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옥의 아들

7. 나는 예민하지 않았다.

by 금봉




황 박사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 상담은 다섯 번의

EMDR 중 가장 성과가 좋습니다

다음 주 상담은 한 주 후 진행합니다

치료의 모든 행위는

치료 목적으로만 쓰입니다

일주일 후 뵙겠습니다.』


홍주가 말했다.


“금서 씨는 어찌 보면

황 박사에게 특별 혜택을 받은 거야.”


그녀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황 박사는

해리성 기억 상실증 연구에

미친 사람으로서

큰 도움이 된다고 오히려

자신도 같은 수준의 질병을

지닌 듯하다며

내게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황 박사는

장애와 질환의 용어에서

머뭇거리지 않았다.


“금서 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장애가 아닌 이상

호전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질환인지 장애인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황 박사를 만난 후 내 세상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햇살이 따뜻하다.

나는 좀 더 일찍 택시에서 내렸다.

성심의 뜰을 가는 길은

굽이굽이 나무가 즐비했다.

이맘때가 가장 싱그럽고

성심의 뜰이 그나마

남들의 시선을 호기심이 아닌

따뜻함으로 느끼게 해주는 시기다.


남은 길을 나는 계속 걸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이 길을

오랫동안 걸었다.

가방을 메고 교복을 입고

이 길을 나와 버스를 타면

버스 안 사람들은

나를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비위가 상할 듯한 그 눈빛은

내게 경멸을 만들었다.

경멸을 죽여버리고 짓이겨도

사람들은 그 눈빛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충돌하고 나면 그들은 말했다.


“부모 없이 자랐으니 오죽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긴 했겠어?”


“저 눈빛 좀 봐 무서워라.”


“에휴, 딱한 것들.”


출처, 우울한 춘


경멸과 충돌한 나는

끝을 맺어야 했다.

손에 쥔 커터 칼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그 작은 소리는 희한하게

어떤 소음 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솔깃, 들린다.


더 이상의 충돌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든다.


흰색 현판 성심의 뜰은

많이 낡아 보였다.


원장 수녀의 직무실은

늘 빛이 머물렀고

유향 냄새가 났다.

변함없이 십자가는

벽 중앙에 성모마리아상은

작은 기도 대에 놓였다.


성경 겉표지는 반짝거리는

묵주가 올려져 있었다.

서류가 잔뜩 쌓인 모양의 것들은

아마 입양 신청자의 뭉치일 것이다.


성스러운 권위에 알맞게

조명이 은은하게 볕과 잘 어울린다.


익숙한 유향 냄새가

경멸을 조용히 담가버렸다.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그저 웃을 수 있는 게 좋았던

나의 시절을 떠올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 닿아 부딪혔다.


“기이익.”


참사 수녀가 들어왔다.

나는 원장 수녀가 아닌 것에 놀랐다.


“금서 오랜만이구나.”


참사 수녀는 원장과 달리

나를 가볍게 포옹했다.


“안녕하세요.”


참사 수녀가 두 팔로

나의 두 팔을 잡으며

마치 다 키운 아들을 대하듯 말했다.


“세상에, 너무 보기 좋구나

어쩜 살도 많이 찌고,

얼굴이 너무 환해 보여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참사 수녀는 성호를 긋고

묵주에 입을 맞춘다.


“자, 앉을까?”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렸고

젊은 수녀의 손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원장님?”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수녀님.”


참사 수녀는

원장 수녀가 되어있었다.


“자, 마셔요

이젠 존대를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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