을 땐 그녀가 가장 아끼던

다기 세트를 들고 나와 손님을 대접했다.

손님과 있는 내내 미네코는

다기 세트에 대해,

타다요시에 대해 들어 보지도 못한

칭찬을 늘어놓으며 자랑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하즈키는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을 하며

큭큭대고 웃다가 걱정을 덜었다며

더 큰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늙어 버린 미네코는

이제 막 떠나보낼 자식을 위해

정말 평범한 엄마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해바라기의 웃음이 내내 한 공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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