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갈증
갈증
마호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비행기 시간은 아직 멀고 멀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취기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건,
아주 짧은 잠을 청하고 난 후다.
마치 시간에 쫓기는 듯
소리 나지 않게
물건을 훔치러 온 도둑처럼 굴었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 일은
코하네가 깔아 준 이불 더미를
대체 어떻게 접어 두면 예쁜 모양이 되는지,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결국 처음 접었던 모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다.
제발 소리가 나지 않길 바라며
현관문을 열어 본다.
‘이런.’
잠금 방법이 대체 무엇일까,
열리지 않는 문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때 원하지 않던 소리,
누군가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마호는 또 이런, 이라는 말을
속으로 뱉는다.
코하네가 놀란 눈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 마호?”
마호의 배낭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보기에도 훨씬 가벼워 보였다.
커다란 덩치로 발개진 얼굴에
웃음이 나왔다.
“지금?”
마호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툭 튀어나온다.
“아,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가.”
코하네가 마호 앞에 점점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말도 없이?”
코하네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마호는 이유를 어색하게
다시 붙이고 싶지 않았다.
“갈 게.”
그 말뜻은 난 충분해,라는 소리로 들렸다.
코하네가 자연스럽게 잠긴 현관문을 열었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모든 것을 비추었다.
그들은 말없이 낮은 울타리를 지나
골목길을 함께 걸었다.
마호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을
그녀 생각에 맘이 편치 않다.
마치 그때의 그녀와
자신이 바뀌어 있는 것 같았다.
길을 모두 내려왔을 때쯤
마호가 말했다.
“난 괜찮아.”
코하네가 짧은소리를 내며
눈을 가늘게 구부리며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들리는 차 소리가 은근히 고맙다.
멋쩍게 구는 자신에게 나오는 소리와
행동이 조금이라도 감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호가 말했다.
“인사 전해줄 거지?”
“응.”
“그래.”
“마호, 내게는?”
코하네가 그랬던 것처럼
마호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것과 마주한다.
비행기를 탈 때처럼 귀가 먹먹하고
코도 입도 심장도 막혀버렸다.
그때 그의 솔직함이 버젓이 나와 버렸다.
마호는 그녀의 손 등에
깊게 입을 맞추며 속으로 읊었다.
‘사랑한다.’
코하네는 놀라지 않았다.
아주 잠깐 그때의 그녀 모습이 돌아왔다.
코하네를 눈 안에 심장 안에 가득 담았다.
어찌나 작은 그녀인지
작아서 꺼내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정말 갈 게.”
고개를 끄덕이는 코하네의 눈동자가
흐려져서 보이질 않았다.
무얼 보고 있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흐리다.
택시가 수없이 서다, 창문을 열다,
다시 가버린다.
이번엔 정말 택시의 문이 열리고
다리를 집어넣었다.
마호는 그녀를 볼 수가 없다.
“어디 가십니까?”
“김포 공항입니다.”
“네에.”
택시 기사의 목소리는 경쾌하다.
사이드미러로 작은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걸음을 몇 발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의 마호라면 벌써
택시를 세우고 그녀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말했을 것이다.
괜찮아?라고 그리고 응,
이라는 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호는 눈을 질끈 감고
아무도 봐주지 않을 응, 이란 말의
고개 짓을 계속 끄덕거렸다.
그제야 마호의 눈동자도
흐려졌고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코하네의 집에서 서둘렀던 것처럼
네 시간이나 남은 시간을
잊기라도 한 사람처럼 굴었다.
수속을 마치고 라운지에서
간단한 샤워와 면도를 했다.
챙겨 온 두벌의 옷을 보며
잘했다고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을 칭찬한다.
리리카의 걱정을 덜어줄
모양새를 갖추니 한결 맘이 편하다.
솔직히 말하면 리리카의 걱정을
덜어줄 셈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들키기 싫은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그것을 모를 그녀도 아니다.
“난 지금처럼 행복했던 때가 없었습니다.”
하즈키의 말이 자꾸
귀 주변을 따라다니며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와서 심술궂은 생각이 드는 게
우습기만 하다.
꼭, 하루도 쉬지 못한
수많은 날을 지나온 사람처럼
마호는 의자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난 지금처럼 행복했던 때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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