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빈자리
중학생이 된 쇼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오코의 눈으로 아직 경험하진 못했지만
카스미(보모)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부쩍 웃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루의 반을 책을 읽거나 큐브를 맞추며
초등생활을 보낸 게 사실이다.
간혹 학부모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나오코는 마치 쇼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
학업이 걱정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 그들 사이에서
거짓말할 일도 그런 척해야 할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안도했다.
어쩌면 쇼와 대화하기 위해 머뭇거리며
그것을 모른 척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그 일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스미는 쇼의 보모 역할을 하기 전
보육원에서 허드렛일을 맡았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아이들까지 생활하는 곳이라
성격은 천차만별 가지각색이었고
하루에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카스미는
쇼로 인해 불안한 나오코에게
별일도 아니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
“쇼는 정말 좋은 아이 에요,
그러니 제발 그 미간 주름은 좀 펴 봐요.”
카스미의 말투는 조금은
건방져 보이기도 하고 남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툭, 하고 뱉는 투의 말투이긴 했지만
카스미가 이 집을 나간다는 소리를
다시 들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오코는 늘 고개를 끄덕이며
카스미에게 수긍한다.
또한 카스미는 쇼에 대해
틀린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나오코가 더 할 말도 없는 게 사실이다.
마치 쇼의 엄마처럼
오히려 나오코가 보란 듯 아이를 두둔했다.
어릴 적에 비하면 자기 맘 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흥분하며 발작하는 일은 줄었고
아주 평범하게 다른 엄마들이
경악하며 말하는 아이들의 사춘기,라는
시기에 관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때마다
그냥 묵묵히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버틸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이 떠났고
어쩌면 또 떠날 준비를 하는지도 모른다.
아주 기분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다.
그들이 불에 타 없어져 버린 것처럼
아주 슬프고 쓸쓸했다.
생각해 보면 일부러 코하네에게 전화를 걸어
심통을 부리거나 마치 카스미가 자신에게
핀잔을 준 것처럼
나오코도 꼭 같이 코하네에게 그랬다.
참 우스운 일이다.
그때도 코하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거나 무슨 일이 있냐,라는 식의
걱정스러운 말을 먼저 건네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런 사람을 나오코가 괴롭히는 것 같았으니,
하즈키가 싫어할 만도 하다,라는 생각도 든다.
신기한 건, 여태 겐토가 늦거나 외박해도
깊은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빈자리에 대한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그대로
겐토에게 화로 돌아갔다.
겐토의 긴 빈자리가 이젠
눈에 띄기 시작한 모양이다.
오랜만에 모두가 집 안에 함께 있는 휴일이다.
나오코는 도시락을 준비했고
카스미는 괜찮다고 말하는 나오코의 뒤에서 그녀를 도왔다.
쇼는 카스미 가까이 앉아
질릴 만한 큐브를 돌리는 중이다.
침대에 누워 일어나라, 는
잔소리만 수도 없이 듣고 있는
겐토가 징징거린다.
왜 봄은 꼭 나가야만 한다, 는
전제를 누가 만들어 놓은 거냐며,
겐토는 내내 투덜거렸다.
이불을 칭칭 감고 있는 겐토의 귀에
차가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으앗, 차가워 나오코오?”
나오코가 고무장갑을 낀 손을
위로 든 채 그를 내려 보고 있었다.
“안 갈 거라는 거지?
그럼 그렇게 해.”
나오코의 말은 그래 두고 보자,라는
뜻임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그다.
나오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겐토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잘 웃지 않는 카스미가 웃었다는 건
겐토의 모습이 참 한심하다는 뜻일 것이다.
나오코는 좁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신만의 작업실을 마련했다.
텅 빈 시간이 많아질수록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전문적으로 배우는 걸 포기하긴 했지만
나오코의 실력은 전문적이지 않아
더욱 눈에 띄는 경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은
검은 고양이 그림이다.
검은 고양이가 있는 그림은 모두 달랐다.
살아있는 듯한 눈을 가진 고양이,
얼린 동태처럼 초점이 없는 고양이,
정말 사람처럼 웃고 있는 고양이,
사람처럼 울고 있는 고양이,
이것들로 잔잔하게 소문이 났고
대체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었다.
그녀 자신도 그림을 보고 있으면
타다요시에게 도망치려 창문에서 떨어진
카미가 튀어나와
등을 쓰다듬어 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꼈다.
물론 카미를 생각하고 그린 그림이지만 말이다.
겐토는 나오코가 작업실을 마련한 것을
몇 달이 지나서야 알았다.
싸지 않던 시세에 작업실을 구한 것을 보면
나오코의 셈법은 그야말로
박수를 칠만 한 것이었다.
또한 손해를 보는 일은 없었기에
겐토도 딱히 그녀를 채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은 겐토는
이해하기 싫은 일이었다.
하즈키가 집을 내놓음과 동시에
그들의 집은 아주 빠르게 팔렸다.
월세로 있었던 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팔리지 않을 것을
각오했던 그들이었고
부동산을 통해 계약이
완료되기만을 기다리려 했다.
나오코는 하즈키가 거래한 부동산과
이미 계획된 거래를 성사시킨다.
겐토는 나오코가 이렇게 할 만큼
그 집에 욕심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집은 방 하나에 거실과 함께
쓸 수 있는 주방과 화장실이 다였다.
햇빛이 들어오는 틈은 아주 좁았고
찬 바람이 불어닥치는 계절엔
료카의 알레르기가 더욱 심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하즈키가 집을 내놓자마자
부동산 대리인은 나오코에게
보고라도 하는 듯 아주 빠르게
그녀의 것이 되어버렸다.
겐토는 그 사실도 그들이
한국으로 떠난 지 두 달이 되어서야 알았다.
우연히 온 우편물을 보고 확인한 것이다.
처음엔 하즈키가 나오코에게 양도했을까, 란
생각도 들었지만 하즈키도 나오코가
그 집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겐토는 그녀에게 우편물을 내밀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당신 이거 뭐야?”
나오코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우편물을 받아 들어 확인하며 말했다.
“아, 하즈키 집, 아니 이젠 아니지.”
“그걸 몰라 묻는 게 아니잖아.”
겐토는 아무리 값이 나간 집이 아니라고 해도
그 정도의 돈을 그녀가
그에게 말하지도 않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놀란 것 같았다.
“집이 없으면 돌아올 곳도 없고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겐토의 얼굴이 갑자기 험상궂어지더니
진짜 그늘이 진 것처럼 어두워진다.
정말 기가 막힌 말을 그녀는 하고 있었다.
“돌아와도 집이 있어야 하고…”
“그걸, 그걸 왜 당신이 정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가족이잖아.”
“대체 누가?”
겐토의 말은 나오코의 정신을
흩으러 놓기에 충분했다.
갈 곳을 잃은 눈을 마구 돌리더니
침묵의 시간 동안 그녀는
다시 안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코하네에게 말할 거야.”
마치 구실을 찾았다는 듯, 나오코는 말했다.
겐토는 아직도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쳇, 그 사람이 참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니다,
라고 잘도 말하겠군.”
“당신, 무슨 말을…”
겐토는 이번엔 가만있지 않을 모양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정말 나도 그러니까.”
처음으로 나오코는
그에게 변명도 하지 못한다.
겐토가 자기의 심장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한테 나는,
그리고 쇼는 어디 있어?”
“겐토, 이 일이 이런 소리를
들을 만한 그런 일이야?”
나오코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그 표정도 말이 안 되는 군.”
겐토는 나오코가 손에 든
우편물을 낚아채며 집어던진다.
외출에서 돌아온 카스미가
바닥에 나동그라진 우편물을 들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빠르게 주방으로 들어간다.
더 이상 말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겉옷을 손에 쥐고 겐토는 나가 버렸다.
그는 3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도
연락도 없다.
그가 들어오지 않던 첫날
회사로 그의 안부를 확인했지만,
휴가를 냈다는 말에
오히려 우린 잘 지내지 못합니다,라고
말한 것 같아
나오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깊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집 안에서 풍기는 안 좋은 냄새의
일들은 당연히 카스미가
알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작업실에 다녀온 나오코는
대낮부터 술을 마신 모양이다.
겐토는 나오코가
집을 비울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카스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쇼의 안부부터 물었다.
“아이는요?”
카스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하, 쇼에게 출장 가셨다고 말했습니다.”
“아, 카스미 고마워요.”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화는 단단히 났답니다.”
“흠, 내일 도착한다고 전해줘요.”
카스미는 그가 묻지도 않은
나오코의 말을 대신한다.
“대낮에 술을 마실 정도로
나오코씨가 힘이 든 모양입니다.”
카스미는 나오코가
겐토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꼭, 말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끊겠습니다.”
나오코는 웬일로 쇼의 행방을
묻지도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카스미는 마치 로봇처럼
뜨거운 녹차를 테이블에 놓으며
건조하게 말한다.
“쇼는 생일잔치에 갔고
아마 늦은 오후가 되어야 들어올 거예요,
그리고 겐토 씨에게
내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취기가 가득해 풀린 눈동자가 번뜩였다.
나오코의 긴 한숨에서
불안한 냄새, 알코올 냄새가 흘러나왔다.
“후 우우.”
나오코가 천장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까지 그러면
이제 쇼, 차례인가.”
카스미가 나오코의 목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방에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을 잘 넘겨야
다시 일상이 돌아올 거예요.”
카스미의 말은 나오코 당신이
백번 잘못한 일이야 라고,
다시 그녀를 꾸짖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오코는 카스미의 말 대로
겐토와 마주한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오랜만에 요리했다.
그가 좋아하는 생선 요리와
참치도 잊지 않았다.
쇼는 하지 않던 질문을 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나오코가 쇼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아이는 빠르게 머리통을
살짝 비틀어 본다.
나오코는 무안함도 잊고
포기하지 않고 다른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함께 식사하는 자리지,
오랜만에.”
쇼의 표정은 마치 귀찮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빠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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