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예민하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정확히 눈을 떴다.
엄청난 두통이 몰아쳤다.
마지막 장면 속에
윤 대리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몰려오는 두통에 과호흡이 일었다.
네발로 기는 유인원처럼 상자를 뒤졌다.
오랫동안 먹지 않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갖가지 약물이 쌓여있다.
나의 마지막 장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쓰러진 기억뿐이다.
쿵, 하고 나의 어깨가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윤 대리의 음성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꼭 이렇게 티를 내시더라,
알아요 알아
팀장님 범인 아닌 거.”
망상이 아닌 실제 기억이다.
나는 분명히 들었다.
몇 년 동안 발길을 끊은
내 치부가 담긴 병원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분명 황 박사에게도 파양 한
이후부터의 내 기록이
빼곡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성심의 뜰에서
퇴소한 순간부터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두통과 단편적 기억 상실에
시달릴 때마다
그저 환자의 처방에만
열을 올리는 병원만 골라 방문했다.
“우울합니다,
잠을 못 잡니다,
죽고 싶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이 단어를 뱉는 순간 병원은
빠른 처방으로 장기간 복용할 수 있도록
마치 쌀가마니를 쥐여주는 것처럼
약을 내어준다.
내 치부를 맞닥뜨리며
황 박사를 마주하는 것보다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난 내 꾀로 인해
덫에 단단히 걸려든 셈이다.
다시 윤 대리의 음성이 울린다.
“팀장님 범인 아닌 거,
알아요 알아.”
여전히 황 박사와는 예약이 어렵다.
수많은 단체에서
어린 안 금서에 대해 완벽히
노출한 후 후원이란 명목으로
나를 여러 군데 꾸역꾸역 끼워 넣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병원 앞에 서면
정신을 잃기 일쑤였다.
하지만 황 박사의 병원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신을 잃지 않았다.
황 박사의 병원은 마치
오래된 고택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조선시대 훈장이 머리에
망건(網巾)을 쓰고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사로잡혔다.
여덟 살부터 스무세 살의 길을
모두 알고 있는 황 박사를
마흔의 나이에 다시 찾았다.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가
내 이름을 부른다.
“안 금서 씨.”
병원 안 동선은 변함이 없다.
나는 황 박사의 느낌을 기억했다.
황 박사는 여덟 살 꼬마에게
가장 따뜻한 사람이었다.
내게 유일하게 경멸을 만들어 내지 않는
사람이 황 박사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황 박사가 등을 보이며 서 있었고
하얀 백발의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뒤통수를 덮고 있었다.
황 박사가 나를 본다.
약간의 놀란 눈과
당황을 나타내는 입술은
긴장이 서려 있다.
황 박사가 꼿꼿이 서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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