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는 예민하지 않았다.
황 박사와의 상담은
오후 여섯 시가 돼서야 끝났다.
나의 흥분은 이상하게 가라앉은
우울 증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황 박사는
나를 그냥 보낼 수 없다고 말하며
처방한 약을 내밀었다.
황 박사가 말했다.
“눈 좀 붙여요,
그리고 명심해야 할 부분은
여기 이렇게 안 금서 씨가 서명한 것처럼
기억에 관해 본인이
책임 지려 하면 안 됩니다,
이 행위는 치료가 목적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
내리는 눈은 바닥에 닿자마자
살인 무기가 된다.
나는 하얗게 얼어붙은 눈덩이가 부럽다.
어떤 행위도 하지 않고
스스로 무기가 되어버리는
하얀 눈이 되고 싶다.
황 박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분간 졸로프트를 50mg
더 늘리겠습니다.”
내 눈과 황 박사의 손가락이 연결되었을 때,
엄마라는 존재를 알아버렸다.
박사가 눈치를 과연 챘을까?
내 일상에서 계속 떠오르는
그 여자의 정체는 엄마였다.
엄마는 어린 나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엄마의 입 주변은 온통
하얀 가루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내 비명과 울음에서 나를 놓지 않았다.
내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힘은
엄청난 접착제 같아서
난 일찌감치 벗어나길 포기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같이 죽자,
널 어떻게 놓고 가 같이 가자.”
내 등 뒤로 차갑고 끈적한 것이 흘러
엉덩이까지 적시고 있었다.
빠져나오길 포기한 나는
고개를 틀어 보았다.
아, 피다.
엄마의 두 손목에서 흐르는 피가
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순간 난 공포에 질렸고
삶을 포기한 엄마와 함께하려던
내 목숨 따위가 스스로 발끈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점점 더
무거워지는 엄마를 뿌리치고
등을 바닥에 대고 팔로 기어갔다.
‘좀 더 빨리 좀 더.’
엄마는 더 이상 흘릴 피가
남아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내게 기어 왔다.
“금... 서야 이리, 와
천국에 가자, 엄마랑.”
내 고개는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고
삶, 생명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의 파릇한 본능이 발버둥 쳤다.
“싫어, 싫어.”
심하게 흔들린 머리는
중심조차 잡을 수가 없다.
엄마는 내 발목을 잡았다.
“으아아, 싫어 싫단 말이야.”
엄마의 입에서 토사물이 튀어나왔다.
마치 목구멍이 휑 뚫린 것처럼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계속 엄마를 피하려 발버둥 쳤고
그때 묵직하고 커다란
커터 칼이 순간 내 안쪽 허벅지에 꽂혔다.
내 생명에 관한 파릇한 본능은
계속 도망을 요구했고
커터 칼을 잡은 엄마의 손은
그대로 박혔다.
내 허벅지에 길게 잘린 듯한
검은 구멍이 조금씩 도드라지며
검붉은 피가 맺혀 흐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이제야 난 엄마와 분리가 된 것 같다.
너무 가벼운 공허함에
한기가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때 황 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금서 씨,
당신의 통증이 이제 사라집니다.”
엄마는 내 허벅지 위 커터 칼을 잡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