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애(恩愛)

8. 나는 예민하지 않았다.

by 금봉



결코 내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우물 속에 빠지지 않겠다.

연민이 가득 차면

결국 그것을 해결해야 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쁘거나

아주 비도덕적인 행위가 필요하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그렇다.


황 박사의 말처럼 과거일 뿐,

되찾은 기억은 치료 목적으로 쓰여야 했다.

그것은 곧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데 종잇조각이라니,

그날 엄마는 이 종잇조각을 얻기 위해

아스팔트처럼 밟혔다.

그 속에 나란 금서라는 아들을

위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는 그 느낌을

꾸역꾸역 기억해야만 했다.


아, 나는 사랑을 받았다,

그녀에게, 기억해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똑같은 말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사랑 못 받고 큰 애들이 그렇지.”


종잇조각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나는 사랑을 받았다.

갑자기 따뜻한 빛의

찬란함을 느꼈다.


출처 마더


한데 이 기억을 원장 수녀는

왜 내게 내민 것일까?

내 유년 시절을 모두 파괴해 버리더니

지금에 와서 이 기억을 모두

껴안으라는 말인가, 잔인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하느님만을 기억한다.


마치 구겨진 그것을

다림질이라도 했을까?

피 묻은 종잇조각이

투명한 비닐에 쌓여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참사 수녀가 내민

그 모든 것을 난 받아 들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참사 수녀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흠 그래...”


“죄송하지만 수녀님께서 태워주세요.”


참사 수녀가 말했다.


“여긴 네가 들어있잖니?”


나는 정말 웃음이 났다.


“하하, 하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정말 웃음이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참사 수녀가 손에 쥔 묵주를

힘을 주어 잡는 모습이다.


“그땐 그 삶을 살지 않았어요

전, 지금의 안 금서예요

이제 와서 그 삶이 제 삶이라니...

저를 멋대로 바꿔놓고는

이제 와서? 하하하.”


나의 경멸이 충돌하기 직전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참사 수녀는 다시 성호를 그으며

내가 마치 악마라도 되는 듯,

나를 향해 아멘, 이라 말한다.

하지만 아멘, 이란 단어는

내게 경멸을 더 부추길 뿐이다.


참사 수녀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어, 그래야지

더 필요한 게 또 있을까?”


나는 가장 궁금했던 사실을 물었다.


“한 가지만요

이것만 간단히 대답해 주세요.”


참사 수녀가 창문을 향하며 말했다.


“여기서 들어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 수녀님이 직접 말씀하셨어요?

내 모든 것을 파괴한 후

입양시킨 건 나를 위해서라고?”


참사 수녀가 말했다.


“물론이야, 하지만

원장 수녀님의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

그 죄책감은 말할 수 없이

원장 수녀님의 삶을 흔들어 놓았어.”


내 입으로 나를 파괴했다,

라는 말을 뱉고 나니

엄청난 희열이 우울감과 부딪었다.


눈앞에 섬광이 번쩍하며

두통이 시작됐다.

눈을 뜨기 힘이 든다.


참사 수녀가 다가와

나의 머리를 쓸었다.

참사 수녀의 손길에

엄청난 충돌이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손을

완강히 뿌리치고 벌떡 일어났다.


“가보겠습니다.”


“원장 수녀님께는...”


나는 뒤도 보지 않고 뛰었다.

따뜻한 햇살이 시선을 훔쳐 갔다.

참사 수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계속 뛰었다.

머릿속 작은 돌이 뛸 때마다

심장 박동이 뛰는 것처럼 덜걱거렸다.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와서야

아득한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헉헉헉헉.”


맞은편 버스에서

더벅머리 남자아이와 그 손을 꼭 쥔

쪽진 머리의 할머니가 내렸다.


할머니의 허리는 하늘을 향했고

턱은 발목에 닿을 듯 위태로웠다.

하지만 위태로움에도

할머니는 더벅머리 아이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금봉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저는 [광과 모서리를 닮은 여자] 저자 작가 금봉입니다.글의 쓰임이 엇나가지 않게 쓰고 또 써나갑니다, 오늘도!

29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3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