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편지
기사의 말 대로
굽은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길은 갈수록 구불거렸고
좁아지기 시작했다.
집마다 걸린 문패 같은 것들을
유심히 확인하며 걸었다.
그들의 주소를 외워버린 그는
글씨의 형체만 스쳐도
그 주소가 아님을 눈치챘다.
십 분쯤 올라왔을까,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넓게 펼쳐진
또 다른 집들이 보였다.
밑에서 보았던 집들과 다르게
이곳은 아직 완성한 지
얼마 안 된 집들이 눈에 띄게 반짝거렸다.
집들 뒤로 보이는 넓은 밭은
아마도 봄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따라갔다.
“하양아, 하양아아 어디 갔어?”
낮은 나무 울타리 앞에서
소리가 나는 쪽을 들여 보았다.
흰 원피스를 입고 구석진 풀과
낮은 나무들 사이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순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벙어리장갑을 끼고
귀마개를 한 아이가 커다란 눈을
멀뚱 거리며 마호를 바라보았다.
마호의 심장은 방망이질 치지 않았고
코는 공기를 들이마시려 하지도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아이는
코하네의 딸임이 분명하다.
커다란 눈망울은 하즈키의 것이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코하네와 같았다.
놀랄 정도로 그러했다.
멀리서도 마치 솔잎 향이 풍기는 것 같았다.
아이가 마호 앞에 서서 말했다.
“아저씨, 우리 하양이 혹시 못 봤어요?”
아이는 마호에게 일본어로 말하고 있었다.
마호는 바보처럼 대답하지 못하고
굳은 채 아이의 얼굴을 보고만 있다.
아이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이번엔 한국말로 말했다.
“아저씨, 하얀 고양이 못 봤어요?”
따뜻한 햇살이 아이의 얼굴을 비춘다.
그때 꿈속에서만 웅얼거리던
실제 코하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료오카, 밥 먹자 료오카아.”
열린 창문 사이로 정말
코하네의 얼굴이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
마호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아마 시간은 멈춰서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호의 온몸은 오히려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고
다시 심장은 들쑥날쑥했다.
아이가 코하네에게 말했다.
“엄마, 하양이가 또 없어졌어요.”
코하네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린다.
“마호…”
마호는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얼굴에 담아 미소를 지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그때와 같은 모습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아이는 하즈키에게 달려가
안기며 소곤거린다.
“저 아저씨, 일본에서 온 아저씨 맞아요?”
“료카, 잠깐만 기다려 줄래?
아저씨는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이야,
어제 말했지?”
그들은 료카에게
후미코의 유골을 들고 올 고마운 아저씨가
집에 올 것이라고 일러둔 터였다.
료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하 우아.”
하즈키가 낮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손을 내밀었다.
“아, 마호 씨 정말 반갑습니다.”
하즈키는 마호가 정말 반가웠다.
하즈키도 마찬가지 미소가
입꼬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생각처럼 어색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마호가 어색하게 말했다.
“먼저 실례가 되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마호는 생각했던 말들을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호는 여전히 솔직한 사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즈키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말 마십시오.”
내친김에 마호는 더욱 솔직하게
배낭을 두드리며 말했다.
“코하네도 아이도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핑곗거리가 된 것 같아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하즈키가 낮은 대문을 열었다.
“자, 어서 들어오세요
알고 있었지만 아이 엄만
또다시 놀란 기색입니다.”
아이가 마호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히다 료카예요.”
아이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똑바로 자기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아이는 참, 그녀와 같았다.
“반가워 료카, 난 마호.”
“우리 할머니는요?”
마호가 배낭을 어깨에서 내리며 끌어안았다.
“응, 이곳에.”
하즈키가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 들어가시죠.”
료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님이 집에 왔다는 생각에
신나 어쩔 줄 몰라 노래를 흥얼거렸다.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가
이번에는 코하네에게 속닥거린다.
“엄마, 일본 아저씨가 왔어
말을 못 하는 줄 알았지 뭐야 힛.”
코하네는 하고 있던 앞치마를
식탁에 걸어놓고 그 시절 그때의
마호를 맞이했다.
찰나에도 부풀어 오르는
격한 감정을 억누르고 생각했다.
‘눈물이 흐르면 안 돼.’
하즈키는 자신 때문에
몇 년 만의 만남을 어색하게
치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료카? 하양이를 찾아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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